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주관으로 비상상황실 ‘워룸’(war room·전쟁실)에서 노조사건을 총괄지휘한다. 노조 설립에 대한 위기 상황별 시나리오를 완비하고 각 계열사별 임무수행능력 모의훈련 수준도 중점 평가하겠다.”
‘비노조 경영’에 사활을 건 삼성이 2003년부터 ‘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작성하고 대응 전략을 마련해 계열사와 함께 노조 와해 공작을 적극 수행해온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삼성 그룹이 노조 와해 작전의 ‘본부’ 노릇을 하면서 계열사 본사와 사업장의 노조 설립 움직임을 밑바닥부터 살피고 ‘군사작전’ 수준의 대응 전략을 수립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심리로 열린 ‘삼성 노조와해 사건’ 공판에서 검찰은 서증 조사를 실시했다. 검찰은 5시간이 넘도록 삼성이 축적해온 약 10년간의 문건 내용을 모두 검토하며 삼성이 계열사나 협력사와 연계해 실행한 노사 ‘그린화’, ‘안정화’ 방침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삼성이 말하는 안정화란 노조 조기 와해를 의미할 뿐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검찰이 재판에서 공개한 문건을 살펴보면, 삼성은 2003년부터 ‘그룹 노사전략’이라는 이름의 문건을 매해 작성해 전 임직원에게 ‘비노조 경영’의 우수성을 인식시키고자 했다. 문건에는 그룹이 어떻게 하면 노조 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을지 각종 노조 설립 시나리오를 제시한 정황이 드러난다. 삼성 경영전략팀에서 작성한 2010년 그룹 노사전략을 보면 삼성은 노조설립이 회사 내 ‘불만세력’에 의한 결과로 봤다.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불안 계층, 실적이 부진한 문제인력, 회사정책 반발세력’이 노조 설립의 주동자라는 것이다. 각종 문건에는 이러한 불만세력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문건에는 전시 상황을 연상시키는 듯한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2010년 법무 홍보부서장을 상대로 한 조직문화 강의안에서는 노조 활동을 ‘행동감염’이라 칭했다. 노조 설립 ‘징후’를 포착해 신속한 안정화를 이루지 못하면 “‘행동감염’이 발생해 세력 확산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우려다. 2012년 삼성 에스디아이(SDI) 노사전략을 보면 노조의 “기습공격 대비, 역공 시도”에 대비해 “두 번째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는 등 노조에 대응하는 담당자의 역량을 설파했다.
삼성이 고안한 노사 전략은 계열사와 협력사로 고스란히 이어져 실제 노조 대응 전략으로 활용됐고, ‘문제 인물’들의 성향과 신상을 자세히 적은 블랙리스트까지 공유됐다.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삼성 에스디아이(SDI)에서는 ‘관심인물’로 지정된 노동자들의 ‘계보도’를 만들었다. 이들과 가까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관찰하기까지 했다.
노조 설립 움직임이 보이자 ‘안정화’ 일환으로 폐업을 맞이한 협력사도 있었다. 삼성은 협력사 삼성전자서비스 남부지사(2012년), 나산협력사(2014년), 서해협력사(2014년) 등에 폐업을 지시했다. 검찰은 “노조가입률이 높고 집행부가 있는 협력사를 부진협력사로 정해 노조세력 약화를 위한 전략으로 폐업을 했다”고 밝혔다. 문건에는 “폐업 진정성 확보를 위해 협력사 사장의 건강상 사유, 경영약화를 이유로 폐업을 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검찰이 서증조사를 모두 마치자 변호인단 쪽은 “이렇게 광범위하게 조사를 했을 줄 몰랐다”며 “(저희도) 연구를 해서 다음 기일에서 4~5시간 정도 반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치열한 법적 공방을 예고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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