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국회에서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 열려
“한 개인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 흔드는 강제퇴거”
“김석기 의원 제명하라” 김 의원실 방문하려다 충돌 일기도
용산참사 10주기를 닷새 앞두고 1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용산참사 유가족, 시민단체 회원 등이 기자회견을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는 17일 국회와 자유한국당 당사 앞에서 ‘김석기 처벌·강제철거 규탄대회’를, 18일에는 조계사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추모와 기억의 밤’ 행사를 연다. 10주기 추모제는 20일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서 열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
용산 참사 유가족 전재숙(75)씨는 용산 참사 당시 남편을 잃었다. 아들은 옥살이를 했다. 지난 10년 동안 전씨는 국회로, 청와대로, 경주로 다니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쳐왔다. 전씨는 “살인과 학살을 지시한 김석기는 지금 국회에서 떵떵거리고 있다”며 “김석기를 쳐다볼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분노했다. 용산 참사 당시 남편이 연대 투쟁을 하다 세상을 떠난 유영숙(59)씨는 수사 당시 경찰이 부검한다고 가져간 남편의 시신이 매우 훼손됐었다고 한다. 유씨는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기 위해서 훼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용산 참사 생존자인 천주석(56)씨는 자신을 현재 상도4동 11구역의 철거민이라고 소개했다. 천씨는 “동지인 철거민을 죽였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감옥에 가게 됐다”고 말하며 “출소 뒤 대통령이 사면장을 줬는데, 진상규명도 하지 않을 거면서 이런 종이쪽지를 왜 줬냐”고 소리쳤다.
#2.
김진욱(58) 토란 월계인덕마을 위원장은 2016년 4월26일 새벽 6시부터 서울시 노원구 월계2동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 이뤄진 불법 강제집행 현장에서 폭행을 당해 앞니 3개가 부러지고, 오른쪽 갈비뼈가 골절됐다고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조합장과 집행관, 이주 업무를 담당하던 법무법인 변호사와 실무자를 특수상해교사 혐의로 고소했지만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 경찰과 서울북부지방법원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도 냈다. 인권위는 경찰청에 인권교육 실시를 권고했다. 또 북부지방법원장에겐 인권 친화적인 집행 수행에 대한 지침을 마련하고 집행관 교육을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그 이후 장위 7구역의 강제집행과 아현 2구역, 노량진 수산시장 등지에서 폭력과 비인권적인 집행이 끊이질 않고 있다고 했다. 되레 좀 더 교묘해졌다고도 했다.
1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추모위원회)의 주최로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강제퇴거 전면금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한다’가 열렸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15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추모위원회)의 주최로 ‘용산참사 10주기 강제퇴거 피해자 증언대회-강제퇴거 전면금지를 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한다’가 열렸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청량리 철거지역, 노량진 수산시장, 노원구 월계2 인덕마을 등에서 강제 퇴거를 당한 피해자들과 궁중족발 등 상가에서 강제 퇴거를 당한 세입자 등이 나와 퇴거 피해 사례에 대해 얘기했다. 참석자들은 “용산 참사 이후에도 국가 권력이나 자본 권력에 의해서 강제 집행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강제 철거 당시 사설 용역 직원들로부터 당한 폭행 피해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쌔미 맘편히장사하고픈 상인모임 상임활동가는 “2016년 1월29일 오전 6시 파리바게뜨 효자점에 50명 사설경비용역이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연대인 1명이 뇌진탕으로 119에 후송되고, 2016년 7월7일 강남구 우장창창 1차 강제집행 당시 경비업체 용역들이 가게를 지키는 인원들에게 소화기를 분사해 내부의 인원들이 호흡곤란 증세를 겪었다. 2017년 10월10일 새벽 6시에는 사설 용역이 궁중족발을 강제 집행하면서 여성 1명의 앞니가 부러지기도 했다”고 하나씩 짚었다. 그는 이어 “이같은 폭행은 모두 ‘경비업체 용역’이 자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고백했다.
백채현(46) 전국철거민연합 청량리 위원장은 “청량리4구역에 강제집행이 있기 전부터 조직폭력배들이 24시간 주민들을 괴롭혔다”며 “이들은 집 앞에 평상을 펼쳐놓고 주민을 감시하고, 사람이 자고 있는 밤 시간에 집안에 벽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노량진수산시장의 현대화를 반대하는 구시장에 수협이 단전·단수 조처를 하는 등 갈등이 있었던 윤헌주(50) 노량진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은 “수협 쪽은 시장에 매일 난입해서 영업 방해 행위를 일삼고, 연대 단체의 반대로 강제 집행이 무산되자 물과 전기를 끊어서 강제 입주를 종용했다”며 “현재도 직원들과 용역들이 수시로 구시장에 난입해 상인들에게 폭행과 폭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3년 전 인덕마을 재건축구역에서 이뤄진 강제 집행을 떠올리며 “그날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도, 서울시민도, 노원구민도 아닌, 재건축 사업의 방해물일 뿐이었다”며 “인권 유린과 폭력의 현장”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증언대회에 참석한 용산참사 유가족 등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들은 또 경찰이 사설 용역 직원들의 폭행 현장을 수수방관했다고 주장했다. 백 위원장은 “수많은 불법 강제 집행이 있었음에도 국민을 보호해야 하고 국민을 지켜줘야 될 관내 구청 직원들과 경찰들이 조합의 편에 서서 주민을 내쫓는 데 앞장서고 있다”며 “(강제집행 현장에서) 인권지킴이와 경찰은 먼발치에서 구경만 했다”고 말했다. 쌔미 위원장 또한 “강제 집행 현장에서 집행관은 방관만 하고 있었다”고 강제 집행 당시를 떠올렸다. 김 위원장도 “강제집행이 3시간 가까이 진행되며 피투성이가 되어 차례로 끌려 나온 주민들이 길바닥에 쓰러져 가도 서울 북부지원 집행관은 집행을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날 증언대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권미혁·박주민, 정의당 윤소하,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도 참석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은 의원들을 향해 “용산참사 이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 ‘경비업법’ 등의 개정이 있었으나 그동안 지적되어 온 개발과 강제퇴거의 문제점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무엇보다 ‘강제퇴거’ 자체가 불법이 되게 해야 한다. 그동안 구청은 ‘철거민’을 더 이상 지역의 주민으로 대하지 않았고, 그들의 생존을 건 저항이 ‘도심 테러’로 매도되고 있다”며 “퇴거를 수반하는 각각의 개발사업과 각각의 개발법들에 적용될 수 있는 기준과 원칙을 세우는 ‘강제퇴거금지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권미혁 의원은 “용산 참사 10주기가 됐는데도 강제 철거 사례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며 “‘행정대집행법’ 개정안을 통해 행정대집행의 요건·절차 및 구제 등에 관한 규정을 세부적으로 담아 정부가 인권침해 방지 및 안전사고 예방 장치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 시민이 2009년 1월30일 오후 서울 용산참사 현장에 내걸린 김석기 당시 경찰청장 후보자의 얼굴이 인쇄된 펼침막을 제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증언대회가 끝난 뒤 용산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추모위원회는 국회 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김석기 의원 제명 요구 긴급 기자회견’을 열려다 의원회관 쪽과 10분가량 충돌이 일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김석기를 제명하라” “김석기를 감옥으로”를 외치며 김 의원의 방에 방문하려다 의원회관 쪽의 제지로 방문하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용산 참사로 인해 아버지가 죽고, 남편이 죽고, 아들이 죽었다”며 “김석기 의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이들은 “용산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김석기를 처벌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의원회관 쪽과 1시간가량 대치하다 자리를 떠났다.
한편, 이날 오전 청와대 앞에서 열린 용산참사 10주기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는 용산 참사 10주기를 맞았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용산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의 활동이 다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용산참사에 대한 진상 조사가 중단된 건 관계자들이 조사에 불응하고, 검찰들이 조사관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며 고소, 고발까지 거론하다 보니 조사관이 조사 활동을 못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조사관 2명이 사퇴하고, 2명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어 용산 참사 관련 조사팀이 거의 해체 지경에 이르렀다”며 “이런 지경에서 3개월 조사 기간 연장돼도 조사 제대로 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청와대가 수수방관하고 있어 답답하다”며 “조사 기간 등을 보강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