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과 2015년 두차례 무혐의 처분으로 끝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범죄 및 뇌물수수 의혹 사건을 전례 없는 ‘3차 수사’로 이끈 핵심 동력은 특수강간 혐의다. 간접증거인 ‘김학의 동영상’의 존재가 여론의 공분을 샀고, 피해 여성의 진술을 외면한 과거 검찰 수사 내용이 알려지면서 재수사 여론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는 25일 뇌물수수 혐의와 수사 외압 의혹은 재수사를 권고하면서도, 정작 특수강간 혐의는 제외했다. 검찰과거사위와 실무를 맡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내부에서도 ‘특수강간죄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얘기다.
검찰과거사위는 지난해 2월 일찌감치 김 전 차관 관련 사건을 1차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진상조사단 1차 조사팀은 지난해 말까지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특수강간 혐의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조사에 응한 피해자의 진술은 과거 검찰 수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과거 검찰처럼 자신을 몰아세우는 듯한 조사 방식에 불만을 품고 비협조로 돌아섰다고 한다. 진전된 내용을 담은 추가 진술 확보에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지난해 말부터 진상조사단이 ‘조사가 미진하다’며 여러 차례 활동기간 추가 연장을 요구했지만, 검찰과거사위가 번번이 거부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국 올해부터 김 전 차관 사건을 새로 맡은 진상조사단 2차 조사팀은 뇌물수수와 수사 외압 쪽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했고, 해당 혐의 수사 권고로 이어졌다. 검찰과거사위는 지난 25일 “특수강간 혐의와 관련해 구체적 보고를 받지는 못했다. 진상조사단은 추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수사 권고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했다.
재수사 권고에서 특수강간 혐의가 제외된 데에는 2015년 피해 여성이 낸 재정신청(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기소 판단을 구하는 절차)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법원도 김 전 차관 특수강간 무혐의 처분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얘기다. 형사소송법에서는 재정신청이 기각된 사건은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추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6일 “기존에 없던 새로운 증거가 있어야 재수사가 가능하다는 취지다. 현 상황에서 김학의나 윤중천이 특수강간 혐의를 자백하지 않는 이상 새로운 증거가 나올 여지도 없어 보인다”고 했다.
반면 검찰과거사위 한 관계자는 “재정신청은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특수강간 혐의 입증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었다. 피해 여성들의 진술을 ‘옛날 이론’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성범죄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적극 반영하는 요즘 추세가 ‘새로운 증거’ 판단 기준이 될 경우 과거 무혐의 처분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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