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물론 제1야당 국회의원까지 수사 대상으로 지목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익명의 투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조사 대상자의 출석을 압박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지만,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내용을 곧바로 공개하는 것은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상조사단 공보를 맡고 있는 김영희 변호사는 26일 오후 자신 앞으로 왔다는 한 통의 편지를 취재진에 공개했다. 3월25일 소인이 찍힌 편지에는 “과거 김학의 검사장님 계실 때 춘천지검에 근무하던 검사입니다. 당시 소위 별장접대에 대하여는 춘천지검에 알만한 검사들은 다 압니다”라는 주장이 적혀 있다. 특히 건설업자 윤중천씨에게 김 전 차관을 소개한 법조인이 “조사에서 누락됐다”며,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소속 인사와 절친(사시 동기)이어서 누락된 것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실렸다. 김 변호사는 편지 내용 중 검찰과거사위 소속 인사의 실명은 공개하면서도 조사에서 누락됐다는 법조인 실명은 가렸다.
이 편지는 발신인이 ‘춘천지방검찰청 ○○○’로 돼 있지만, 편지에는 “가명으로 보내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이 편지는 일부 언론사에도 발송됐다. 김 변호사는 “오늘 편지를 받았다. 보도에 참고하기 바란다”고 했지만, 조사에서 누락됐다는 법조인이 누구인지, 편지를 보낸 사람이 실제 전·현직 검사인지, 제기한 의혹이 일정 부분 확인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조사에서 빠졌다는 해당 법조인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과거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검경 관계자 등은 검찰 출신 ㄱ변호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ㄱ변호사는 2013년 경찰 수사 당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대상자 선정과 출석 요구 등은 검찰과거사위가 아닌 진상조사단이 한다. 검찰과거사위 쪽은 “진상조사단으로부터 ㄱ변호사를 조사하겠다는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검찰과거사위가 “누락”시킨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편지에서 “절친”이라고 지목한 검찰과거사위 소속 인사 역시 “ㄱ변호사라는 사람과 사법연수원에서 만났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친분 관계는 물론 일면식이 없다”고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진상조사단이 ㄱ변호사 출석을 압박하기 위해 편지를 공개한 것 같다”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익명의 투서를 언론에 일단 공개부터 한 것을 두고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수사까지 염두에 뒀다는 점에서 ‘기본 절차’를 밟아가며 진행해야 할 조사를 여론에 기대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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