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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르포] 불더미 속초…긴급대피·도시가스 차단 ‘재난문자’ 쏟아져

등록 2019-04-05 01:16수정 2019-04-05 13:51

교동초등학교 대피소 600여명의 주민 대피
버스 불타고…시내에선 펑펑 터지는 소리 들려
“가스 폭발했을 것” “바람 불어 농구 골대 넘어졌다”
4일 저녁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에서 난 산불이 확산돼 속초시 장사동 한 도로에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4일 저녁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산에서 난 산불이 확산돼 속초시 장사동 한 도로에서 버스가 불에 타고 있다. 속초/연합뉴스
택시를 타고 강원도 속초시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전쟁터로 진입하는 것 같았다. 시속 70㎞ 속도로 달리는 택시 안에서 바라본 속초 시내에선 불길이 타오르는 나무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오고 있었다. 속초는 온통 타오르는 붉은 색으로 가득했다.

4일 오후 11시30분께 속초 시내에 들어서자 휴대전화로 긴급 재난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재난문자는 ‘[속초시청] 금일 19:17분 산불 발생 속초의료원, 보광사 일대 주민들은 중앙초교로 즉시 대피바랍니다’ ‘[속초시청] 중앙초교 대피장소 불가, 속초의료원 일대 주민들은 속초감리교회, 동명동성당으로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고성군청] 산불확산으로 천진.청간.봉포리 인근 주민들은 간성초.고성생활체육관.고성중고등학교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속초시청] 4일 23:40분 교동 일대 아파트(늘푸른, 현대 3차, 협성, 삼호, 동부, 설악현대, 씨티프라디움, 삼환) 도시가스 차단’ ‘[속초양양교육지원청] 2019년 4월5일(금) 산불로 속초 지역 내 모든 학교는 휴업함을 알려드립니다’ ‘[속초시청] 영랑초교 대피장소 불가, 영랑동 일대 주민들은 교동 속초시생활체육관으로 즉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등과 같이 쉴 새 없이 급박한 현장 상황을 전했다. 장사동의 한 도로에선 버스에 불이 옮겨 붙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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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자정 교동 동부아파트 앞

5일 자정 속초 교동 동부아파트 앞에선 주민들이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대피에 나섰다. 강원도 고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 시내로 번져 왔다. 일부 시민들은 아파트 인근 거리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시민들은 인근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인근 도로는 대피하려는 시민들의 차량으로 불길 반대 방향 차선만 가득 찼다. 대피소에 가는 길 역시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속초 시내 여기저기에선 간혹 큰 폭발음이 들려왔다. 시민들은 그 소리를 두고 “가스 터지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시민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다.

산불 불길이 번져 아파트 인근까지 덮쳐온 교동 현대아파트 앞에는 20명 가까운 노인들이 거리에 나와 있거나 인근 상가 안쪽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연기와 그을림 냄새가 자욱하게 공기를 뒤덮어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마스크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교동 현대2차아파트에 산다는 주민 이아무개(45)씨는 “불이 났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하는 생각에 커튼을 쳐놓고 별 생각 없이 있었는데, 긴급 재난 문자를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커튼을 열어젖혔더니 밖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며 “낮에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서 기둥을 잡고 걸을 정도였는데, 그 거센 바람을 타고 불이 번져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파트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강아지만 안고 뛰쳐나왔다”고 덧붙였다. 교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44)씨는 “지난해 11월에 이 동네로 이사 와서 길을 잘 모른다”며 “경찰이 와서 어디로 가라 얘기해주는 것도 없고 교통정리만 하고 있어서 혼란스럽다. 거리에서 배회하는 주민들이 많은데 하다못해 확성기로라도 안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원도 속초시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주빈 기자.
강원도 속초시 교동초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에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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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새벽 1시 교동초등학교 대피소

교동 현대아파트에서 780m가량 떨어진 교동초등학교 대피소. 이곳에는 600여명의 주민이 여러 교실에 나눠 모여 앉아 있었다. 이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화재 상황을 전하는 방송 뉴스를 보고 들었다. 대피소에는 거리와 달리 대피소에서 나눠준 마스크를 낀 주민들이 여럿 보였다. 대피소에서 만난 박아무개(27·속초시 장사동)씨는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불이 났다고, 하늘이 빨갛다고 해서 함께 상황을 지켜보다가 대피하는 주민들을 따라 영랑초등학교에 갔다. 그런데 거기도 연기가 자욱해져서 또 다시 대피했다”며 “시청 공무원들이 생활체육관이나 교동초등학교로 가라고 해서 급히 이쪽으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오후 9시쯤인가 속초의료원 바로 옆 영랑호 쪽을 보니까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 이아무개(58)씨는 “교동 현대3차아파트에 사는데 19개월 된 친손녀를 둘러업고 대피소로 왔다”며 “길이 통제될 것 같은데 어찌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대하 강원도의원은 “영랑초등학교와 중앙초등학교에 마련됐던 대피소에 있다가 왔는데 거기는 연기가 말도 못 한다. 그래서 그곳에 있던 주민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다시 대피한 상태다. 여기 교동초등학교도 상황이 심각해지면 속초초등학교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속초 시내에서 대피소로 이동하기 위해 줄지어 선 차량들. 이주빈 기자.
속초 시내에서 대피소로 이동하기 위해 줄지어 선 차량들. 이주빈 기자.
속초시 청대산과 인접해 있는 설악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쪽이 기숙사에 있던 학생 30여명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설악고 교사 변주홍(58)씨는 “청대산에 불이 붙게 되면 설악고가 다 타버리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여러 교사들이 학생들을 일단 대피시켰다”며 “처음 불이 이쪽으로 왔을 때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대기하고 있다. 영랑호 주변 펜션 등에는 불이 옮겨붙어 엉망인 상황이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변씨는 “고성에선 10여년 전에도 큰불이 났었는데, 그때는 이렇게 시내로 근접하지 않았다. 태풍 이상의 풍속으로 바람이 부니까 화재는 더 커질 수 있고, 특히 염려스러운 건 화재 등이 나서 유해가스에 사람들이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8살 김윤성군은 “속초고에서 야자를 하다가 선생님이 집에 가라고 해서 집에 가다가 방송을 듣고 대피소로 왔다”며 “학교에서 농구 골대가 넘어지고 바람 때문에 급식소 문도 열지 못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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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새벽 2시 미시령로 영동가스충전소

교동초등학교에서 1㎞ 가량 떨어진 속초시 교동 케이티 자회사 ㈜화성 사무실에서는 직원 10여명이 마스크를 끼고 나와 분주하게 산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다른 직원에게 전화를 하며 “빨리 와! 우리 네트워크 케이블 다 타!”라고 소리쳤다. 이 직원은 통화를 마친 뒤 “우리는 케이티 복구 나가는 자회사인데, 오전이 되어봐야 알겠지만 지금 중계기고 뭐고 다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통신이 끊기게 된다”고 말했다.

미시령로에 있는 영동가스충전소 인근에도 불길이 옮겨 붙어 폭발 위험까지 제기됐다. 소방차가 인근을 배회하며 불길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물길을 쏴댔다. 충전소 직원들은 여기저기 분주히 돌아다니며 “저기도 붙었다!” “저기 아직 안 꺼졌다!” 외치며 불길을 껐다. 속초는 불더미에서 신음했다.

화재에 의해 잿더미가 된 강원도 동해시 동해 망상 캠핑장.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화재에 의해 잿더미가 된 강원도 동해시 동해 망상 캠핑장. 강원도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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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7시 미시령로 인근

오전 3시까지만 해도 대피소인 교동초등학교 운동장은 물론이거니와 실내에서도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 목이 따가운 상태였지만, 밤 사이 불길이 조금씩 잡히면서 오전 7시가 되니 연기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미시령로에 있는 한 야외주차장에선 군인 50여명이 삽을 들고 화재 복구 현장에 투입되기 위해 집결해 있었다. 교동에 있는 교동초등학교(600명)와 속초생활체육관(300명), 노학동 속초시청소년수련관 등 속초 시민들이 대피했던 주요 대피소에서도 주민들이 하나 둘씩 집으로 향했다.

속초/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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