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대 국어교육과에 이어 초등교육과에서도 오랫동안 남자대면식이 이뤄졌고 여학생들의 얼굴평가, 순위 매기기 등을 했다는 추가 폭로가 나왔다. 22일 오전 서울교대 인문관 벽에 교육학과 학생들의 사과문과 성희롱 규탄 대자보가 붙어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 검사장이 물었다. 검찰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무리한 기소’를 해온 검찰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그날 검사장은 “기소하는 것보다 기소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검찰이 기소하지 않는다면 재판에서 증거가 공개될 수도 없고, 결국 진실을 다툴 기회조차 사라지게 된다는 논리였다.
최근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온 ㄱ씨도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ㄱ씨의 사건은 단순하지 않았다. 3년 전 만난 남성과 두 달 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했다. ㄱ씨는 이 남성과 한 번의 성관계(비동의간음)를 했고 여러 차례 성관계를 강요당해왔다고 했다. 헤어지기로 한 날도 모텔에 갔고 알몸이 되었다고 한다.
이날 남성은 ㄱ씨의 나체를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사진을 묘사할 수는 없지만, 검찰 설명대로라면, ㄱ씨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찰칵’ 하는 소리에 놀란 ㄱ씨가 그 자리에서 남성에게 사진을 삭제하라고 했지만 남성은 삭제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진의 존재를 안 ㄱ씨는 남성을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남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했다.
검찰은 왜 불기소 처분을 했을까. 불기소 처분서를 보면, 검찰은 ㄱ씨가 남성에게 호감을 갖고 만났다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당시 남성의 강압적 태도 때문에 울고 있었다는 ㄱ씨의 주장을 검찰은 믿지 않았다. 대신에 실제 성폭행을 당할 것이 두려웠다면 신고를 하거나 모텔을 빠져나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 발생 무렵 ㄱ씨가 지인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ㅋㅋ’도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판단할 때 ㄱ씨가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주장은 다르게 생각해볼 지점이 많다. 우선 호감을 갖고 만나는 사이에서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불법촬영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가. 부부강간이나 데이트 강간 등 친밀한 사이에서도 성폭력 범죄는 일어난다. 내연관계라서 성폭력이 용인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친밀한 가해자’에 대한 처벌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시대다.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것이 성범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될까. ㄱ씨는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망설임과 고민이 많았다.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조금 더 컸다”고 답했다. 또 “옷이 벗겨진 이후 객실을 뛰쳐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체 사진의 촬영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 후 ‘ㅋㅋ’ 메시지를 보낼 수는 없는 걸까. 감당하기 힘든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도 그 상황을 알지 못하는 지인에게 알리는 사람은 드물다. 순간의 감정을 감추거나 포장하는 것이 사회생활을 하는 보통의 사람일 수 있다. 지난 3월초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대검찰청 앞에서 이런 내용으로 검찰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ㄱ씨는 검찰의 판단이 맞았는지 다시 묻기 위해 대구고검에 항고했다.
검찰의 성인지 감수성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여론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에 대해 검찰의 무혐의 판단이 옳았냐고 묻고 있다. 추가 증거나 진전된 진술이 없는 이상 김 전 차관의 혐의 입증이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어찌 됐든 검찰은 질문에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시 수사팀은 피해 여성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불기소 처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조사 당시 수사팀은 피해자와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친밀한 관계’에 집중했다.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김 전 차관과 윤씨에 대한 수사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검찰이 답을 한다면 과거 수사 당시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 적 있는지 먼저 되물어야 한다. 6년 전 부실 수사 논란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도 검찰 수사는 좀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
최우리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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