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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르포] 고 김용균씨 삼킨 벨트 앞엔 ‘안전제일’ 문구만…

등록 2019-04-03 22:28수정 2019-04-04 12:49

고 김용균 사고현장 첫 언론 공개
지상 30m 위 철망으로 만든 좁은길 사고 뒤 보강
소음과 매케한 냄새, 수북한 석탄가루 여전
진상규명위 발전소서 첫 회의…4개월간 현장조사
‘석탄화력발전소 특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3일 김용균씨가 숨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설비(컨베이어벨트)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석탄화력발전소 특별 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3일 김용균씨가 숨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 설비(컨베이어벨트)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여기가 고 김용균씨가 숨지기 직전 순찰을 위해 지나갔던 길입니다.”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 벨트가 지상 30m 위로 솟은 환승타워(TT05A)와 환승타워(TT04C)를 통과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 사이로 철망으로 만들어진 폭 1m 남짓의 좁은 길이 있었다. 철망 구멍 사이로 30m 아래 땅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탓에 한걸음을 내딛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새 보강 작업을 했네요. 용균씨가 일할 때는 철망과 철망 이음새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용균씨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린, 동료 이태성 발전노조 사무처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 김용균씨는 생전에 지상 30m 높이의 이 철망길을 혼자 걸으며 석탄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했다. 철망 구멍 사이로 30m 아래 땅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유진 기자
고 김용균씨는 생전에 지상 30m 높이의 이 철망길을 혼자 걸으며 석탄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했다. 철망 구멍 사이로 30m 아래 땅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사진 이유진 기자
위태로운 하늘길은 지난해 12월 용균씨가 숨진 채 발견된 9·10호기 환승타워 04C 구역으로 연결됐다. 입사 3개월차 용균씨는 석탄 컨베이어 벨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혼자 높고 컴컴한 길을 걸었다. 용균씨는 벨트 끝에서 이상 소음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기계 안으로 몸을 넣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균씨를 빨아들인 컨베이어 벨트 앞에는 ‘안전제일-접근금지’라고 적힌 주황색 줄이 딱 사람키만큼 쳐져 있었다. 무릎 꿇고 허리를 굽혀야 안을 볼 수 있었던 벨트 아래에는 석탄가루가 채 치워지지 않은 채 수북이 쌓여 있었다. 플래시를 켜고 현장을 보여주던 이 처장은 “응급상황 시에는 용균씨를 비롯한 하청 노동자들은 벨트가 가동 중이더라도 삽으로 이런 석탄가루를 치운다”고 말했다.

3일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진상규명위)가 출범을 선언하고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1차 본회의를 열었다. 4개월 동안 전국 9개 화력발전소 현장조사 등을 진행할 예정인 진상규명위는 용균씨가 숨진 태안 화력발전소를 첫 회의 장소로 선정했다. 회의를 마친 김지형 위원장(전 대법관) 등 16명의 위원과 자문위원 5명 등은 오후 3시부터 약 3시간 동안 발전소 현장 점검에 나섰다. 사고 현장이 진상규명위와 언론 등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3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3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날 진상규명위는 김씨 사고 현장인 9·10호기 환승타워뿐 아니라 1~8호기 석탄취급설비, 회처리설비, 탈황설비 등 발전소 전반을 둘러봤다. 원청인 서부발전 관계자들, 용균씨와 함께 일했던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행했다.

‘우우웅~’ 1호기 보일러실에 들어가자 소음과 함께 메케한 냄새가 덮쳤다. 난간 곳곳에는 석탄가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난달 4일 현장운전원 윤아무개(47)씨가 설비 점검을 하던 중 끼임 사고를 당한 컨베이어 벨트도 볼 수 있었다. 윤씨는 용균씨가 숨진 뒤 ‘2인1조’로 근무한 덕에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원래 노동자들의 이동통로가 마련돼 있어야 하는데 중간에 청소 설비를 설치하면서 동선이 막혔어요.” 이태성 처장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적인 부분이 많아 조금 더 공부를 하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상규명위 활동을 통해 용균씨와 같은 비극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사고 현장을 둘러본 김 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태안/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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