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신임 총장 당선자인 정진택 기계공학과 교수
이달 초 논문을 중복 게재하고 연구비를 이중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일었던 정진택(58) 고려대학교 총장 당선자가 연구비를 이중으로 받고 자기 표절을 한 논문이 추가로 더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7일 고려대 내부에서 의혹이 제기된 논문은 정 당선자가 2011년 11월과 2013년 8월 각각 대한기계학회 추계학술대회와 대학기계학회 논문집에 게재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2011년에는 ㈜삼성테크윈
에서, 2013년에는 지식경제부 재원으로 한국에너지 기술평가원(KETEP)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허브 측 선단 수정에 따른 터빈 로터의 공력 특성에 대한 수치적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 왼쪽이 2011년, 오른쪽이 2013년 게재본이다.
‘허브 측 선단 수정에 따른 터빈 로터의 공력 특성에 대한 수치적 연구’라는 제목의 이 논문 2011년 게재본과 2013년 게재본은 제목뿐만 아니라 그림·그래프·표·수식을 비롯한 연구 내용, 연구결과와 참고 문헌도 대부분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당선자는 두 논문 모두 교신저자로 참여했다. <한겨레>가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문헌 유사도 검사 프로그램을 통해 두 논문을 비교했더니, 최대 53% 가량의 유사율이 나왔다. 이처럼 유사한 연구를 담고 있지만, 2011년 논문 후기에는 ‘㈜삼성테크윈의 지원에 감사드린다’고 적혀 있고, 2013년 논문 후기에는 ‘본 연구는 2012년도 지식경제부의 재원으로 한국에너지 기술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연구과제’라고 다른 연구비 사사를 밝히고 있다.
고려대 관계자 ㄱ씨는 “두 개의 논문은 제목부터 내용까지 똑같은 논문”이라며 “다른 것은 출간 시기와 실린 매체, 연구비 지원 기관뿐”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관계자 ㄴ씨도 “한글을 영어로 바꾸거나 일부 표현을 달리했을 뿐 완벽하게 같은 연구 내용”이라며 “단어를 바꾸는 것 같은 눈속임을 사용했기 때문에 논문 유사도는 실제보다 적게 측정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ㄴ씨는 또 “연구비 이중수령은 돈이 걸린 문제”라며 “사실로 밝혀지면 단순한 표절과는 다른 차원의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고려대 관계자 ㄷ씨는 “정 당선자는 두 논문에 (이름만 올린 게 아니라) 논문에 실린 내용 전반을 책임지는 교신저자라는 위치로 참여했기 때문에 이중수령 논란에서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정 당선자는 아울러 자기표절 의혹도 받고 있다. 정 당선자가 2017년 8월 기계공학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대한기계학회 논문집(Journal of Mechanical Science and Technology)에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축약한 논문을 별도의 인용표시 없이 같은 해 12월 한국유체기계학회 논문집에 다시 냈다. 실제로 두 논문에는 같은 그림과 표, 그래프 등이 일부 표현만 달리하는 방식으로 실렸다. ㄷ씨는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보통 학회에 연구를 내고, 이를 심화·발전시켜서 저널에 싣는다. 정 당선자는 순서가 바뀐 것으로, 저널에 논문을 내고 그 요약본을 마치 새로운 논문인 것처럼 학회에 실었다. 하나를 두개로 늘려 자기 업적에 반영시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정 당선자 쪽은 새로 불거진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총장 인수위 관계자는 연구비 이중수령 의혹을 두고 “삼성테크윈에서 연구비를 받았다고 나온 2011년 논문은 정 당선자가 연구비를 수령한 과제가 맞지만, 한국에너지 기술평가원에서 지원받은 2013년 논문은 정 당선자가 아닌 다른 분에게 연구비가 갔다. 따라서 이중수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연구비 이중수령은 지급 기관별로 정할 일이지 연구 윤리 차원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다”며 “특히 삼성테크윈은 사기업이라 연구비 사사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거였는데, 당선자께서 고마우니 굳이 표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기표절 의혹을 두고는 “자기표절이 되려면 두 논문 다 국제표준간행물번호 등을 발급받은 정기간행물이어야 한다. 문제가 된 논문 중 한건은 맞지만, 한국유체기계학회 발표 논문은 학술대회 프로시딩으로 정기간행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두 건의 연구결과물이 똑같은 게 맞는다면, 연구비를 수령한 저자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중수령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 또 다른 관계자는 자기표절 기준을 두고 “교육부 지침에 부당한 중복게재 대상이 되려면 반드시 특정 번호를 발급받아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보면 “부당한 중복게재는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한 후,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위”라고 되어 있다.
앞서 정 당선자는 <한겨레> 보도를 통해 2005년 낸 ‘평활관 및 와이어코일을 삽입한 열전달촉진관에서 액체질소의 흐름비등열전달 특성’이라는 국문 논문과 비슷한 내용의 영문 논문을 2006년 제출하면서 논문을 중복 게재하고 연구비를 이중으로 받았다는 의혹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런 행태 역시 2005년 논문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별다른 출처나 인용 표시 없이 2006년 게재했다면 자기표절이 된다. 이 연구비 이중수령과 자기표절 건은 고려대 연구진실위에 회부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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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총장 임기가 시작되는 새 학기를 앞두고 정 당선자의 연구 부정행위 의혹이 연이어 터지면서 고려대 관계자들은 우려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ㄴ씨는 “정 당선자의 연구윤리와 관련해 학내에서 말이 많았던 터라 (학교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보다가 문제가 된 4건의 논문이 나온 것”이라며 “총장 선거에서 1등을 한 후보가 표절 의혹이 일어 낙마하고 그 대안으로 선택된 게 정 당선자인데, 그런 분을 둘러싸고 오히려 더한 연구 부정행위 논란이 일어 의아하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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