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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음식쓰레기 트럭 추적해보니…비료업체 ‘몰래 뒤섞기’

등록 2019-01-30 15:31수정 2019-01-30 20:11

[르포] 악취나는 음식물 재활용 현장
값비싼 유기질 사료로 눈속임…농민들 등친 셈
감시 ‘깜깜’ 정부·지자체 보조금은 지원
농진청은 ‘뒤섞기 허용’ 검토까지 황당
충남 아산 옛 오리농장에 쌓여있는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들. 이준희 기자
충남 아산 옛 오리농장에 쌓여있는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들. 이준희 기자
지난 17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 음식물 재활용센터. 강동구 음식물 재활용센터는 음식물쓰레기로 가축용 건식사료를 생산하는 공공시설이다. 이곳에서 화물차 2대가 나오더니 한참을 달려 120㎞ 정도 떨어진 충남 아산시 신창면의 한 농장으로 들어갔다. 이 농장은 예전에 오리를 키우던 곳이지만, 지금은 비어있다. 화물차는 이 농장에 포대를 내려놨다. 성인 남성 대여섯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포대였다. 농장 안에는 이미 같은 크기의 포대 100여개가 쌓여있었다. 포대 곳곳이 터져 내용물이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는데, 확인해보니 포대 안에는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가 들어 있다.

지게차로 포대를 옮기던 한 남성은 자신이 농장 주인이라고 밝힌 뒤 욕설을 하며 농장 문을 걸어 잠갔다. 그는 “죄가 있다면 영장을 가져오라”라며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 만난 또 다른 농장 관계자는 “농장에서 사료로 쓰기 위해 가져온 것이 아니다”라며 “보관비를 받고 빈 농장에 쌓아둔 것”이라고 귀띔했다. 농장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ㄱ씨는 “얼마 전부터 하루에도 5∼6차례 화물차가 들락날락했다”고 전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나온 음식물쓰레기가 왜 충남 아산의 옛 오리농장에 쌓이고 있는 걸까? <한겨레>가 입수한 영상을 보면,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 음식물쓰레기는 충남 논산에 있는 ‘ㅇ비료업체’에 전달됐다. ㅇ비료업체는 친환경 농업에 쓰이는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업체다. 현행 비료관리법상 음식물쓰레기는 고급 비료인 유기질 비료에 사용할 수 없는데, 이 업체는 가축 사료로 쓰여야 할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를 유기질 비료에 몰래 섞어 판매해왔다.

음식물쓰레기를 유기질 비료에 섞은 곳은 이 업체뿐만이 아니었다. 강동구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는 지난해 4월2일부터 12월11일까지 확인된 것만 최소 13번 충남 논산과 천안, 충북 음성과 제천, 청양, 전남 영암, 경북 포항 등 전국 각지에 있는 유기질 비료업체에 팔렸다. 하지만 지난달 제이티비시(JTBC) 보도로 ‘음식물쓰레기가 유기질 비료로 둔갑’됐다는 사실이 적발된 뒤, 갈 곳을 잃은 음식물쓰레기는 빈 오리농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날 빈 오리농장에 <한겨레>와 함께 간 아산시 공무원들은 “전혀 몰랐던 일”이라며 당황했다.

유기질 비료업체에서 나오는 화물차량. 동영상 갈무리
유기질 비료업체에서 나오는 화물차량.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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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쓰레기 비료로 키운 ‘유기농 농산물’

유기질 비료 업체들이 가축 사료로 사용돼야 할 음식물쓰레기를 ‘친환경 농산물’ 재배에 쓰이는 유기질 비료에 불법적으로 섞어온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유기질 비료 업체들은 정부가 친환경 농업 장려를 위해 지원하는 보조금도 꼬박꼬박 챙겨왔다. 수십억원의 지원금 부당수령이 의심되지만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책임공방만 벌이고 있다. 한 발 나가 비료업체 관리·감독 기관은 음식물쓰레기를 유기질 비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법까지 바꾸려 한 사실도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유기질 비료 업체들이 음식물쓰레기를 섞은 비료를 유기질 비료라고 속여 농민들에게 팔아 왔다는 점이다. 친환경 농산물이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3년 이상 화학비료를 사용해선 안 된다. 이 때문에 농가에선 비싼 유기질 비료를 대신 사용해 왔다. 유기질 비료는 기름을 짜고 남은 아주까리박·대두박 등을 이용해 만드는데, 1포(20㎏)에 8000원가량이다. 가축 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섞어 만든 일반 퇴비(1포에 3000원)보다 2.7배가량 비싸다. 비싼 유기질 비료가 돈값을 할 것이라는 농민들의 기대와 달리, 비료업체들은 높은 ‘마진’을 위해 유기질 비료에 음식물쓰레기를 섞었다. 10년 동안 유기질 비료에 섞인 음식물쓰레기는 80만톤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음식물쓰레기가 섞인 유기질 비료는 농협을 통해 전국의 농가로 퍼져 나갔고, 음식물쓰레기 비료로 키운 농산물은 ‘유기농 인증’을 달고 각 가정의 식탁에 올랐다. 유기질비료조합 고위 관계자는 “음식물쓰레기 건조물이 대량으로 비료업체에 유입됐다면, 비료를 만드는 데 이용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이종화 순천향대 교수(환경보건학)는 “음식물쓰레기 속 다량의 염분이 지속적으로 비료에 포함돼 뿌려지면, 토양에 영향을 줘 작물의 질 자체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강동구 음식물 재활용센터에서 출발한 차량이 충남 논산 ㅇ비료업체에 들어서고 있다. 이 업체는 이미 2013년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의혹 제기를 받은 바 있다. 동영상 갈무리
강동구 음식물 재활용센터에서 출발한 차량이 충남 논산 ㅇ비료업체에 들어서고 있다. 이 업체는 이미 2013년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의혹 제기를 받은 바 있다. 동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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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샌 세금…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못해

문제는 음식물쓰레기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비료 지원금을 관리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친환경 농업을 육성하고 농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1999년부터 ‘유기질 비료 지원사업’을 통해 보조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유기질 비료 1포대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1600원가량으로, 보조금은 농협을 통해 비료업체에 바로 지급된다. 농림부의 자료를 보면, 유기질 비료 지원에 쓰인 예산은 △2013년 253억 △2014년 287억 △2015년 312억 △2016년 324억 △2017년 323억 △2018년 275억원(추정치)으로, 이 돈들이 보조금으로 비료업체에 흘러들어 갔다.

정부는 이렇게 집행된 보조금 가운데 부당 수령액이 얼마인지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장에서 적발하지 않으면 음식물쓰레기가 섞였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렵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유기질 비료에 음식물쓰레기 건식사료가 얼마나 섞였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며 “사실상 성분 분석으로도 불법 사실을 밝혀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음식물쓰레기가 얼마나 유기질 비료에 섞였는지 모르니, 보조금이 얼마나 새나갔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셈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환경부는 2013년 국정감사 때 관련 의혹 제기와 관련해 “표본조사 뒤 문제점이 있다면 전수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시설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라며 입장을 바꿨다. 지자체는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청 관계자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건 맞지만, 강동구는 음식물쓰레기 불법 판매와 직접 관련이 없고, 지도·감독 책임만 있다”며 “잘못된 사항은 민간업체에 문의하라”고 답변했다. 한국음식물자원화협회 관계자는 “유기질 비료업체는 값싼 음식물쓰레기를 이용해 부당이익과 보조금을 챙기고, 음식물 처리시설은 음식물쓰레기 불법 판매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구조”라며 “결국 ‘쓰레기 비료’를 산 농민도 속고 ‘쓰레기 친환경 농산물’을 먹은 소비자도 속았다. 세금으로 지급되는 보조금까지 가로챘으니, 국민들까지 속인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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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 잇따르자 법 바꾸려 ‘꼼수’

더 황당한 건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유기질 비료 업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농촌진흥청이 실태조사를 벌이는 대신 음식물쓰레기 건조물을 유기질 비료에 섞을 수 있게 법령을 바꾸려 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점이다.

농진청은 지난해 11월13일 음식물쓰레기를 혼합유기질 및 유기복합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비료 공정규격 설정 및 지정’ 일부 개정 고시안을 내놨다. 고시안이 나오자 관련 업계에서는 “사실 파악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농진청이 법을 바꿔 면죄부를 주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농진청은 “아주까리박 등 유기질 비료의 원료가 인도에서 전량 수입되는 등 수입산이 많아 지원금 등의 국고가 유출된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국내 원료 장려 차원에서 검토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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