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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여성단체 “강간죄 구성요건 ‘동의’ 여부로 개정해야”

등록 2019-03-31 15:09수정 2019-03-31 15:15

한국여성민우회 등 209개 여성단체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결성
“강간죄의 구성요건 ‘폭행 또는 협박’ 여부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돼야”
관련 법안 8건 국회에 상정…1일부터 논의 시작
지난해 8월14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당시 1심 법원은 "(안희정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해 8월14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무죄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당시 1심 법원은 "(안희정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고 볼 만한 상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폭행 또는 협박’ 여부가 아닌 ‘동의’ 여부로 개정돼야 한다.”

한국여성민우회와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209개의 여성인권단체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연대회의)’가 30일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연대회의는 이같은 규정과 ‘최협의설’이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2차 피해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연대회의는 입장문을 통해 “그동안 판례는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상대방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경우로 한정하는 ‘최협의설’에 근거하여 성폭력을 매우 엄격하게 판단해왔다”며 “현행 강간죄 규정과 ‘최협의설’이 다양한 유형의 성폭력을 성범죄로 포괄하지 못하고 성폭력의 법적 처벌 공백을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대는 이처럼 현행법 규정과 ‘최협의설’에 따른 수사·재판 관행이 만들어낸 성폭력의 법적 처벌 공백이 권력관계를 기반으로 한 성폭행을 묵인해 왔다고 주장했다. 연대가 낸 입장문을 보면, 여성가족부는 ‘성폭력피해상담 분석 및 피해자 지원방안 연구(2018)’ 보고서에서 전국 4개의 성폭력상담소의 1년간 상담일지 중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에 대한 상담 516건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서 여가부는 ‘폭행·협박이 없는 성폭력은 폭행과 협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권력관계나 속임수, 가해자에 대한 신뢰를 이용해 항거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등의 다양한 가해자의 전략·전술에 의해 전개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보고서는 저항하거나 저항 의사를 표시할 수 없는 피해자의 취약성을 교묘히 이용하거나, 저항과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지만 기존의 성폭력 신화 및 피해자 비난 문화에 기대어 면책받고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점에서 폭행·협박 없는 성폭력은 악랄하고도 비열한 범죄라고도 했다. 지난해 8월 1심 법원이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을 두고, 여성계에선 피해자에게 ‘강력한 저항’ 등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판결이었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연대회의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이 동의 여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대는 입장문을 통해 ‘동의 없이’ 또는 ‘명백한 동의 없이’ 등으로 동의 여부에 초점을 둔 강간죄 구성요건을 두어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어떻게 동의를 구하였는가’ ‘무엇을 근거로 동의 여부를 판단하였는가’를 질문하도록 형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연대회의는 국제적으로도 이미 성폭력의 주요한 판단 기준을 ‘동의’ 여부로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대의 입장문을 보면,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2018년 제8차 한국 정부의 성평등 정책 전반에 대한 심의 후 형법 제297조를 개정해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부족을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연대는 또 독일·캐나다·영국·스웨덴 등에서는 이미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의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다고도 했다.

국회에도 이미 이 같은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홍철호(자유한국당)·강창일(더불어민주당)·백혜련(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변경하거나 비동의간음죄를 별도로 신설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8개의 형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상정돼 있는 상태다. 이들 법안은 지난 25일부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가 시작돼 오는 4월1일부터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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