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에게 건강보험료(건보료) 납부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사회보장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2017년 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은 부모가 지역가입자인 경우 미성년자인 자녀도 원칙적으로 건보료 납부 의무가 있다.
1일 인권위가 공개한 결정문을 보면, 직장가입자의 자녀인 미성년자는 피부양자로 건보료를 납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가입자는 국민건강보험법 제77조 제2항에 따라 세대 구성원 전원이 연대해 보험료를 납부하게 돼 있어 지역가입자의 세대원인 미성년자도 건보료 납부 의무가 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그룹홈 등 사회복지시설에 거주하는 만 8살의 아동에게 부모의 체납보험료에 대한 독촉장을 보내는 등 미성년자에 대한 건강보험료 납부 의무 부과와 관련된 진정이 여러 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소득이 없는 미성년자에 대한 건보료 연대 납부 의무를 면제했으나 생계를 위해 근로를 해야 하는 미성년자에게는 여전히 납부 의무가 있다. 인권위는 건보료 납부 의무 면제 소득 기준이 최저임금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 납부 의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미성년자에게도 가해지고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또 이 같은 규정이 미성년자가 성인이 된 뒤 경제·사회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부 체납보험료가 있는 미성년자를 독촉 고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결손처분 등을 통해 미성년자의 보험료 납부 의무를 사실상 면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록이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권위는 이로 인해 개인이 장학금 신청, 학자금 대출, 취업 등 신용과 소득능력 평가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봤다.
인권위는 국외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국외의 건강보험체계 중 국영 의료서비스가 아닌 다른 유형에서 아동은 원칙적으로 건보료 납부 의무를 지지 않으며 한국과 유사한 건강보험제도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미성년자는 연대 납부 의무가 면제된다고 설명했다.
이에 인권위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납부 의무 부과 대상에서 미성년자를 제외할 것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보험료 납부 능력이 부족한 취약계층에는 사회연대의 원리에 따라 보험료를 면제 또는 감면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인권위는 대부분의 건강보험료 체납 미성년자의 체납액이 소액에 불과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미성년자의 체납액에 대해 결손처분으로 사실상 면제 조처하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미성년자 건강보험료 납부 의무 제도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미성년자에 대한 연대납부 의무를 없애는 ‘국민건강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2017년 2월 발의했고,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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