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장애인복지관에서 2010년부터 음악치료사로 근무한 ㄱ씨는 2014년 결혼 뒤 시험관 아기 시술만 3번 했다. 그러나 3번 모두 유산됐다. 2017년 9월22일 ㄱ씨는 병원으로부터 ‘습관적 유산자’라는 판정을 받고 8주 동안 안정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ㄱ씨에게 “튼튼한 사람은 체외수정 시술을 하고 나서 달리기를 해도 되고, 아무렇지 않게 직장에 다녀도 되는데 습관성 유산자인 경우에는 체외수정 시술 및 치료 기간 동안 링거 주사도 맞고 쉬어야 하며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달 25일 ㄱ씨는 복지관에 8주 동안의 병가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후 2개월 휴직 신청을 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ㄱ씨의 휴직 여부를 결정하는 복지관 2차 인사위원회에서 한 인사위원은 “직장과 임신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라며 사실상 사직을 강요하기도 했다. 같은 달 27일 ㄱ씨는 ‘임신 준비를 이유로 사직 권유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해 권고사직 처리가 됐다. ㄱ씨는 “습관성 유산 치료를 위해 낸 병가와 휴직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습관성 유산 치료를 위한 병가와 휴직을 불허하거나 사직을 요구한 행위는 차별이라는 결정문을 내고 경남도지사와 경상남도장애인복지관장에게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권고했다고 8일 밝혔다.
ㄱ씨가 근무했던 복지관은 인권위 조사에서도 거듭 습관성 유산 치료가 병가나 휴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복지관장은 “ㄱ씨가 병가 신청 당시 임신한 상태도 아니고, 습관성 유산이라는 병명이 복지관 복무규정의 병가, 인사 규정의 휴직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ㄱ씨의 신청을 허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음악치료사인 ㄱ씨가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을 위해 이전에도 휴가를 계속 사용해 이용자 부모들의 민원이 제기됐었고, ㄱ씨의 휴직 기간 동안 대체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병가와 휴직 신청을 허가하지 않고, 사직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같은 복지관의 결정이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습관적 유산은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 등록된 질병이기 때문에 복지관의 복무규정과 인사 규정, 병가와 휴직의 목적을 종합해 볼 때, 복지관장이 ㄱ씨의 병가와 휴직 신청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면 이를 허가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습관성 유산의 상태가 되면 임신 예후가 극히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고, ㄱ씨가 습관성 유산 치료와 안정적인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신 이전부터 안정치료가 필요해 장기 병가 또는 휴직이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고 보았다.
“ㄱ씨를 대신할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복지관 쪽의 주장에 대해서도 인권위는 ㄱ씨가 대체인력 채용이 가능하도록 1년 휴직을 할 수 있다고 의사를 밝혔음에도 대다수의 인사위원들이 ㄱ씨에게 직장과 임신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취지로 말했다며 ㄱ씨의 병가와 휴직을 불허한 것은 임신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경상남도장애인복지관장에게 유사한 사례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경상남도지사에게는 위탁기관을 비롯한 관내 관리·감독 기관에서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 실태를 파악하고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할 것을 권고했다.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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