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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구제역 발생한 안성, 이틀만에 소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등록 2019-02-06 12:15수정 2019-02-06 13:48

“소 키워 아들, 딸들 학교 보냈는데” “명절 앞두고 잔뜩 사놓은 사료 어떡하나”
첫 확진 농장주 “나 때문에 살처분 하는 것 같아 미안해”
농식품부, 설 연휴 기간 소와 염소 등 2272두 살처분
올해 첫 구제역 확진 농가인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젖소농장 입구에 출입 금지 안내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올해 첫 구제역 확진 농가인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젖소농장 입구에 출입 금지 안내문 팻말이 세워져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3시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 젖소농장. 축사 50여m 앞에 있는 공터에서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매캐한 탄내가 났다. 축사 안에서 쓰였던 축사 울타리와 사료통, 사료 포대 등을 태우고 있다. 근처를 지나는 가축 방역차는 연신 소독약을 분사하고 있다. 주변 농가 입구와 길 곳곳에는 하얀 생석회 가루가 뿌려져 있다. 바이러스가 차량 타이어 등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곳은 구제역(FMD) 의사환축 발생농장으로 사람·차량의 출입을 금지됩니다. 문의 사항이 있으면 010-72**-94**으로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장.’

전날 올겨울 들어 처음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이아무개(55)씨의 젖소농장 입구에는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출입금지’ 테이프와 함께 이런 안내문 팻말이 붙어 있다.

“아무 생각도 안 나요. 비참합니다. 애지중지하던 소들을 아예 정리하고 나니까 마음이 안 좋아서 더 이상 소를 보고 싶지도 않고. 주변 농가도 우리 때문에 걸린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나라 전체가 (구제역 때문에) 시끌벅적하다 보니까 제 마음이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이씨는 연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가 전화를 받자마자 꺼낸 첫마디는 “한 끼밖에 못 먹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씨가 키우던 젖소 95마리는 29일 모두 살처분됐다. 그중에는 이씨가 10년 넘게 키우던 소도 있었다. 27년 동안 소를 키워온 이씨에게 살처분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씨는 지난해 10월 소들에게 백신도 맞혔다고 했다. 그런 소들이 구제역에 걸린 까닭을 이씨는 알 수 없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해요.” 이씨는 일시이동중지명령 탓에 농장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집이 아닌 농장 옆 관리사무실에서 생활하면서 식사도 부인이 집 앞에 가져다주는 밥으로 해결했다.

“축사에 소똥을 쌓아놨으니 병이 걸릴 수밖에 없지. 여기가 소를 다 더럽게 키워요. 주민들도 악취에 시달립니다. 집 문을 못 열어. 파리들이 하도 들어와서….” 한 마을 주민이 푸념하며 말했다. “집 바로 앞에 소 축사가 하나 있는데 여름에는 파리 죽이는 약을 창가에 쌓아놔야 해요. 그래도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얘기는 이곳에서 살면서 처음 들어요.” 오산리에서 40년 동안 살았다는 60대 마을 주민 최아무개씨의 말이다. 마을 주민들의 푸념과 이씨의 한숨 사이에 간극이 아득했다.

지난달 28일 경기 안성시 금광면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발생한 구제역은 29일 안성시 양성면 한우 농가와 31일 충북 충주시 한우 농가까지 연이어 발생했지만, 설 연휴 기간 동안 추가 발병은 나타나지 않았다. 설 연휴 기간까지 농림축산식품부는 소와 염소 등 모두 2272마리를 살처분했다. 하지만 아직 안심은 이르다. 구제역의 잠복기는 최대 14일에 달한다. 특히 구제역 백신 항체는 예방접종 뒤 4∼5일이 지나야 형성된다. 이달 3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1주일이 구제역 차단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농식품부는 판단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오는 7일 전국 일제 소독의 날을 운영하기로 했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에서 방역차가 소독약을 분사하고 있다.</figcaption>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에서 방역차가 소독약을 분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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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폭탄’이 터졌다” 분주한 살처분 현장

“예살(예방적 살처분) 한대요?” 29일 오후 5시30분께. 이날 이씨 농가 소 95마리를 살처분한 렌더링 업체 사장 박종섭(55)씨의 휴대전화에선 그야말로 ‘불이 났다.’ 안성시가 구제역 확진 농가로부터 반경 500m 내에 있는 축사의 소들을 ‘예방적 살처분’ 한다고 결정하면서 렌더링 업체도 함께 바빠졌다. 렌더링은 살처분한 가축 사체를 분쇄한 뒤 고온·고압으로 멸균 처리하고 미생물과 함께 발효해 퇴비로 활용하는 작업이다. 한 마디로 병에 걸린 소나 돼지, 오리나 닭을 죽이고 사체를 갈아 없앤다는 얘기다.

소의 경우 수의사가 주사를 찔러서 소를 안락사시키고 나면 사체를 렌더링 기계 안에 넣는다. 소 한 마리가 기계에 들어가 가루가 되어서 나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사체가 가루가 되어서 나오면 미생물과 함께 1주일 정도 발효하다가 구제역이 종식되면 퇴비가 되어서 축사 바깥 퇴비장으로 나오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황소를 넣을 수 있는 기계는 우리밖에 없어요. 여기는 축사 지붕이 낮아서 시간이 오래 걸려요. 황소를 잡아서 집어넣어야 되는데, 포클레인으로 소 사체를 집어서 올리면 지붕에 닿으니까 밀어서 기계에 넣기도 하고요. 젖소는 무겁게는 1톤 나가는데요. 여기 도착했을 때 주저앉은 소가 20마리 정도 됐어요. 왜 이렇게 여기 폭탄 맞았나 모르겠어. 100마리면 8~9시간이면 하겠네요.” 박씨가 말했다.

전날 저녁 8시30분께 시작한 살처분 작업이 이날 오후 5시30분께 끝나면서 렌더링 기계 1대, 발전기, 보일러, 포클레인 2대 등 살처분에 사용된 기계들이 차에 실려 하나둘씩 축사 밖으로 나왔다. 흰 방역복 차림의 업체 직원들도 21시간 만에 축사 바깥으로 나왔다.

이씨의 축사에서 2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소 370여마리를 키운다는 정아무개(56)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28일날 검사를 했는데 양성이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어요. 내일 살처분한대요. 우리는 37년 동안 키웠어요. 살처분하라고 하면 수용을 해야죠. 그래도 마음이 많이 안 좋아요.”

30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에서 렌더링 업체 직원들이 예방적 살처분을 준비하고 있다.</figcaption>
30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산리에서 렌더링 업체 직원들이 예방적 살처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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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이자 ‘벗’이었던 소 떠나보내며 눈물짓는 농장주

이튿날인 30일 오전 8시40분께. 금광면 오산리에는 포클레인 2대가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 먼지가 바람에 날려 시야가 뿌옇게 가렸다. 공무원과 방역 업체 관계자들은 흰 방역복 차림에 흰 모자를 쓰고, 흰 마스크를 끼고, 장화를 신고 다녔다. 일부는 살처분 작업을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렌더링 업체 직원인 29살 박아무개씨는 3년 전 처음 살처분에 참여했다. 이날 아침 8시 현장에 도착한 박씨도 방역복으로 갈아입고 맨손 체조를 하며 몸을 풀었다. 박씨는 “살처분 일이 막노동보다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는 업체 사장의 박종섭씨의 아들이다.

“고열에 소가 들어갈 때 고소한 냄새가 납니다. 소고기 끓는 냄새 같아요. 소가 파쇄기에서 분쇄되는 게 다 보이고, 가끔 피 같은 게 튀기기도 하니까 비위가 상해서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젊은 사람들은 그냥 도망갑니다. 저는 가업이니까 비위가 약해도 그냥 하는 거죠.”

이씨의 축사로부터 500m가량 떨어진 축사 주인 홍아무개씨는 애써 고개를 돌린 채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홍씨의 남편은 기자에게 “속상해 죽겠는데 취재하면 다냐”라고 했다.

“3마리 양성 판정이에요. 바이러스 옮긴다고 다 살처분 해야 한대요. 많이 키우는 사람들은 걱정 없죠. 저는 소 13마리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이걸로 용돈 버는 거예요. 간신히 유지하는 건데…. 보상은 80% 나오고, 괜찮은 건 100% 나온다고도 하고. 모르겠어요. 어휴, 청천벽력이에요. 이제 어디 가서 뭘 해먹고 살아야 하는지.” 홍씨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축사 안에서는 시청에서 나온 관계자가 소의 마릿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홍씨는 이 농장에서 젖소를 25년 동안 키웠다고 했다.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그게 걱정이에요. 소 키워서 애들 학교 보내고, 시집보내고. 아들 하나 장가보내면 되는데 이런 일 터져서 난감해요. 무릎이 아파서 이제 다른 일도 못 하는데….”

안성시청 축산과는 이날 구제역 첫 발생지인 이씨의 농장으로부터 500m 안에 있는 농장 여섯 곳의 소들을 살처분했다. 모두 600여두에 이른다. 343두는 현장에서 렌더링하고, 나머지는 충북 음성에 있는 렌더링 업체로 가져간다. 낮 12시가 되자 살처분 현장에선 시운행하는 기계에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파쇄되어서 나올 소 사체 가루와 함께 발효시킬 미생물 포대가 축사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르자 포클레인이 아침부터 팠던 2.5m 구덩이가 완성됐다. 겨울이라 땅이 얼어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 이곳에 파쇄된 소 사체와 미생물 가루가 함께 묻힌다. 축사와 살처분 현장 사이에 회색 매트가 깔리자 렌더링 업체 직원이 말했다. “소 레드카펫 깔아주는 거여?”

렌더링으로 분쇄한 소의 사체를 미생물과 함께 이 구덩이에 묻어 발효한다.</figcaption>
렌더링으로 분쇄한 소의 사체를 미생물과 함께 이 구덩이에 묻어 발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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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의 손길이 스친 흔적들

금광면에서 19년째 소를 키우고 있다는 김아무개(59)씨의 소 70마리는 이번에 다행히 살처분을 면했다. 김씨의 농장은 이씨의 농장에서 500m 밖 거리에 있다. 그래도 김씨는 별달리 기쁘지 않다고 했다. 동네가 모두 초상집인데 홀로 기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소는 벗이나 마찬가지예요. 아침, 저녁으로 고생하면서 정든 소들인데. 그런 소를 살처분 하면 눈물 나죠, 진짜.” 김씨는 예방적 살처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확진된 소만 살처분 하고, 방역을 더 세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예방으로 살처분을 다 하는 건 마음이 아프잖아요.” 김씨는 전날 구제역 발생 농장주 이씨와 통화한 기억을 떠올렸다. “통화하면서 (이씨가) 막 우는데 울컥하더라고요. 우리 소가 살처분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집 앞에 포클레인 지나가는 거, 살처분 하면서 수증기 나는 거 여기서 다 보이니까 남 일 같지 않아요.”

살처분을 했거나 살처분 예정인 축사 앞엔 ‘출입금지’ ‘가축방역’ ‘소독철저’ 등이 쓰여 있는 노란 띠가 쳐 있거나 ‘구제역 방역상 출입을 통제함’이라고 쓰여 있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건조한 날씨임에도 오산리 안을 다니는 차들은 와이퍼를 켜야 했다. 살처분이 진행되는 축사로 가는 길 초입에서 방역차가 차 쪽으로 소독약을 분사했기 때문이다.

30일 오후 4시. 수의사가 주사를 놔서 살처분이 진행 중인 축사 안에서는 소의 사체가 하나, 둘씩 늘어 갔다. 29일 오후부터 이날 낮까지 간간이 들렸던 소 울음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방문한 이씨의 축사에서도 더는 소를 볼 수 없었다. 홍씨의 축사에도 소가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홍씨 축사 기둥에는 색이 바랜 ‘소독필증’ 스티커 16장이 바람에 떨어져 나풀거리고 있었다.

글·사진 안성/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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