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회)는 2008년 검찰이 배임 혐의로 <한국방송>(KBS) 정연주 전 사장을 기소한 것은 부당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정 전 사장에 대해 검찰총장이 사과하고, 판사나 검사에게 법률 처리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 왜곡죄’를 도입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17일 ‘KBS 정연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사건’에 대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유죄 판결의 가능성이 없음에도 공소가 제기돼 적법한 공소권 행사의 범위를 일탈했다. 검사에게 주의 의무 위반의 과오가 있다”고 밝혔다.
1999~2004년 케이비에스는 국세청에 17건의 법인세,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1심에서 2448억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05년 8~12월 케이비에스와 국세청이 협의한 뒤 법원에서 보낸 조정권고안을 수락하는 형식으로 케이비에스는 556억원만 받고 2006년 1월 항소심에서 소를 취하했다. 전 케이비에스 소송담당 직원 조아무개씨는 정 전 사장이 케이비에스에 1892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며 2008년 5월 정 전 사장을 고발했다. 검찰은 그해 8월 정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2012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정 전 사장은 논쟁 속에 강제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케이비에스 내부 갈등도 격화됐다. 정 전 사장의 재임기간은 2003~2008년이다.
위원회는 케이비에스의 판단을 배임 혐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케이비에스가 항소심에서 승소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고, 최종 승소하더라도 국세청이 세금을 재부과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2심 판결에서 “조세소송의 최종 승소 여부는 전문가들의 판단조차 일치되지 않고 선고 전까지 특정 소송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세금 재부과 가능성에 대해 이아무개 전 서울지방국세청 계장이 당시 검찰 조사에서 “새로운 부과처분을 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사실도 있었다.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윤운식 기자
위원회는 당시 검찰총장 이하 수사라인에 있던 검사들도 정 전 사장에 대한 배임죄 혐의 적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봤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지난해 10월 말 조사단과의 조사에서 “혐의 인정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법원의 조정에 응한 것이 어떻게 배임이 될까”라며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명동성 전 서울중앙지검장, 최교일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박은석 서울중앙지검 조사부장 등도 조사단에 유죄를 확신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위원회는 △정 전 사장에 대한 검찰총장의 사과 △판사나 검사 등이 수사하거나 재판할 때 법을 왜곡해 적용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법 왜곡죄’ 도입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 제도 개선 △검찰권 남용 통제수단 마련 등을 권고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고발이 정부의 기획, 조정이었다는 의혹, 수사 과정과 기소 경위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관련 진술이나 자료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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