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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름 냄새 가득 밥상엔 ‘고기반찬’…채식인은 설 명절이 괴롭다

등록 2019-02-03 09:41수정 2019-02-04 11:12

채식인들 “기름 냄새 집안 가득 채우고 식탁은 육류로 가득”
육식 강요받기도…여성 채식인 “먹지 못하는 고기 조리도 해야”

채식식당 ‘더 피커’. 사진 강나연 객원기자.
채식식당 ‘더 피커’. 사진 강나연 객원기자.
직장인 길혜민(34)씨는 지난해 설 명절 때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대신 집 밖으로 나가 ‘혼밥’을 했다. 길씨는 달걀과 어패류는 먹는 대신 육고기는 전혀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인이다. 7년 동안 페스코 채식을 해온 길씨에게 설 연휴 내내 집안에 퍼진 고기 냄새만큼 고통을 주는 것은 없다. 길씨는 “평소엔 잠깐이지만 설에는 못해도 3일 동안 계속 고기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역해서 결국 밖에 나가 혼자 식사를 때웠다”고 돌아봤다.

‘먹음직스러운’ 고기반찬이 식탁을 채우고, 기름에 전을 지지는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는 설 명절은 채식인에게 되레 곤혹스러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지난 3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채식인들은 “기름 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데다 식탁 앞에선 젓가락을 어디에 둘지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핸드메이드 작가 이솔(22)씨는 “지난해 설에 할머니 댁에 갔다가 무방비로 육식에 노출돼 결국 밥에 김만 싸먹었다”며 “떡국에도 고기가 들어가 있어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이 없는 기분이었다”고 떠올렸다. 대학생 김세영(24)씨는 “가족이 모여 다 같이 고기를 구워 먹는데 혼자 방에 가 있었다”며 “고기가 없어진 뒤에야 나와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의 여름철 보양식 맛송이온반. 박미향 기자.
채식주의자의 여름철 보양식 맛송이온반. 박미향 기자.
온 가족이 모인 명절 밥상에서 채식인들은 육식을 강요받기도 한다. 이씨는 “한번은 육류가 가득한 밥상에 있기 불편해 방으로 들어가 있었는데 주변에서 굳이 불러내 ‘왜 고기를 먹지 않냐’고 성화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임효영(23)씨는 “지난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고기 대신 버섯에 쌈을 싸서 먹고 있었다”며 “가족들이 내게 ‘고기 몰래 싸서 먹어라’ ‘언제까지 저러나 내기하자’고 하더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할머니께서는 ‘도대체 뭐하는 거냐’며 버럭 화를 내셔서 수저를 놓아야 했다”고 덧붙였다.

여성 채식인들은 명절마다 육류를 손으로 만지고 요리하는 ‘고역’까지 떠맡는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설이면 어머니를 도와 제사상에 올라갈 음식을 차려야 하고 그럴 땐 내가 직접 새우튀김이나 오징어 튀김 등을 한다”며 “채식을 하면서 동물권에 대해 자각하게 됐는데 움직이는 새우나 오징어를 손으로 만져야 하니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유제품, 달걀, 어패류, 육류 등 동물에서 비롯된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비건 채식인 김정연(22)씨도 “(육류는) ‘동물의 사체’라는 인식이 있는데 그걸 만지고 조리하는 과정 자체가 괴롭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육류를 보고 싶지도 만지고 싶지도 않지만, 일하는 다른 여성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 또한 고통”이라며 “이런 문제로 그냥 참고 요리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식 식단. 비건 채식인 추현욱(36)씨 인스타그램 갈무리.
채식 식단. 비건 채식인 추현욱(36)씨 인스타그램 갈무리.
채식인들은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이들을 조금씩 존중해 식단을 꾸린다면 모두가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김씨는 “우리나라 음식이 대부분 채소와 곡류 위주인 만큼 약간의 배려만 더해진다면, 명절은 오히려 평소보다 풍족한 음식을 먹으며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건 채식인 추현욱(36)씨는 “전을 부칠 때 계란과 해물을 넣지 않을 수 있고 액젓을 넣지 않고 나물을 할 수도 있다”며 “그런 배려가 있다면 비건 채식인을 포함한 모두가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명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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