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죄 및 성범죄 혐의 재수사를 촉발한 일등공신은 ‘김학의 동영상’이다. 재수사에서 이 동영상이 어떤 구실을 할지 따져봤다.
동영상은 모두 4개가 존재한다. 화질만 다를 뿐 같은 동영상들이다. 최초 촬영본은 시디(CD)에 저장됐다. 시디 재생 화면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고, 휴대폰 촬영 영상을 다시 시디에 저장하는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4개의 판본이 만들어졌다. 과거 검찰과 경찰은 압수수색 등을 통해 점차 나은 화질의 동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13년 3월 김학의 전 차관 임명 직전 경찰이 처음으로 입수한 동영상은 화질이 선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재생 중인 화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했기 때문이다. 김 전 차관 사임 후인 5월,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판본에서는 동영상 속 남성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화질이 뚜렷했다고 한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고 말한 바로 그 동영상이다.
나아진 화질에도 불구하고 해당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많지 않다. 강원도 별장에서 2006년 7∼8월께 찍힌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또 남성은 특정할 수 있어도 여성이 누군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1분40초 분량인 동영상에는 노래를 부르는 남성이 등장한다. 이 남성은 노래를 부르다가 한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다. 과거 이 동영상을 봤던 검찰과 경찰 수사팀은 동영상 속 남성의 옆모습은 비교적 선명하지만 여성은 고개를 돌리거나 숙이고 있어 식별이 불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동영상 촬영 시점은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 범죄 시기와 일치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에서 살펴본 특수강간 혐의는 2007년 4~5월, 2008년 3~4월 각 1건씩이었는데, 이는 동영상이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2006년 7~8월 이후다. 동영상이 범죄사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결국 ‘김학의 동영상’은 이번 재수사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으로 보기는 힘들다. 다만 당시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을 출입하며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정황 증거’ 구실을 할 수 있다. 2013년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27일 “범죄를 증명하는 영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별장 출입 자체를 부인하는 김 전 차관의 거짓말을 입증하는 중요한 물증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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