교동초등학교 대피소 600여명의 주민 대피
버스 불타고…시내에선 펑펑 터지는 소리 들려
“가스 폭발했을 것” “바람 불어 농구 골대 넘어졌다”
버스 불타고…시내에선 펑펑 터지는 소리 들려
“가스 폭발했을 것” “바람 불어 농구 골대 넘어졌다”
4일 저녁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에서 난 산불이 확산돼 속초시 장사동 한 도로에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5일 자정 교동 동부아파트 앞 5일 자정 속초 교동 동부아파트 앞에선 주민들이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대피에 나섰다.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로 번져 왔다. 일부 시민들은 아파트 인근 거리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시민들은 인근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인근 도로는 대피하려는 시민들의 차량으로 불길 반대 방향 차선만 가득 찼다. 대피소에 가는 길 역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속초 시내 여기저기에선 간혹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시민들은 그 소리를 두고 “가스 터지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산불 불길이 번져 아파트 인근까지 덮쳐온 교동 현대아파트 앞에는 20명 가까운 노인들이 거리에 나와 있거나 인근 상가 안쪽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연기와 그을림 냄새가 자욱하게 공기를 뒤덮어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마스크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교동 현대2차아파트에 산다는 주민 이아무개(45)씨는 “불이 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하는 생각에 커튼을 쳐놓고 별 생각 없이 있었는데, 긴급 재난 문자를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커튼을 열어젖혔더니 밖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며 “낮에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서 기둥을 잡고 걸을 정도였는데, 그 거센 바람을 타고 불이 번져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파트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강아지만 안고 뛰쳐나왔다”고 덧붙였다. 교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44)씨는 “지난해 11월에 이 동네로 이사 와서 길을 잘 모른다”며 “경찰이 와서 어디로 가라 얘기해주는 것도 없고 교통정리만 하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하다못해 확성기로라도 안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원도 속초시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주빈 기자.
5일 새벽 1시 교동초등학교 대피소 교동 현대아파트에서 780m가량 떨어진 교동초등학교 대피소. 이곳에는 600여명의 주민이 여러 교실에 나눠 모여 앉아 있었다. 이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화재 상황을 전하는 방송 뉴스를 보고 들었다. 대피소에는 거리와 달리 대피소에서 나눠준 마스크를 낀 주민들이 여럿 보였다. 대피소에서 만난 박아무개(27·속초시 장사동)씨는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불이 났다고, 하늘이 빨갛다고 해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피하는 주민들을 따라 영랑초등학교에 갔다. 그런데 거기도 연기가 자욱해져서 또 다시 대피했다”며 “시청 공무원들이 생활체육관이나 교동초등학교로 가라고 해서 급히 이쪽으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오후 9시쯤인가 속초의료원 바로 옆 영랑호 쪽을 보니까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 이아무개(58)씨는 “교동 현대3차아파트에 사는데 19개월 된 친손녀를 둘러업고 대피소로 왔다”며 “길이 통제될 것 같은데 어찌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대하 강원도의원은 “영랑초등학교와 중앙초등학교에 마련됐던 대피소에 있다가 왔는데 거기는 연기가 말도 못 한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다시 대피한 상태다. 여기 교동초등학교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속초초등학교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 시내에서 대피소로 이동하기 위해 줄지어 선 차량들. 이주빈 기자.
_________
5일 새벽 2시 미시령로 영동가스충전소 교동초등학교에서 1㎞ 가량 떨어진 속초시 교동 케이티 자회사 ㈜화성 사무실에서는 직원 10여명이 마스크를 끼고 나와 분주하게 산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하며 “빨리 와! 우리 네트워크 케이블 다 타!”라고 소리쳤다. 이 직원은 통화를 마친 뒤 “우리는 케이티 복구 나가는 자회사인데, 오전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지금 중계기고 뭐고 다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신이 끊기게 된다”고 말했다. 미시령로에 있는 영동가스충전소 인근에도 불길이 옮겨 붙어 폭발 위험까지 제기됐다. 소방차가 인근을 배회하며 불길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물길을 쏴댔다. 충전소 직원들은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며 “저기도 붙었다!” “저기 아직 안 꺼졌다!” 외치며 불길을 껐다. 속초는 불더미에서 신음했다.
화재에 의해 잿더미가 된 강원도 동해시 동해 망상 캠핑장.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5일 오전 7시 미시령로 인근 오전 3시까지만 해도 대피소인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은 물론이거니와 실내에서도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 목이 따가운 상태였지만, 밤 사이 불길이 조금씩 잡히면서 오전 7시가 되니 연기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미시령로에 있는 한 야외주차장에선 군인 50여명이 삽을 들고 화재 복구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 집결해 있었다. 교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600명)와 속초생활체육관(300명), 노학동 속초시청소년수련관 등 속초 시민들이 대피했던 주요 대피소에서도 주민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향했다. 속초/이주빈 기자 yes@hani.co.kr
이슈봄철 산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