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카페 프로젝트’ 홍보 글. 서울 성동경찰서 제공.
“5살 소심한 딸 유치원 좀 찾아요. 너무 말수도 적고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질 못하고 자기 표현을 잘 안 해서 너무 걱정이에요. 어린이집을 보내긴 했는데 고쳐지지가 않네요 ㅠㅠ 이왕 이리된 거 유치원으로 보내볼까 하는데 XX동에서 많이 보내는 곳 추천 좀 부탁드려요~”
“시어머니 임플란트로 알아보려는데 새마을시장 근처에 진료 잘 하는 곳 있으면 알려주세요! 멀리 왔다갔다 하는 건 많이 힘들어하실 듯해서 근방으로 보고 있어요. 가까운 곳에서 잘 하는 치과 정보 부탁드려요. 그리고 대략적인 비용도요.”
전국의 엄마들이 각종 생활 정보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맘카페’에 올라온 흔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을 올린 사람은 ‘맘’이 아니라 광고업체였다. 광고업체는 포털 사이트 계정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이런 글을 올리고, 댓글에 광고를 요청한 업체를 슬쩍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국의 엄마들을 속였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25일 “포털 계정 800여개를 구입해 실제 사용 후기인 것처럼 위장한 광고 글을 전국 180여개의 지역 맘카페에 올린 광고업체의 대표 이아무개(30)씨 등 업체 3곳의 임직원 9명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병·의원, 학원, 유치원, 어린이집 등으로부터 의뢰받아 2015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약 3년 7개월 동안 허위 광고 글 2만6000여개를 올렸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은 ‘맘카페 프로젝트’라는 상품을 판매하며 업체와 계약한 뒤 업체의 강점, 경쟁업체 유무 등을 조사해 맘카페에 올릴 게시물과 댓글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업체가 시나리오를 허락하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시나리오대로 글을 등록하고 실시간 모니터링하며 댓글을 달았다. 경찰은 “해당 업종에 대해 질문하는 카페 이용자에게 쪽지를 보내 광고하는, 일종의 애프터서비스(AS)까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맘카페 프로젝트의 가격은 6개월 계약에 월 180만원, 12개월 계약에 월 300만원이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들이 “일일 방문자 수와 게시된 새글 수 등을 꼼꼼히 확인해 180개의 맘카페를 에이(A)부터 이(E)등급으로 나눠 관리했다고 밝혔다. A등급 카페 중에는 회원 수가 300만명가량 되는 곳도 있다.
경찰은 이들이 인터넷 메신저에서 3000~6000원씩 주고 구입한 포털 계정 800여개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들은 맘카페에 바로 게시물을 쓸 수 있는 상태, 즉 ‘등업’이 된 계정은 6000원, 방문 수나 댓글 수를 채워야 하는 등 등업이 필요한 상태의 계정은 3000원을 주고 구입했다.
맘카페 프로젝트를 통해 올라온 유치원과 치과 거짓 홍보 글. 서울 성동경찰서 제공.
해당 업체에 한 달간 일했던 ㄱ씨는 “맘카페에서 엄마들이 제일 관심 있어 하는 게 유치원과 어린이집인데, 홍보하기 위해 여론 조작하는 걸 자주 봤다”며 “‘오늘 미세먼지가 심하네요’ 같은 글을 올리면서 실제 엄마인 것처럼 아이디를 몇 달 공들여 키운 다음에 홍보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 광고업체 3곳에 허위 광고를 의뢰한 업체가 3800여곳에 달한다고 밝혔다. 업종은 학원, 유치원, 병·의원, 산후조리원 순으로 많았다. 경찰은 허위 광고를 의뢰한 혐의로 치과의사 김아무개(56)씨를 포함해 병원 13곳의 의사와 직원 17명도 의료법 위반으로 함께 검거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병원 후기 중에서도 거짓 치료 후기나 정도가 심한 게시물 80여개와 댓글 440여개만 의료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며 “의료법에는 거짓 광고를 할 수 없게 되어있지만, 어린이집이나 학원 등 다른 업종은 관련법이 없어 처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아이디를 판매한 자에 대해서는 사건을 분류해 계속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