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최근 국회에서 간호조무사 단체를 법정단체로 인정하자는 취지의 법안이 발의되면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단체가 서로 갈등을 빚고 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의료법상 의료인인지 아닌지 여부에서 차이가 있다. 우선 간호사는 간호대학이나 국군간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국가고시를 통과해 면허를 발급받은 이를 말한다. 의사와 한의사, 조산사 등과 더불어 법적 의료인에 해당해 수술 보조나 주사 등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 반면 간호조무사는 고등학교 졸업 뒤 간호학원과 실습 과정을 수료하거나 특성화고 보건간호과를 졸업한 뒤 시험에 응시해 자격증을 발급받은 이를 말한다.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니어서 의료 행위는 할 수 없고, 보조 업무만 수행할 수 있다.
갈등은 지난 13일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일부개정안’에서 시작됐다. 개정안은 의료법에 간호조무사 단체를 설립하도록 하는 근거 조항을 만들어 간호조무사 단체도 정부 정책과 공익사업을 수행하는 중앙회로서 기능하게끔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간호조무사 단체는 법률상 근거가 없는 ‘임의단체’다.
그런데 법안 발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간호사와 간호사 단체가 반대 성명을 내고 입법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리는 등 반발하고 있다. 간호사들은 간호계를 대변하는 법정단체로 대한간호협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호조무사단체까지 법정단체로 양립하게 되면, 간호계의 목소리가 분열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지난 22일 성명서를 내고 “간호계에 동일한 두 개의 중앙회가 양립하게 되면, 정부 정책에 대해 공식적인 두 개의 목소리를 내는 기형적인 상황이 될 것”이라며 “간호계를 분열시키고 간호 정책의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간호조무사 중앙회 입법 반대’ 청원 등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간호계를 대표하는 대한간호협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간호계 갈등만 심화시키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법안으로 간호조무사가 의료인 자격까지 얻게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제 그만 간호조무사가 의료인 및 간호사의 권리 침해하는 것을 막아주세요”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와 6만1천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2019.02.13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이 의료법 개정 제안으로 간호조무사를 의료인으로 승격시켜달라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하며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는 각기 다른 직업이고 이 직업의 경계선은 유지돼야 한다. 의료 질 저하는 곧 국민 건강의 위협”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의료법 일부 개정안에는 간호조무사의 의료인 인정에 관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건 간호 인력 부족 문제를 간호조무사로 슬쩍 채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서울 소재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 ㄱ씨는 26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간호 인력 부족을 이유로 들며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이번 법정단체 승격 문제도 명시적으로 의료인으로 인정해달라는 주장은 아니지만, 그런 움직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이어 “경계가 흐려지면 전문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업무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는 결국 환자들 안전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간호조무사가 간호사의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은) 환자의 안전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보다 낮은 직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일은 엄연히 다르니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의료기술이 고도화하는 지금은 의사든 간호사든 오히려 그 자격을 따지는 면허가 엄격해져야 하고 의료법도 촘촘해져야 하는 때”라고 강조했다.
반면 간호조무사 단체는 의료법일부개정안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간호조무사 단체는 정부 정책이나 공익사업을 수행할 때 정식 파트너로 참여하지 못했다”며 “의료법일부개정안이 통과돼 우리 단체도 법정단체가 되면, 간호조무사들의 권익 증진에 앞장서는 공식적인 창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간호조무사들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고된 노동을 감당하고 있다”며 “간호조무사 단체가 임의단체이다 보니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 해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료인 인정과 관련된 간호계 일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우린 의료인으로 인정해달라고 주장한 게 아니다”라며 “다만 간호조무사로서 우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정 단체화를 해달라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간호조무사단체의 법적 근거 마련을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간호조무사는 허수아비와 간호사의 유령이 아닙니다. 간호조무사 법정인정 국민이 나설 때입니다”라는 청원에서 청원인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인정해달라는 게 아니다. 간호조무사의 정당한 법적 단체와 규정 인정을 통해 간호조무사에게도 정당한 위치를 달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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