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덕성여대 이사회에서 제11대 총장으로 선출된 강수경 법학과 교수가 논문의 80%가량을 배우자가 편집위원장을 지낸 학술지에 게재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여러 편의 논문을 심사하는 과정에 심사위원이 중복 참여를 한 것으로 드러나 한국연구재단은 강 교수의 논문 11편 전체에 대해 특혜가 없었는지 전수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강 교수가 총장 임용 후보자 선거 과정에서 제출한 등록 서류를 보면, 강 교수가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14편 가운데 11편이 <원광법학>에 실렸다. <원광법학>은 강 교수의 배우자인 원광대 교수 ㄱ씨가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을 맡았던 학술지다. <한겨레> 취재 결과, 강 교수는 ㄱ씨가 <원광법학>의 편집위원장이었던 기간 동안 논문 네 편을 게재했다. 2008년 12월, 2011년 9월, 2011년 12월, 2012년 12월 등이다. ㄱ씨가 편집위원을 맡고 있을 때는 여섯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나머지 한 편이 게재될 때 ㄱ씨는 아무런 직책을 맡지 않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우선 강 교수의 논문 심사위원들이 심사에 중복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한국연구재단이 강 교수의 배우자가 <원광법학>의 편집위원장일 때 게재된 강 교수의 2008년과 2011년 논문 3편의 심사위원을 조사한 결과, 심사위원이 모두 4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논문 1편의 심사위원이 보통 3명인데, 3편인 경우 9명 정도 참여해야 하지만, 4명만 참여해 논문을 심사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연구재단이 강 교수의 배우자가 <원광법학>의 편집위원으로 있을 때까지 범위를 넓혀 강 교수의 논문 7편 심사위원 수를 조사한 결과, 심사위원은 1편당 3명씩 모두 21명이 아니라 5명에 불과했다. 학술지 편집위원장을 했던 서울대 교수 ㄴ씨는 “편집위원장의 권한은 심사위원 선정과 게재 여부 결정인데 (강 교수의 경우는) 아주 특별한 케이스다. 7편의 논문을 모두 5명이 심사했다는 건 봐주기이자 짬짜미”라고 지적했다.
다른 동료 교수도 강 교수의 논문 게재 행태에 대해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덕성여대 교수 ㄷ씨는 “처음 강 교수의 논문 내역을 보자마자 ‘이건 말이 안 된다. <원광법학>에 누가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알고 보니 거기에 강 교수의 남편이 있더라”라며 “교수들 사이에서도 저 사람이 총장 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학술지가 가장 저명하다거나 그 분야에 학술지가 2~3개밖에 없으면 또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의 자료를 보면, 법학연구소 발행 등재지와 등재후보지 49개 가운데 <원광법학>은 2017년 기준 학술지 인용지수에서 38위다.
강수경 총장 임용 후보자 등록 서류에 나온 논문 목록.
강 교수는 이렇게 ‘짬짜미’ 의혹이 이는 논문으로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했다. 강 교수는 2007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법학과 조교수였다가 2011년 9월 법학과 부교수로 승진했다. 4년간 작성한 논문 6편이 부교수 승진 근거로 쓰였는데, 이 6편 가운데 <원광법학>에 실린 논문은 4편이다. 이 가운데 1편은 배우자 ㄱ씨가 편집위원장일 때, 나머지 3편이 편집위원일 때 실렸다.
강 교수가 법학과 정교수가 된 건 2017년 9월인데, 강 교수는 부교수 재직 6년 동안 8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업적을 인정받아 승진했다. 하지만, 8편 가운데 1편만 빼고 모두 <원광법학>에 실렸다. 7편 가운데 3편은 배우자 ㄱ씨가 편집위원장일 때, 3편은 편집위원일 때 게재됐다. 덕성여대 관계자는 “(교수 승진은) 오직 논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교수 승진평가는 논문 실적, 봉사, 강의 세 분야로 이뤄진다. 형식적으로는 세 부분이 다 반영되지만, 봉사와 강의는 큰 영향이 없고 대부분 논문 실적으로 승진이 된다”며 “학교는 학술지 수준, 논문 개수로 점수를 낸다. 해당 논문에 대한 평가는 학술지에서 하는 것이니 학술지를 믿고 근거 자료로 삼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논문이 등재지에 실렸을 때 1.2점, 등재후보지에 실렸을 때 1.0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기준 점수를 충족하면 승진이 이뤄지게 된다.
덕성여대 교수 ㄷ씨는 후보 검증에 실패한 학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총장선거관리위원회나 이사회에서 이런 문제를 검증해야 하는데 검증이 안 되고 지나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덕성여대 관계자는 “교수가 논문을 쓰면 개인적으로 학교에 신고하는 게 아니라 학술지 자체에서 한국연구재단에 논문을 등록하게 된다. 이 자료가 학교에서도 바로 체크되고, 승진 시 교무처로 올라오는 시스템”이라며 “학교에서 논문 하나하나를 체크할 필요가 없는 거다. 학교는 그 부분은 (학술지를) 믿고 검증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연구재단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국연구재단은 “강 교수가 <원광법학>에 게재한 논문 11편 전체를 대상으로, 해당 기간 동안 저자별 전수조사를 들어갈 예정”이라며 “다른 투고자들도 동일한 조건인지 살펴본 후, 강 교수에게만 심사위원 중복이 있었다면 심사위원 배분이 작위적이라는 것이므로 학술지 운영 부실에 해당한다. 강 교수는 특혜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 군데에 다 실었다고들 하는데, 교수들은 자기가 속한 학회가 있다”며 “제가 선거 한번 나갔다가, 지금 이렇게 힘들게 하고 있는데, 별거 아닌 것까지 남편 이름 거론돼가면서 이러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한겨레>와 직접 만난 자리에서는 “학술지 한 군데만 실은 건 내 실수가 맞다. 관성적으로 실었던 것 같다. 남편이 원광대 교수라서 <원광법학>에 실으면 일정을 남편한테 물을 수 있어서 편했다”며 “하지만 분명한 건 논문은 정확하게 심사받았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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