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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뻔뻔하고 펀펀하게…“나는 내 장애를 즐기고 있다”

등록 2019-03-03 09:27수정 2019-03-03 21:43

[토요판] 요조·오은의 요즘은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

일곱살 때 사고로 후천적 장애
병원에서 ‘개그콘서트’ 보며
코미디언의 꿈 꾸기 시작해

연극·마술 배우며 기본기 쌓고
2017년 12월 ‘오픈 마이크’로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 데뷔

매주 ‘코미디 헤이븐’ 클럽에서 공연
항상 쇼 마치며 하는 말
“저는 제 장애를 즐기고 있습니다”
10년 뒤에도 그 말 들을 수 있기를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씨가 2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씨가 2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어떤 코미디 쇼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이 쇼의 무대를 준비하는 데는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다. 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와 물병 하나, 그리고 마이크 스탠드 하나면 된다. 조금 뒤 그 단출한 무대에 코미디언이 홀로 등장한다. 어쩐지 코미디언도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거나 기괴한 옷을 입고 있지도 않다. 그저 평범하게 무대 중앙까지 뚜벅뚜벅 걸어나온 코미디언은 자신만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마이크를 잡는 것으로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알린다. 스탠드업 코미디 쇼는 이렇게 시작된다.

마이크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고 웃음을 끄집어내는 것을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한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최정윤의 <스탠드업 나우 뉴욕>이라는 책에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재즈 음악과 더불어 가장 미국적인 문화 예술로 여겨지고 있다고 적혀 있다.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다듬어져온 미국의 스탠드업에 견줘 한국의 스탠드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가깝다. 그러나 자니윤, 주병진, 김형곤부터 최근의 김제동, 유병재까지 한국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한 코미디언이 있어왔으며 2017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 전문 레이블인 ‘코미디 얼라이브’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스탠드업 라이브 코미디쇼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무대나 코미디언이나 심심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쇼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그 언어의 수위에 적잖이 놀랄 것이다. 이를테면 섹스, 종교, 정치, 젠더, 인종 같은 문제들이 그 무대의 주요 주제들이고 듣는 사람을 웃기려는 건지 불편하게 하려는 건지 종종 알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들의 조크는 크게 두 요소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전제 혹은 배경(premise)과 펀치라인(punch line)이 그것이다. 밑밥을 깔듯이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하고(premise), 그것을 해소해주는(punch line) 순서를 반복하면서 농담을 던지는 것이다.

이제 소개할 코미디언은 아주 편하게 긴장감을 조성하는 능력을 지녔다. 어쩌면 그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긴장감이어서 관객들은 그가 나타나자마자 어쩔 줄 몰라 숨을 죽인다.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그냥 내 이야기 들려드리는 것뿐
사람들 즐거워하면 나도 기뻐”
뇌 손상으로 오른팔에도 장애
‘토미’ 이름 지어주고 친구 삼아

한기명의 펀치라인

“지금 여러분이 무슨 생각 하시는지 알아요. 무대 위에서 망가지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걸 웃어야 돼, 말아야 돼, 하고 생각하고 계시잖아요. 안 웃자니 장애인 차별하는 것 같고, 웃자니 장애인 비하하는 것 같고. 오늘은 맘 편하게 비하로 갑시다.”

오늘은 비하로 가자. 이것은 국내 유일의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26)의 펀치라인이다. 한기명이 던지는 펀치라인들은 강력하다. 그는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무대 위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자신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는 장애 때문이지 술을 마셔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영화 <말아톤>에서 지적장애 연기를 펼친 배우 조승우의 연기를 두고 한기명은 무대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짜식, 귀엽네.” 그러면서 비장애인의 장애 연기에 ‘솔’(soul)이 담겨 있겠냐고 묻던 그는 장애인인 자신이 직접 ‘솔 연기’를 보여주겠다며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대사를 엉망으로 선보인다.

한기명의 코미디는 여운이 길다. 서론과 본론만 있고 결론이 없는 코미디 문법에서 한기명의 코미디는 보는 사람에게 직접 결론을 묻는다. 지난해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기명의 코미디를 본 뒤 나는 줄곧 그 여운에 시달리다가 이제야(지난 2월19일 한겨레신문사) 그를 만나게 되었다.

▲ 본인을 ‘뻔장코’(뻔뻔한 장애인 코미디언)라고 소개한 영상을 보았어요. 뻔뻔하다고 하는 표현은 어떻게 사용하게 됐나요?

“장애인으로서 위축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의미에서 뻔뻔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는데요, 펀펀(fun fun)이라고 읽힐 수도 있으면 좋겠어요. 즐거운 장애인 코미디언이요.”

▲ 그러고 보니 기명씨는 의식처럼 공연 시작할 때 매번 안경을 벗고 하시는 말이 있지요?

“네. 저는 ‘안경을 벗어야 눈에 뵈는 게 없다’는 말을 꼭 하고 시작해요.”

▲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뻔뻔해지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제스처이겠네요.

“실제로 제가 안경을 벗으면 잘 안 보여요, 시력이 안 좋다 보니까.”

▲ 눈뿐 아니라 무대에서 ‘장애 종합 선물세트’라고 본인의 장애를 설명하셨는데.

“네, 저는 시력장애가 있고 귀도 한쪽이 아예 들리지 않아요. 청각장애가 있고, 지체장애도 있고요.”

▲ 무대에서 이 장애들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것이라고 하셨어요.

“일곱살 때 태권도 학원에 다녔었는데요. 학원 차량에서 제가 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차가 그냥 출발을 했다고 해요. 가족들이 알려주기로는 그때 사고가 꽤 컸던가 봐요. 처음 간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하다고 저를 받아주지 않았대요. 그래서 다른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시작했지요. 식물인간 상태로 반년을 중환자실에 있다가 깨어났어요.”

그는 그때 기억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사건 당시의 기억도, 식물인간 상태에서 회복한 뒤의 기억도 거의 나지 않는다고. 다만 기억나는 것은 끝도 없는 무력감, 그리고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였다.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 우연히 개그콘서트를 보게 되었어요. 그걸 보면서 나도 사람들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고 지금의 코미디언의 꿈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했어요.”

▲ 학창 시절의 기명씨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학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 학교를 다녔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조용하진 못해요.(웃음) 디아이디(DID) 정신으로 살았죠.”

▲ 디아이디가 뭔가요?

“들이대. (그리고 그는 가수 김흥국씨 흉내를 냈다.) 장애를 갖고 있다 보니 친구들한테 따돌림도 당하고 놀림도 많이 받고 그랬는데 굴하지 않고 그냥 들이댔어요.”

초등학교에 들어가 장애가 없는 또래 아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면서 어린 한기명은 자신이 과연 장애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방송국의 공채 코미디언으로 뽑힐 수 있을지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현장학습으로 연극 공연을 관람하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자기 이야기도 아닌데 자기 이야기처럼 연기하는 배우들이 정말 멋있어 보였어요. 일단은 연기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군가를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은 연기 실력을 다진 이후의 꿈으로 일단은 미뤄두고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모임에 많이 나갔던 것 같아요. 코미디언 이정수 형이 주최한 놀이콘서트에도 나갔고, 거기에서 심상범 마술사님을 알게 되어서 그분께서 진행하시는 ‘행복한 마술학교’에도 참여했어요. 거기서는 마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강연도 들을 수 있거든요. 그곳에서 배운 게 많아요.”

▲ 연기뿐만 아니라 마술까지 배우셨어요? (내가 혀를 내두르자 그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요조님 보여드리려고 마술을 준비했는데…. 보여드려도 될까요?”

▲ 세상에, 인터뷰하다가 마술을 보는 경험은 처음이에요.

“저도 인터뷰하면서 마술 해보긴 처음이에요.(웃음)”

‘컵 앤 볼’ 마술이라고 했다. 컵 세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그 안에서 작은 공이 하나였다가 두개, 세개로 늘어났다. 한기명은 마술적 요소를 위해서라며 내 콧기름을 묻히기도 하고 사진기자님께 기합을 외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심상범 마술사님께 배운 건데요. 제 마술을 보시고 정말 대단하다고 해주셨어요. 두 손으로 하는 것도 힘든 게 마술인데 어떻게 한 손으로 하냐면서.”

컵 앤 볼 마술을 마친 한기명은 카드마술도 보여주었다. 카드마술은 한 손으로 하기 더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는 “그런 선입견은 날려버리세요” 하고 소리쳤다. 마술은 실패했다. 그러자 그는 “자, 이렇게 실패하는 마술이었습니다” 하고 외쳤다. 역시 ‘뻔장코’가 맞았다.

▲ 지금도 ‘행복한 마술학교’에서 배우고 계세요?

“네, 지금도 배우고 있어요. 매달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행복한 마술학교에 누구든지 오실 수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찾아주세요.”

▲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극단에 들어가셨다고요?

“네, 장애인 연극단체에 입단했는데 운이 좋게도 바로 연극 연습을 시작했어요. 여태까지 네 작품에 출연했어요. 그중 ‘위로받을 햄릿’이라는 작품은 제 이야기를 가지고 만든 작품이어서 각별했죠.”

▲ 주인공을 맡으셨군요.

“네, 제가 주인공 햄릿 역이었어요. 제 이야기다 보니 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느낌이었어요.”

▲ 가족이나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연극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하셨어요. 연극이 돈벌이가 되겠느냐, 먹고살 수 있겠느냐 이런 말씀도 하셨고. 물론 친구들은 응원해줬지만요. 나중에는 가족들도 좋아해주었어요. 첫 공연 때는 어머니가 보러 와주셨었고, 형은 ‘바보 이반’이라는 작품 했을 때 보러 왔었고.”

▲ 그러고 보니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아버지, 어머니, 위로 형, 아래로 남동생이 있어요.”

▲ 둘째시군요.

“제일 서럽죠.”

요조씨와 인터뷰를 하던 중 한기명씨가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요조씨와 인터뷰를 하던 중 한기명씨가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갑분싸’했던 첫 무대의 기억

연극과 마술로 기본기를 다지던 한기명이 본격적으로 코미디에 발을 들인 것은 언제였을까?

“2017년 12월, 새해에는 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던 때였어요. 마침 그때 페이스북으로 ‘코미디 얼라이브’ 정재형 대표님께서 올린 글을 보았어요. 스탠드업 코미디 오픈 마이크 모집. 바로 신청했죠.”

스탠드업 코미디를 꿈꾸는 신인들에게 5분간 무대를 내어주는 ‘오픈 마이크’ 무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잡을 수 있는 마이크. 한기명도 그곳에서 처음 그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무대는 어땠을까? 정재형 대표가 어느 영상에서 한기명의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옮겨와보겠다.

“장애인이 장애를 가지고 코미디를 하는 것이 처음엔 너무 재미있었고 뒤이어 감동이 찾아왔다. 할 수 있겠구나 싶은 확신이 들었다. 이 사람을 멋있게 만들어주고 싶다.”

▲ 혹시 첫 무대 기억나세요?

“기억하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 저도 뮤지션으로 섰던 첫 무대가 기억나는데, 제 말이 그 말이에요. 기억에서 도려내고 싶어요.

“처음엔 그냥 하소연을 했어요. 정권이 바뀌어서 청년들은 일자리도 늘고 취업률도 높아져서 좋겠다고 하는데, 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현실을 이야기한 거죠. 길거리에 장애인이 안 보이는 것은 장애인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일단 나올 수가 없고, 나와도 갈 데가 없다고.”

▲ 분위기가…?

“요즘 말로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다)였죠. 첫 코미디를 심상범 마술사님께서 보러 오셨거든요. 다 보시고 나서 연락을 주셨어요. ‘기명아, 너의 무대 잘 봤어. 장애 문제를 공론화하려는 시도는 좋은데, 그런데 일단은 그냥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장애와 네가 겪은 경험을 가지고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말씀해주셨죠.”

▲ 정말 값진 피드백이었네요.

“코미디 얼라이브 팀이 매주 두번 모여서 회의를 하거든요. 그때마다 동료들도 도움을 많이 줘요.”

▲ 실제로 장애를 갖고 계신 분들로부터도 응원을 많이 받으시죠?

“정말 재미있게 봤다고 격하게 공감해주세요. 저에게 개인적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오시는 분도 계시고요. 고등학생이었는데,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럴 때 정말 코미디를 하는 보람을 느끼죠.”

▲ 이제는 살면서 겪는 불쾌한 일들도 다 소재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은 여유가 생겼겠어요?

“그럼요. 제가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어떤 할머니가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셨어요.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대뜸 ‘어쩌다 몸이 그렇게 됐어?’라고 하시더라고요. 할머니에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씀드렸죠. ‘전철 공짜로 타려고요.’”

▲ (웃음) 할머니께서 당황하셨겠어요.

“아무 말씀 못 하시더라고요. 할머니도 제 맘 아실 거예요. 그분도 공짜로 전철 타시잖아요? 업종은 다른데 방향은 같다고 해야 하나?(웃음) 아무튼 이 일도 무대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단골 소재가 됐죠.”

▲ 무대에서, 혹은 무대 아래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조심스러워 쩔쩔매는 태도들과 자주 맞닥뜨리실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하세요?

“일단 제가 먼저 말을 건네려고 해요. 그냥 편하게 하시라고. 안 잡아먹는다고.”

▲ 코미디 소재는 대부분 경험에서 찾으시나요? 자신의 장애를 웃음의 소재로 이용하는 데도 전혀….

“네, 저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아요. 그냥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뿐이고, 듣는 사람들이 웃고 즐거워하면 저도 기뻐요.”

▲ 본인의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을까요?

“아직 우리나라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하니까, 선입견이나 편견 같은 것을 많이 깨주고 싶죠.”

▲이를테면?

“장애인을 보면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시지만, 일단 의사를 좀 물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도와드릴게요’가 아니라 ‘도와드릴까요?’라고. 우리의 의사를 먼저 물어봐주시면 좋겠고요. 그 외에도 참 많죠. 제가 하나하나 깨드릴게요.”

평생에 걸쳐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했을지도 모르는 장애가 한기명의 무대에서는 그냥 장난감이 된다. 그가 주름잡고 있는 무대에서는 절뚝거리는 다리도, 잘 보이지 않는 눈도, 연기력에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조승우라는 배우도, 무례해서는 안 되는 할머니도 그를 말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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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일자리, 장애 등급제 등
현실 문제도 이야기하고 싶어”
장애인활동가, 영화배우로도 활동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한기명씨는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서 한기명씨는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에 대해서도 꼭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오른팔 ‘토미’와 함께

사실 한기명은 무대에 오를 때 혼자가 아니다. 토미와 함께한다. 왼쪽 뇌를 다치는 바람에 그의 오른팔은 주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한기명은 그 오른팔에 토미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무대에서 사람들에게도 소개한다. “얘는 내 친구 토미예요. 토미, 사람들에게 인사해.” 그러고 나서 한기명은 진지한 얼굴로 ‘병신’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병신’은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니까 쓰지 말자고 엄숙하게 말하고 있는데 토미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의 이야기를 방해한다. 한기명이 결국 자신의 오른팔한테 “가만히 좀 있어, 이 병신아!” 하고 소리치는 순간 보는 사람은 웃으면서도 절망스럽다.

▲ 이름을 왜 토미라고 지으셨어요?

“잠깐만요, 토미 자고 있는데 깨울게요. 토미, 일어나.”

인터뷰 내내 오른팔을 지그시 누르고 있던 왼손을 떼자 토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냥 외국인 친구를 갖고 싶었어요. 익숙한 영어 이름이잖아요. 하이, 토미!”

▲ 어떻게 팔에 인격을 부여할 생각을 하게 되신 거예요?

“코미디언 동료 가운데 이재규라는 친구가 있는데요. 재규와 같이 아이디어를 짜다가 떠올리게 되었어요.”

▲ 저는 이 토미 이야기가 너무 좋았어요. ‘토미’라는 노래를 만들고 싶을 만큼.

“정말요? 토미, 가만있어. 흥분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 (웃음) 그런데 제가 만들고 싶다고 해서 뚝딱 제 맘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알죠, 너무 잘 알죠. 코미디도 한번에 뚝딱 짜이는 게 아니거든요.”

그는 노트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생각나는 코미디 소재나 단어들을 적는 노트라고 했다. 노트에는 한기명의 아이디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 이렇게 노트에 적은 아이디어들을 집에서 연습하시는 건가요?

“네. 가끔 거울 보면서 할 때도 있고, 보통은 왔다 갔다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하고 있어요.”

▲ 그 외에는 집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보내세요?

“재택 알바를 하고 있어요. 장애인 일자리인데요. 블로그를 홍보해주는 일이에요.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하는 일이라서, 스케줄이 있든 없든 제 기상 시간은 동일해요. 공연이 있는 날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재택 알바를 마치고 나서 공연 준비를 해요.”

▲ 장애인의 일자리 문제는 어떤가요?

“장애인의 취업은 당연히 힘들죠. 기업들에 ‘장애인 고용해라. 안 그러면 벌금을 부과하겠다’ 이래도 몇몇 기업은 그냥 벌금 내고 만대요. 웬만하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하죠. 사실상 재택근무도 위태로워요. 파견직이다 보니까.”

▲ 그런 것도 코미디 소재가 되겠지요?

“네. 준비하고 있어요.”

▲ 장애인 코미디언으로서 장애인의 현실을 생각할 때 가장 신랄하게 꼬집고 싶은 건 뭔가요?

“장애등급제나 부양의무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요.”

▲ 이런 건 어때요? 장애등급제 같은 경우는 소고기 등급 매기는 것과 연관 지어 보는 거예요. 내 장애에 등급을 매기는 현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소고기가 된 것 같다. 내 배 속 마블링의 상태에 대해서 상상해보게 되고.

“오, 너무 좋아요. 너무 근사해요.”

한기명은 갑자기 노트를 다시 펼치더니 받아 적을 수 있게 천천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대단하지 않은 아이디어도 허투루 듣지 않고 진지하게 왼손으로 적어 내려가는 그를 보면서 그의 열정이 짐작되었다. 모든 사람의 말에 이렇게 그는 귀를 기울이며 매일을 살고 있겠구나, 그의 노력에 진지하고 깊게 동참하고 싶었다. 나는 인터뷰 중이라는 사실도 잊고 장애등급제와 한우 등급을 어떻게 연관지으면 재미있을지 그와 한참 동안 의견을 나누었다.

거리엔 장애인이 없다

▲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는 게 느껴져요.

“사람한테 많이 이용당했어요. 그래도 이렇게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요. 어쩔 수 없나 봐요. 그렇게 이용당해도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까. 아마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 사람을 믿지 않고 자기만 믿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때 영리하고 똑똑한 처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처를 받고 이용을 당해도 사람을 믿고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처럼 보여요.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상처받는다고 해서 사람을 믿지 않고 산다면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더 나태해지고 위축되지 않을까요? 그럴 바에는 사람을 믿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가려서 믿어야죠. 근데 그게 어렵더라고요, 가려가면서 믿는 게.”

▲ 정말 그래요. 가려가며 믿는 일이 정말 쉽지 않죠. 저는 항상 실패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저는 그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을 좋아하는 한기명은 올해 특별한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기차 여행이 그것이다. 계절에 한번씩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으로, 일단 처음은 경기 양평군 세미원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2017년 5월17일에 시범적으로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어요. 장애인 세분과 비장애인 열분 정도가 함께 다녀왔죠. 이 기차 여행을 왜 기획하게 됐냐면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장애인은 거리에 잘 없어요. 놀 공간도 없고, 놀 문화도 없고. 이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장애인을 만나고 친해질 기회가 거의 없고요. 그래서 만들어보는 자리예요.”

스탠드업 코미디언뿐만 아니라 장애인활동가로, 연극배우로, 영화배우로(그는 현재 촬영 중인 <요괴>라는 독립영화에서 장애인 유가족 역을 맡았다) 점차 자신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한 젊은 예술가와 나는 인터뷰를 통해 무척 가까워졌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한겨레신문사 맞은편 카페에서 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친김에 그의 저녁 스케줄에도 동행했다. 아는 형의 출판 기념회에서 5분 정도 짧은 스탠드업 공연을 보여줄 거라던 그는 무대에 올라 예의 그 의식(안경을 벗어야 눈에 뵈는 게 없다고 말하는)을 한 뒤, 스탠드업 코미디는 대체로 수위가 높고 야하지만 본인의 코미디는 그렇지 않으며 빵빵 터질 테니 기대하시라며 관객을 안심시켰다. 그러고 나서 그는 “보시다시피 나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전혀 장애가 없다”는 조크를 던졌다. 내 옆에 앉은 사람(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목사님이셨다)은 “아, 안 야하다더니”라며 탄식했다. 늘 안경을 벗으며 ‘뵈는 게 없다’는 말로 쇼를 시작하는 한기명은 항상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옛말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지요. 저는 제 장애를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스탠드업 코미디쇼는 오스트레일리아 코미디언 해나 개즈비의 ‘나의 이야기’(Hannah Gadsby: Nanette)라는 쇼였다. 그는 10년차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면서 여성이고 레즈비언이다. 지난 10년간 여성으로서, 레즈비언으로서 겪은 트라우마들을 농담으로 치환해오던 해나 개즈비는 그 쇼에서 “이제 나는 지쳤다”고 선언한다. 앞서 언급한 최정윤의 <스탠드업 나우 뉴욕>이라는 책도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사는 일은 행복하지만 고통스럽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상기시켜주었다.

국내 최초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의 10년은 어떻게 펼쳐질까? “나는 내 장애를 즐기고 있다”는 그의 인사말을 그때도 들을 수 있을까? 매주 그가 공연한다는 ‘코미디 헤이븐’이라는 클럽에 틈이 나는 대로 그의 안부를 확인하러 들러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녹취 원영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오른쪽)씨와 요조씨가 2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오른쪽)씨와 요조씨가 2월19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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