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회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백소아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며 ‘사법농단’에 관여한 이규진 부장판사(57·연수원 18기)가 법관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국회가 지지부진하게 법관 탄핵을 끌어오면서 이 부장판사는 그대로 임기를 마치고 법원을 나가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진 건 아니지만 이 부장판사가 재임용에서 탈락했으니 법관탄핵명단에서 빼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된 사안을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3월1일자로 판사 자격을 박탈당하는 이 부장은 탄핵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 탄핵소추 대상은 현직 법관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탄핵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접수하고 탄핵 심판을 거쳐야 한다. 탄핵이 되면 해당 법관은 변호사법에 따라 5년 동안 변호사를 할 수 없지만, 재임용에 탈락하면 변호사로 개업할 수 있다. 임종헌 전 차장도 재임용 신청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사직해 징계나 탄핵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의 법관 탄핵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재판 민원'으로 국회의원과 법원의 유착 의혹이 거세지는 가운데 대법원 선에서 징계가 마무리돼 탄핵 대상 판사들에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지적이다. 한 판사는 “서영교 의원 사건 청탁 의혹 등 임 전 차장 추가 기소 내용을 보니 국회가 왜 탄핵을 안 하고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법관회의를 거쳐 탄핵 요구했고 법원행정처도 징계를 했는데 국회가 미적거리는 동안 관련자들이 다 법원을 빠져나가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도 "상고법원 입법로비 과정에서 대놓고 재판개입까지 했으니 법원행정처와 관계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많다. 탄핵 대상 법관과 관련된 사람들이 탄핵을 막아달라는 구명운동도 하고 있을 것"이라 밝혔다.
원내 수석부대표인 서영교 의원의 재판 민원 의혹으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오히려 탄핵에 더 소극적일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종헌 전 차장의 추가 기소 후 입법부와 사법부의 유착 로비가 더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오히려 탄핵을 추진했다가 국회의원-법관 사이 유착관계가 드러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판사는 “국회가 탄핵을 할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도 결국 관여자이기에 탄핵소추하면 (우리도) 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라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이미 품위 손상 등의 이유로 2017년 8월 감봉 4개월, 지난해 12월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 내 학술단체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전임 회장으로, 연구회 쪽에 학술대회 연기 및 축소를 압박하고 이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보고했다. 또 박병대 전 대법관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심의관을 시켜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에 개입한 혐의 등이 있다.
이 부장판사는 1989년 3월1일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헌법 제105조는 대법원장·대법관이 아닌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정했다. 이 때문에 법관들은 10년마다 연임 적격을 따지는 재임용 심사를 받는다. 법관 인사 규칙은 임기가 만료되는 판사는 임기 만료 3개월 전까지 연임 희망원이나 불희망원을 대법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최우리 고한솔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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