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내걸린 법원 상징물.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대학교수인 ㄱ씨는 2017년 6월 자신이 소속된 대학 총장의 배임 및 성추행 관련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법원에 갔다가 판사로부터 “주제넘는 짓을 했다”는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 ㄱ씨는 같은해 2월 법원에 ‘총장을 엄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피고인인 대학 총장에게 불리한 증거자료를 두차례 제출했는데, 판사는 ‘제3자인 ㄱ씨가 검사를 통하지 않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의 증거서류를 직접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더 이상 자료를 제출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판사의 발언 뒤에도 ㄱ씨는 또다시 세번째 탄원서를 제출했고, 판사는 방청석에 앉아 있는 ㄱ씨를 불러세워 “주제넘는 짓을 했다” “지금까지 제출한 진정서와 탄원서를 찾아가라”고 10여분 동안 꾸짖었다. ㄱ씨가 제출한 세번째 탄원서에는 형사소송법 절차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가 담겨 있었을 뿐 판사가 제출하지 말라는 증거자료는 첨부되지 않는데, 판사가 이를 확인하지 않고 꾸짖기부터 한 것이다. 이에 ㄱ씨는 “인격권을 침해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ㄱ씨의 진정에 대해 지난달 10일 “판사의 발언이 사회 상규상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나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했다. 해당 판사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 시행하라고 법원에 권고했다”고 15일 밝혔다.
해당 판사는 “ㄱ씨의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시키기 위한 것으로, 지나가는 특정 몇 마디를 두고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인권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 조사를 종합하면, 당시 법정에는 수십명의 학생과 학교 관계자가 함께 재판을 방청 중인 상황이었다. 이날 방청석을 지켰던 학교 관계자는 “현장에서 30년 넘게 인권운동을 하고 법정에 드나들었지만 그날처럼 재판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도 저렇게 법정에서 창피와 수모와 인격 모독을 당할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고 진술했으며, 또 다른 학생 역시 “혼내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한 사람을 여러 사람 앞에 세워 모욕을 줬다”고 밝혔다.
이에 인권위는 “판사가 형사소송법상 증거절차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진정인의 행동을 제지하고자 했더라도 ‘주제넘는 짓을 한다’는, 어른이 어린 사람을 나무라는 표현을 공개적 장소에서 한 것은 자존감 훼손”이라며 “당시 같은 장소에 있던 학생이나 중년의 일반인이 진정인의 피해 감정에 공감한 점, 나아가 법관의 소송지휘권 행사도 헌법에 규정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점 등을 종합해볼 때, 이는 사회 상규상 허용되는 범위를 벗어나 진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황춘화 오연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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