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이정하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 대표에게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임세원법’(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한숨을 쉬었다. “환자 당사자 의견은 듣지도 않은 것 같다. 정신장애인이 가해자가 된 사건이 발생하면 환자를 관리해 치안을 강화하려는 대책만 나온다. 소외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많은 정신장애인의 죽음은 드러나지도 않는다.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부족하다.”
실제 조현병·조울증을 앓는 이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따가운 시선 탓에 가까운 가족 외에는 자신의 병을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1월18일 만난 김상진(25·남), 이은영(43·여), 박성훈(50·남)씨도 그랬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사는 이들은 진짜 이름은 기사에 쓰지 말아달라 당부했다. 지난 2011년 광주시는 정신건강 서비스 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정신보건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돼 의료기관과 지역사회를 잇는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내게 이런 병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정말 무섭고 낯설었다.”
김상진씨는 군 복무 시절 자신의 병명을 알게 된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선임들의 괴롭힘과 폭언을 겪은 뒤, 생각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아’ 불안했다. 군 병원에 입원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기록한 서류를 보게 됐다. 인터넷으로 낯선 용어를 찾아본 결과는 ‘우울·조증, 조현병 의심’.
그는 군 제대 뒤 지난해 3월까지 2년 동안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다. 병에 걸린 사실을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친구들과 거리를 두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택배 배달 등을 해보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좌절을 거듭하는 아들을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병원을 찾았다.
■ “내게도 이런 병이…믿을 수가 없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학력·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조현병·양극성장애(조울증)를 맞닥뜨릴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적절한 치료다. 망상·환청 등 일상이 어려울 정도의 증상은 약물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다. 국내에선 아직 활용도가 낮지만, 약을 먹는 대신 1~3개월마다 한 번씩 주사를 맞는 치료도 있다. <한겨레>가 만난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웠다고 토로했다. ‘2018년 대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조사’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729명 가운데 30%는 일상·사회 활동에 지장을 겪었다. 그러나 288명(39.5%)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족이든 전문가든 누구와도 상의한 적이 없다. 정신질환 역시 가능한 빨리 치료를 해야 예후가 좋다. 다만 조기 발견을 다행으로 여기는 다른 질환에 비해 정신질환 조기 발견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그만큼 편견이 뿌리깊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치료를 지연시킬 뿐만 아니라 환자들을 위축시켜 대인 관계마저 해친다. 소외와 고립으로 적정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증상 악화로 인한 위험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다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 ‘나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위안
김상진씨는 광주 전남대 치과병원 맞은 편에 위치한 ‘마인드링크’의 그룹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식을 돌아보고, 합리적 사고를 하도록 도와 정신증상 대처 능력을 키우는 치료다. 그를 진료한 의사가 소개한 마인드링크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또래들을 만났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위안이 들자 삶이 변했다.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이 찾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나마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설치한 정신건강복지센터나 공동생활과 주거 공간,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정신재활시설 등이 있다. 마인드링크는 광주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발병 초기 단계인 15~30살 청년을 지원하기 위해 2016년 설립했다. 발병 5년이 지난 이들에 대한 상담·지원은 운암동 본소와 두암동 분소가 담당한다. 마인드링크 센터장인 김성완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만성 정신질환 75%는 25살 이전에 발병한다.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발병 초기엔 병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정신보건시설 이용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 센터 등록자는 주로 40~50대라 청년층을 타깃으로 한 지원 체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8월 마인드링크 신규 등록자 39%는 본인 스스로 찾아왔다. 회원 등록 전후 같은 기간을 비교해보니, 입원일이나 자살시도가 대폭 줄었다. 전국에 마인드링크 같은 사업을 하는 지자체는 드물다. 정신건강복지센터·정신재활시설 등에 대한 재정 투입이 적고, 체계적 역할 정립도 되지 않은 상태이다. 적은 비용으로 오래 유지하던 ‘장기입원’ 구조를, 의료기관과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구축하는 치료·재활·복지 지원망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역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족과 환자에게 더 큰 타격을 준다. 2015년 기준 조현병 치료를 받은 18만3427명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은 42.6%나 됐다. 사회적 안전망과 관계망이 헐거운 현실은 마음의 고통을 더욱 깊게 만든다. 2016년 기준 의료기관과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등록된 정신장애인 10만명당 자살률은 96.3명으로, 다른 인구보다 약 3.8배나 높다. 특히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1년까지는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시기이다. 정신질환은 전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럼에도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보편적 문제’로 자리잡지 못했다.
광주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는 2016년 설립한 ‘마인드링크’를 통해 조현병 등이 발병한 지 5년 지나지 않은 15~30살 연령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박현정 기자
■ 가난한 사람들에겐 더 큰 고통
20년 전 조현병 증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한 박성훈씨는 매일 아침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북구 정신건강복지센터 두암동 분소 주간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회원 당사자들 의견을 프로그램 운영에 반영하기 위해 센터가 구성한 ‘어울림 운영자치위원회’ 회장도 맡고 있다. 센터와 연을 맺은 건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토록 오랫동안 센터를 오게 된 건 이 곳 외에 딱히 갈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산업재해로 한쪽 눈 시력을 잃었다. 몸이 불편해지자 일터에서 받는 압박과 스트레스가 커졌고, 이직도 잦았다. 서른 살이 된 1999년 겨울, 아버지는 아들을 살리겠다며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그를 정신장애인으로 등록시키지 않으려 했다. 입·퇴원이 이어지고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서, 일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기초생활보장수급을 받게 된 그는 부모님 집 인근에 위치한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생활한다. 돈을 많지 벌지 못하더라도 일이 너무나 하고 싶다. 40대 초반엔 손수레에 벨트·지갑을 싣고 다니며 장사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그는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소규모로 모여서 살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신장애인 중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갈 데가 정신요양시설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관리인 2명 정도에 10여명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지난 18일 광주 북구 정신건강증진센터 두암동 분소에서 최승기 정신보건사회복지사가 센터 회원이자 ‘어울림 운영자치위원회’ 회장인 박성훈(가명)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현정 기자
■ 종종 아프더라도 병가를 쓸 수 있다면?
정신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고 증상 악화로 인한 위기 상황을 줄이려면, 이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지역사회의 통합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은영씨는 꾸준한 치료, 재활을 거쳐 일을 다시 시작한 경우다. 5년째 도서관 업무 보조로 일하고 있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반납받은 책을 제 자리에 꽂고 대출증을 만드는 업무를 한다. 광주시교육청이 신체·정신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청소·도서관·급식 보조원 채용시험을 도입하면서 지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극심한 마음의 고통으로 병원에 처음 입원한 건 대학 졸업 이후인 27살 무렵이다. 퇴원 뒤 재발이 잦았던 그는 천주의성요한의료봉사기도회가 운영하는 병원의 ‘낮병동’(입원과 외래 치료의 중간 형태)으로 옮기면서 안정을 찾는다. 증세가 호전되면서 정신재활시설에서 직업 훈련을 시작했다. 병원에서 우연히 본 팸플릿을 통해 정신건강복지센터도 알게 됐다. 센터 담당자가 광주시교육청 채용 소식을 알려주었다. 간혹 병으로 일을 지속하기 어려운 순간에 부딪힌다. 지난해 9월에도 한달 입원치료를 하고 일터로 돌아왔다. 다른 질환처럼 병원 진단서가 있으면 병가를 낼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신질환을 직·간접적으로 겪지 않은 사람들과는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다. “(나를 3년간 담당한) 정신건강복지센터 선생님은 아팠던 경험이 없지만 내 증상을 이해해주려 한다. 말 한마디만으로도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마음이 힘든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서로 도와주고 지지해주면 좋겠다. 가족도 그걸 못해줄 때가 많지 않나.”
왈칵 눈물을 쏟으며 드러낸 마음은, 고 임세원 교수가 남긴 ‘우리 함께 살아보자’는 뜻과도 맞닿아 있었다.
광주/박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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