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나비문화제가 열린 2016년 8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왼쪽)·길원옥 할머니가 12·28 한-일 합의 이후 일본의 지속적인 철거 이전 요구를 받고 있는 소녀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8일 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가 향년 93살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누리꾼들의 김 할머니 추모 글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페이스북에 추모 글을 올리고 “할머니께서는 피해자로 머물지 않았고 일제 만행에 대한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며 역사 바로잡기에 앞장섰습니다”라며 “지난해 병실에서 뵈었을 때, 여전히 의지가 꺾이지 않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자 스물 세분을 위해 도리를 다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이날 오후 1시30분 현재 트위터에는 ‘김복동 할머니’를 키워드로 모두 4만6240개의 트위트가 게재됐다. 아이디 @wht_li***는 “2013년 글렌데일 소녀상 세워질 때 할머니를 뵈었는데 너무 조그맣고 왜소한 체격이시라 놀랐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눈빛만은 잊을 수 없다. 단호한 얼굴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악마 같았던 그 인간들이 지옥 불에 던져진 모습을 보고 계시려나. 그곳에선 아픔 없이 평안하소서”라고 썼다. 아이디 @ecomi***는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에게, 이 땅의 착취당하는 여성들에게, 더 나아가 세계의 소시민들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해서 바위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깨우쳐주신 #김복동 할머니 편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페이스북에서도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아이디 ‘Inanna S***’는 “할머니께서 편히 가실 수 있도록…끝까지 지지 않겠습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할머니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말씀밖에 드릴 수 없는 현실이 너무 슬픕니다. 김복동 할머니, 죄송합니다”(이**), “김복동 할머니…편히 쉬소서…#남은자의_짐이_무겁다”(Wycliff L***), “위대한 우리들의 할머니. 평안히 눈 감으셔요. 할머니의 소원이 꼭 이루어질 거에요.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백*), “슬프다…슬프다…김복동 할머니ㅠ.ㅠ 잊지 않을게요… 할머니 사과라도 받고 가셨으면 조금이라도 덜 슬펐을텐데ㅠㅠ 할머니 좋은 곳으로 가세요!!”(이**)”라는 추모 글이 올라왔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저도 이렇게 억울하고 답답하고 화가 나는데 할머니의 심정은 어떠셨을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기원할게요.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re-**), “가슴이 쿵 내려앉는 김복동 할머니의 별세 소식. (중략) 미국에서 직접 담았던 할머니의 모습을 꺼내어 보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중략) 부끄럽다. 안일한 나도, 그렇다고 지금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내 급급하게 살아온 내가 너무도 부끄럽다 (중략) 간절한 마음으로 어디든 달려와, 수천 번 했던 증언일지라도 혹시나 틀릴까 되뇌며 조용히 담배 한 까치 태우던 작은 어깨… (중략) 평안하세요 할머니. 죄송해요”(wonni***)라는 글이 올라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를 지난 2014년 2월8일 오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마련한 쉼터인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만났다. 김 할머니는 “어릴 땐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이젠 눈물도 마르고 웃을 일도 없다”며 초탈한 자세를 보였고, ‘소원이 무엇이냐’, ‘가장 기쁠 때가 언제였나’ 등의 질문에는 “아이고, 희한한 걸 다 묻네. 그런 거 없다”고 반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3살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인스타그램에 “같은 여성으로서,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하실 때마다 끊임없이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떠올려야 했을 할머니의 심정을 감히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다시는 나와 같은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 되며, 이 세상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외치셨다. 그렇게 할머니는 인권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로 거듭나셨다. 이제 기껏해봤자 2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단언컨대 할머니는 내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존경스러운 분이었다. (중략) 어느 옆 나라에서 총리라는 사람은 사죄는커녕 반성조차도 하지 않는다. 참 슬프고 화가 난다. 더불어 이제 우리가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참으로 화가 나고 슬프고, 한편으로는 복잡한 생각이 드는 새벽이다”(em―hb***)라는 추모글을 써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사회 각계각층 유명인들의 추모도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어졌다. 변영주 감독은 “실은 겁 많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별로였던 할머니는 이제 모든 피해 여성들의 깃발이 됐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잘 가요!”(@redcallas)라는 트위터 글을 남겼다. 미디어몽구는 “그 긴 세월 힘내주시고 애써주시고…감사합니다.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셨습니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이제 편안하시길”(@sunday0317)이라고 썼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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