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를 부인하며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피의자에게 수갑을 채운 경찰의 행위는 피의자의 신체적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이 나왔다.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폭행 사건 당시 출동한 경찰이 신고자 김상교(28)씨를 위법한 방법으로 현행범 체포를 하는 등 인권을 침해했다고 밝히면서 경찰의 체포·조사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31일 인권위가 공개한 결정문을 보면, 지난해 10월10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산림조합 내에서 특수폭행 및 재물손괴 혐의로 현행범 체포된 ㄱ씨는 “피의자신문조서에 날인을 거부하자 경찰이 왼쪽 손에 수갑을 채워 날인하도록 강요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경찰은 ㄱ씨가 경찰 조사에서 다른 민원인을 공격할 우려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수갑을 채웠다고 주장했다. 인권위 조사에서 경찰은 “당시 ㄱ씨가 술에 취한 상태로 조사를 받았는데, ㄱ씨에게 조서 열람을 확인하는 서명 날인을 요구하자 갑자기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큰소리로 욕설을 하고 팔을 휘저으며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며 “다른 민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ㄱ씨를 피의자 대기석으로 이동시켜 수갑을 채웠다”고 밝혔다. 결정문을 보면, 경찰은 이날 오후 3시39분께부터 6분간 ㄱ씨의 왼쪽 손목에 고정체 수갑을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권위는 경찰이 ㄱ씨에게 수갑을 채운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당시 ㄱ씨의 행동에서 경찰이나 민원인 등 타인을 위협할 우려가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경찰의 주장에 대해 인권위는 사건 당시 시시티브이(CCTV) 영상에서 ㄱ씨가 경찰에게 항의하는 모습만 확인됐을 뿐 팔을 휘젓는 등 폭력을 행사하거나 다른 민원인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조사실에서 나가려고 하는 행동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태도는 통상적인 것으로서 다양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고, 당시 진정인에게 도주의 우려나 자·타해 위험성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인권위는 경찰이 ㄱ씨에게 수갑을 채운 행위를 헌법 제12조에서 보장하는 진정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판단해 당시 수갑을 채운 경찰관에게 주의 조처를 하고 유사사례 재발방지를 위해 소속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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