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쏘아 올린 법관 탄핵 논의가 국회로 건너간 뒤로 깜깜무소식이었다. 여당이 미적거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한 판사)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여야 정치인들의 재판 민원 창구 구실을 했다는 사실이 최근 검찰 수사로 재확인되면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 탄핵과 특별재판부 설치 논의가 국회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가 ‘상부상조 때문이었다’는 장탄식이 법원 안팎에서 나온다.
또 다른 판사는 18일 “판사들이 법관 탄핵 필요성을 촉구까지 한 상황에서 국회가 어떤 논의도 없이 미루는 것은 직무유기와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야당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여야 막론하고 행정처와의 유착관계 때문에 소극적이라고 다들 생각한다”고 법원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인들이 재판 관련 민원을 넣고 법원은 이를 들어주며 상고법원 입법의 지렛대로 삼았으니, 뒤가 구린 여야 정치인들이 법관 탄핵이나 특별재판부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은 서영교 의원이 당직(원내수석부대표)을 내려놓자, 재판 청탁이라는 중대한 불법 행위임에도 징계도 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앞서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추가 기소하면서 전·현직 국회의원의 재판 민원 청탁 사실 등을 확인했다. 2015년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었던 서영교 의원은 지인의 아들이 강제추행 미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되자, 국회에 파견 와 있는 판사를 불러 재판부에 ‘죄명 변경’과 ‘벌금형 선처’를 부탁했다고 한다. 또 행정처는 비슷한 시기 전병헌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보좌관의 정치자금법 위반 항소심을 앞두고 예상 양형 검토보고서를 작성해 전 최고위원에게 검토 결과를 설명해줬다고 한다. 행정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위한 대국회전략’ 문건 등을 작성해 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여왔던 시기도 2015년이다.
행정처는 또 2016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위해 양형 검토 문건을 작성해 항소심 대응 전략을 짜주기도 했다.
그해 8~9월에는 이군현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 노철래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임 전 차장은 행정처 심의관(판사)들에게 양형 검토 문건 작성도 지시했다고 한다. 노 전 의원은 19대 국회 법사위원이었다.
국회의 ‘직무유기’에 탄핵 대상으로 거론되는 법관들이 ‘혜택’을 입을 전망이다. 재임용에서 탈락하며 다음달 28일로 법관 임기가 끝나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사상 첫 법관 탄핵이라는 불명예는 물론 경제적 손해도 입지 않고 법원을 나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탄핵당한 법관의 경우 5년 동안 변호사 개업이 금지된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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