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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진짜 대치동에서 말하는 ‘의대 로드맵’…캐슬로 가는 길 맞을까요?

등록 2019-02-06 10:09수정 2019-02-06 21:02

6살 아이 엄마의 대치동 취재 뒷이야기
초등학교 때 영어 끝내고, 중학교 때 수학 마스터
KMO 상 받고 영재원 들어가는데 ‘의대 로드맵’
“캐슬 아닌 지옥” 다잡지만, 현실은 사교육에 흔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대한민국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치열한 입시 경쟁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사진 제이티비시 <스카이 캐슬> 누리집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대한민국 상류층에 대한 풍자와 함께 치열한 입시 경쟁 현실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사진 제이티비시 <스카이 캐슬> 누리집
“지금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시대예요. 학종.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에 따라 결정돼요. 당신은 신문도 안 봐요?”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아이 입시에 엄마가 너무 나대는 게 아니냐’ 지적하는 남편 강준상(정준호 분)을 향해 한서진(염정아 분)이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 성적이 아닌 고등학교 때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면접 등을 토대로 학생을 선발하는 입시제도를 뜻한다. 결국 학생부의 빈칸을 채우는 △교과성적 △수상경력 △독서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을 어떻게 구성하는 지가 대입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때로는 학부모들도)은 합격권 ‘포트폴리오’를 만드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학력고사 때랑은 다르다고요.” 한서진이 학력고사 시절 ‘공부만 잘해서’ 서울대 의대에 들어간 강준상에게 ‘모르면 조용히나 하라’고 타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카이 캐슬>이 17회쯤 접어들었을 무렵, 뒤늦게 화제의 드라마에 입문했다. 소파와 하나 되어 단숨에 7회까지 내달렸다. 보는 내내 5개월 전 취재를 위해 만났던 대치동 학부모들이 떠올랐다. 당시 교육 담당으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이 발표된 뒤, 중3들이 치를 입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학부모들은 새 개편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취재 중이었다. (▶관련기사: 정시 확대 반기는 강남 학부모들 “자사고·특목고 보내야죠”) ‘대치동 물정’ 모르고 한참 딴소리를 하는 기자에게, 당시 만난 학부모들은 대치동의 현주소를 조목조목 알려줬다. 물론 최고급 정보까지 알려주진 않았겠지만….

■영어는 초등학교 때 마스터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 영어를 끝내야 한다’ 대치동 학부모에겐 이런 믿음이 있다.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상황에서, 중·고등학생 때 영어 공부를 하는 건 너무 늦다는 말이다. 수학은 초등학교 때 끝내기에 “머리가 부족하지만” 수능 영어는 중학교 때 “마스터할 수 있다”는 게 대치동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상당수의 아이들이 5살에 영어 유치원에 들어간다. “기저귀를 차고 다니는 영어학원도 있어요. ㅇ학원은 애들을 영어로 케어해주는 곳인데, 유명 배우의 딸도 거기 다녔어요. 2~3살에 ㅇ학원 가고 5살에 영어유치원 가고.”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 때 영어를 시작한 부모들은 학원 레벨테스트를 하다가 뒤늦게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와서 국외 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유명 영어학원을 가려는데 애가 레벨테스트에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초등학교 애들 데리고 외국에 1년 정도 살다 와요. 그리곤 레벨테스트 통과해서 좋은 영어학원 보내는 거죠.”

기자가 언어를 초등학교 때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반박하자 대치동 학부모의 반응은 뜨악했다. “ㄱ사립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 가운데 수능 영어 100점 맞는 아이들이 수두룩해요.” 못 믿겠다면 ‘ㅇ학원, ㅍ학원, ㄴ학원’ 등 대치동 3대 영어학원에 가보라고 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이 학원에서는 “아이들이 하버드 석사들 앞에서 디베이트(토론)를 하고 리딩을 배운다”고 덧붙였다. “요즘 애들이 공부를 얼마나 잘하느냐면요. 90점을 받아도 중상위권이에요. 평균 90점이 반에서 10등 하면 잘 나온 거라니까요. 왜냐? 시험은 쉽고, 애들이 한 건 많으니까요.”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정시 최종지원 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보며 전략강의를 듣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해 12월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 정시 최종지원 전략 설명회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배치표를 보며 전략강의를 듣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초6에 고3 수학 끝내야, 의대 입학

학부모들은 이제 대입을 좌우하는 건 수학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의대’까진 모르겠지만, ‘의대’ 로드맵은 있었다. 만나는 학부모마다 시기는 조금씩 달랐지만, “선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같았다. 선행학습을 해야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교대 등 영재교육원에 들어갈 수 있고, 영재교육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으면 이후 과정은 ‘탄탄대로’라고 했다. “서울교대 영재교육원에 들어가면 융합과학 이런 거 가르쳐주고 보고서 쓰게 한대요. 학원에서 배우는 거랑 영재원 교수님께 배우는 게 같겠어요? 영재원 애들은 못 이기니까 영재원에 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나아가 선행학습을 해야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에 나갈 수 있고, 수상실적 등으로 과학고나 영재고에 진학할 수 있다고 했다.

의대 입학을 위한 선행의 속도는 어느 정도일까? 4학년 때 초등 5~6학년 수학을 배우고, 5~6학년 때는 중 1~3학년 수학을 배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수학’을 떼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수학Ⅰ·Ⅱ를, 중학교 3학년 때는 미적분·확률·기하·통계를 익힌다. 더 빠른 경우도 있다.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고2 수학이 끝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카이 정원이 전국 대학의 4% 정도거든요. 한 학년에 4%가 돼야 스카이에 가는 거예요. 그냥 그 애들끼리 싸운다고 보면 됩니다.“

대치동 학부모들은 휘문고·중동고·세화고의 10%는 이 속도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사교육에 왜 이렇게 목을 매냐고요? 고1 때 성적이 학교에서 고3까지 이 아이의 위치를 좌우해요. 고1 때 성적을 잘 받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자신들도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같이 멈추지 않는 한 자신도 멈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학생부 스펙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더 눈물겨웠다. 교내 과학탐구대회에서 입상하기 위해 사고력 학원을 보낸다. 학원은 과학탐구대회 예상문제를 뽑아서 모범답안을 써주고 아이들은 답안을 외운다. 예상문제를 잘 뽑아, 아이를 입상시킨 학원은 ‘좋은 학원’이 된다. 학원 답은 너무 티가 나기 때문에 ‘박사 출신’의 학부모들이 그룹을 만들어 예상문제를 뽑기도 한다. 지금은 학생부에서 ‘소논문’이 퇴출당했지만, 그 전에는 소논문을 위한 고군분투가 눈물겨웠다. “서울대 의대 붙은 애가 있는데, 걔가 의학 관련 소논문을 10개를 썼어요. 학교 다니면서 모의평가가 3번이고 중간·기말고사도 준비해야 하는데, 무슨 논문을 10편이나 써요. 의사 엄마·아빠가 다 써준 거지.”

■의대 로드맵을 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현실

살인적 스케쥴에 떠밀려 사는 아이들은 행복할까? 대치동의 한 중학교 교사는 ‘왜 대치동으로 이사하지 않냐’는 질문에 “수업시간에 아이들의 눈을 보면, 텅 빈 것 같은 눈을 보면, 이곳으로 이사 오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고 했다. ‘나는 못 하겠다.’ 대치동 취재를 마친 뒤 깨달았다. 대한민국 평균 월급쟁이는 대치동의 사교육을 쫓아갈 ‘돈’도 없고, 맞벌이 부부는 ‘시간’도 없다. 교육 역량이 여러모로 부족한 부모로서, 아이를 ‘지옥’으로 밀어 넣지 않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 문득, ‘완전한 포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이의 유치원 친구 부모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교육 정보를 쏟아냈다. 사고력을 키워주는 브레인 스쿨에 다닌다는 아이, 피아노 학원과 은물·가베 학원, 축구 교실, 미술학원을 시작한다는 아이. “6살이면 이제는 수학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한마디에 팔랑귀가 흔들린다. 어느 순간 나도 인터넷으로 정보를 검색하고 있다.

사교육의 뿌리는 불안감이다. 남들처럼 하지 않았다간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감. 낙오되면 이 사회에서 영원히 실패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한번 실패하면 재기할 수 없다는 불안감.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쿨하게 외칠 수 없는 부모는 결국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거야’ 핑계를 대며 오늘도 찔끔찔끔 사교육 문을 연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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