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2018 초·중등 교과서 모니터링 결과발표 및 토론회’
인종 차별적 표현과 장애인 차별 등도 여전해
인종 차별적 표현과 장애인 차별 등도 여전해
서울 송파구 송례초등학교 5학년 라온반 학생들이 지난해 2월5일 교실에서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교과서를 ‘헌 교과서 날개를 달다’ 캠페인에 내놓으면서 교과서에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꽃신은 아가씨처럽 곱고 예뻤어” 여성의 아름다움 지나치게 강조 초등학교 3학년 ‘국어활동’ 교과서에 제시된 문학 작품에는 ‘꽃신은 아가씨처럼 곱고 예뻤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것 같다고 칭찬했어’ 등과 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아름다움을 강조할 때 여성을 대상으로 삼아 비유적 표현을 쓴 문장들이다. 보고서는 ‘얼굴이 두꺼비 같은 아줌마’와 같은 표현 역시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에 기초한 문장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초등학교 4학년 ‘도덕’ 교과서는 정약용을 소개할 때 근면함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는 반면 신사임당은 내면적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의 예로써 제시했다. 중학교 ‘도덕1’ 교과서에서는 위인으로 이순신, 간디, 소크라테스, 정도전 등 남성 위인만 등장한 반면 여성은 등장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이를 두고 여성은 외모를, 남성은 능력을 강조하는 식의 서술이 성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여성은 집안일을 주로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초·중등학교 교과서에서 엄마가 아이를 깨우는 장면과 설거지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고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했다”는 등의 서술이 여전히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녹색 어머니’라는 표현은 여성을 양육과 돌봄의 주체라는 고정관념을 확산시킬 수 있으므로 ‘교통봉사자’라고 표현하라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이에 반해 남성은 기업의 대표나 우두머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초등학교 4학년 ’사회’ 교과서의 ‘통학로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토론하는 부분에서 사회자는 남성인 반면 지역주민 1, 학부모 등은 참가자 대부분은 여성으로 묘사됐다. 또한 중학교 ‘사회1’ 교과서에서는 자원 확보를 둘러싼 여러 나라의 갈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각국의 대표가 모두 남성으로 그려졌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2018 초·중등교과서 모니터링 결과발표 및 토론회’가 열렸다. 오연서 기자.
백인은 웃는 얼굴, 흑인은 어두운 표정…인종차별도 여전 보고서는 교과서에서 외국인을 묘사할 때도 인종차별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다문화 학생들이나 외국인이 교과서에 등장하는 횟수는 늘었지만 백인 위주로 그려내거나 인종 혹은 민족에 대해 차별적인 양상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우선 백인과 흑인에 대한 이분법적 묘사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4학년 ‘수학’ 교과서를 보면, 외국인이 길을 묻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백인은 밝은 표정으로 그려내고 흑인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렸다. 초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에서도 우리 주변의 환경과 이웃이 겪는 문제를 다루면서 그 해결 방안으로 ‘나눔’을 제시하면서 한국인 여성이 흑인 혹은 동남아시아계 아동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삽화로 제시됐다. 보고서는 이런 삽화가 다문화 아동에 대한 편견을 전제했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을 원시적인 수렵·채집을 하는 삶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반면 백인은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대상으로 표현하고 있어 특정 국가나 민족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_________
장애인은 모두 휠체어를 탄 사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담은 표현들도 여전했다. 중학교 ‘도덕1’ 교과서에는 “다음 그림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렇게 생각한 까닭을 말해보자”는 질문과 함께 장애인이 등장한다. 보고서는 이런 내용을 두고 장애인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대상화하지 말고,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등 일상생활의 중심인물로 묘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교과서에서 장애인의 모습을 묘사할 때 대부분 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으로만 묘사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을 묘사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장애인에 대한 서술 가운데 차별적인 내용이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초등학교 ‘국어활동’ 교과서에 제시된 작품에서 시각장애인 어머니를 ‘눈먼 어머니’라고 표현했다며 ‘시각 장애가 있는 어머니’로 표현을 바꿀 것을 권고했다. _________
교과서 모니터링 전체 과목으로 확장해야 이 밖에도 보고서는 교과서에서 가족을 묘사할 때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4인 가족형태로 주로 묘사한다며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다둥이 가족 등 다양한 가족형태 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안경을 낀 사람 대다수를 남성으로 묘사한 것을 두고도 안경을 낀 사람이면 으레 갖게 되는 지적인 이미지를 남성과 연결해 고정 관념을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도 했다. 한편, 이번 모니터링은 초등 3·4학년과 중학교 1~3학년 도덕·사회, 고등학교 통합사회 등 국·검정 교과서 49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기규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전문위원은 “초등학교 실과·체육 등의 교과서에는 비인권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를 옹호하는 내용이 많다”며 “앞으로 모니터링의 폭을 모든 종류의 교과서로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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