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전 전 광복회장. 사진 <지식채널e> 방송화면 갈무리.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이자 광복군 출신으로 광복회 회장을 지낸 애국지사 김우전 선생이 20일 오전 8시12분께 별세했다. 향년 98.
세기를 관통한 선생의 삶은 오롯이 ‘독립 운동’이었다. 젊어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썼고, 광복 뒤엔 독립유공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1922년 평북 정주 오산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오산학교 교정에 세워진 3·1운동 33인 대표이자 설립자 남강 이승훈 선생의 동상을 보며 항일 독립 의식을 키웠다.
선생은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법학과 시절 재일 유학생 민족운동 비밀결사단체인 ‘조선민족 고유문화유지계몽단’에 가입해 활동했다. 21살 때 학병으로 강제징집됐지만, 장준하·김준엽 등과 함께 부대를 탈출해 1944년 5월 광복군에 합류했다. 중국 제10전구 중앙군관학교 분교 간부훈련단 한광반을 졸업한 뒤 곧바로 광복군 제3지대 소속으로 미국 제14항공단에 연합군 연락장교로 파견됐다. 1945년 3월 한미공동작전계획(OSS훈련)에 따라 미군 국방부 전략지원사령부(OSS) 본부에서 광복군 무전기술 교재와 한글암호문을 제작하고, 국내 독립운동가와의 연락 임무 등을 수행했다.
선생은 45년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기밀을 다루는 주요한 비서인 ‘기요 비서’로 발탁됐고, 해방 뒤 함께 귀국해 경교장에서 백범의 개인 비서로 일하며 48년 남북연석회의 등에도 수행했다. 선생은 1992년 광복회 부회장, 1999년·2015년 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을 지냈다. 2003년 광복회 회장을 맡아 일년치 월급 전액 등 5천만원을 독립유공자 손·자녀 지원용 장학금으로 쾌척하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친일파는 일제가 물러간 뒤에도 좋은 벼슬을 차지하고 후손들도 승승장구했지만,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억압당했던 36년은 어쩌면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라 근래의 일일지도 모른다”며 독립유공자를 외면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질타하기도 했다.
선생은 ‘1948년 남북협상에 대한 역사인식의 부족과 왜곡’ 등 다수의 논문과 <김구통일론>, <김구 선생의 삶을 따라서>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자녀 동제·용제·인숙·애라씨, 사위 조동성(인천대 총장)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중앙보훈병원, 발인은 22일 오전 7시다. (02)2225-1004.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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