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동영상이 있는데도 어떻게 두차례나 무혐의 처분을 받을 수 있었을까? 애초 건설업자 윤중천씨가 잘나가는 고위검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성접대를 했다는 것인가? 왜 이 사건 피해자는 수년째 억울함을 호소할까?’
6년이 지난 현재도 김 전 차관 사건을 둘러싼 의문점들은 여전하다. 많은 사회적 관심 속에서 진행됐지만 2013년 경찰과 검찰 수사 때 이런 의혹들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이 사건 관련 수사 외압 및 뇌물 의혹 등을 검찰로 넘겨 재수사하게끔 하려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단, 가장 먼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수사 외압 의혹의 경우, 적용 혐의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공소시효가 7년이라 단서만 있으면 수사 착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특히 진상조사단은 최근 조사 과정에서 당시 경찰과 검찰 수사에 청와대 등의 외압이 있었던 단서를 일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 수사팀에 ‘박근혜 청와대’가 압박을 가했다는 수사팀 실무자의 진술도 공개된 상태다. 지난 23일 <한국방송>(KBS)은 당시 경찰 실무자의 말을 인용해 정식 수사 착수 전인 2013년 3월 초 김학배 경찰청 수사국장이 ‘인사권자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굉장히 부담스럽다’ ‘브이아이피(VIP·대통령)의 관심이 많다’는 등 부담을 토로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박근혜 청와대’ 외압설은 6년째 이 사건의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같은 해 3월13일 보란 듯이 김 전 차관이 ‘사법연수원 동기(채동욱)가 검찰총장이 되면 옷을 벗는다’는 관례를 깨고 법무부 차관에 임명된 것 자체가 박근혜 정부와 김 전 차관의 ‘특수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의혹 제기 엿새 만에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다. 진실을 밝혀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사임한 김 전 차관의 당당한 태도 역시 화제였다. 그 뒤 얼마 안 돼 경찰청 수사국장·수사기획관·특수수사과장·범죄정보과장 등 경찰 수사팀 지휘 라인이 줄줄이 교체됐다.
검찰 수사 과정 역시 의심을 사는 대목이 많다. 2013년 5월 확보된 김 전 차관의 영상은 “풀에이치디(FHD)라고 불렀다. 누구인지 포렌식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선명”(경찰 관계자)했지만, 김 전 차관은 의혹 초기 성접대가 이뤄졌다는 원주 별장 소유주인 윤중천씨와의 관계 자체를 부인했다. 김 전 차관의 거짓말 가능성이 컸지만, 김 전 차관은 비공개 소환됐고 그의 조서는 혐의를 부인하는 말들로 채워졌다. 물증을 들이대며 자백을 받아내려 하거나, 논리적 빈틈을 파고드는 일반적인 수사기법은 동원되지 않았다.
대신 추궁당하는 건 피해자 몫이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피해자 ㄱ씨에게 “왜 곧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고 반복해 질문하는 등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에 흠집을 내려는 듯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초기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혹한 시기였다. 검찰총장까지 사찰해서 내보내지 않았느냐”며 “인사로 신호만 주면 검경이 알아서 잘 기던 시절”이라고 돌이켰다.
사건의 뿌리랄 수 있는, 건설업자 윤씨의 ‘접대’ 동기가 규명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윤씨는 지난 21일 진상조사단의 소환 조사에서 성접대 사실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뇌물죄 성립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또 윤씨가 김 전 차관에게 상당한 금전적 이익을 제공했다는 관련자 진술 등 단서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가성 있는 성접대는 뇌물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지만, 뇌물액수를 산정하기 어려워 그 자체만으로는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죄를 적용하기 힘들다.
당장 수사의뢰 혐의에 포함되진 않더라도 가장 폭발력이 큰 이슈는 특수강간 혐의다. 피해자 이아무개씨는 2014년 김 전 차관을 특수강간 등 혐의로 고소할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2명 이상이 공모해 범행을 벌인 특수강간 혐의 역시 공소시효가 15년으로 수사와 처벌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조사단은 앞서 두번이나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한 사건인 만큼 재수사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증거를 비롯해 수사 명분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조사를 탄탄하게 마무리한 다음 재수사를 의뢰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양진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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