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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잘 사는것 만큼 잘 떠나는게 중요해”

등록 2019-01-12 09:30수정 2019-01-12 10:07

내가 갑자기 떠나도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잘 수습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한다. 내가 갖고 있는 통장이 어디에 있는지, 비밀번호는 뭔지 등 내 정보를 모두 기록해둬야 한다. 또 세상에서 내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가야 한다. 게티 이미지뱅크
내가 갑자기 떠나도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잘 수습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한다. 내가 갖고 있는 통장이 어디에 있는지, 비밀번호는 뭔지 등 내 정보를 모두 기록해둬야 한다. 또 세상에서 내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가야 한다. 게티 이미지뱅크
[토요판] 남지은의 실전싱글기 16 홀로의 마지막 고민

“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지울 거예요.”

몇시간만 지나면 앞자리가 ‘5’가 되는 여자1의 말에 그날의 분위기는 애잔함으로 바뀌었다.

지난 연말, 어쩌다 보니 홀로들이 연령대별로 모였다. 20대, 30대, 40대, 50대까지. 몇시간만 지나면 앞자리가 바뀌는 이들이 몇몇 섞여 있었다.

연말이면 으레 하는 새해 소망 얘기를 하는데, 이날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곧 60대인 남자1과 곧 50대인 여자1은 줄곧 비장했다. “앞자리가 달라지는 건 인생의 한 시대가 저무는 것과 같아” “새 시대를 맞는 일이기도 하지” 등등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급기야 “나를 지우기”까지 확장된 것이다.

평소 세대를 뛰어넘는 이 모임을 즐거워하던 20대 남자2와 30대 여자2는 처음으로 우리 사이 이질감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아니 세상에서 왜 나를 지워요?”

30대 여자2가 놀라자, 곧 60대 남자1과 50대 여자1은 너와 나는 같은 ‘홀로’지만 또 다른 ‘홀로’라며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젊은 ‘홀로’일 때는 나를 채우는 희망찬 계획부터 생각하게 되지. 전국 일주를 하고, 국외여행을 가고, 책을 쓰고, 운동을 하는 등 더 나은 내가 되려고, 꿈을 이루려고 필요한 것을 먼저 떠올리지. 더 잘, 더 열심히 사는 1년을 위해 무엇을 더 할까를 고민해. 젊을 때는 혼자여도 그 혼자라는 즐거움이 더 큰 법이지.”

여자1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50대 이후가 되면, 내가 떠난 뒤의 ‘나’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 혼자 이렇게 살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나이가 시작된 거거든. 내가 갑자기 떠나도 사람들이 당황하지 않고 잘 수습할 수 있게 준비를 하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갖고 있는 통장이 어디에 있는지, 비밀번호는 뭔지 등 내 정보를 모두 기록해둬야 해. 전세금 혹은 이 집은 어떻게 할지 등도 생각해놓는 거야. 불필요한 사이트를 탈퇴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세상에서 내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가야 해. 부모님도 안 계시고, 딸린 식구도 없는 내가 사라지면, 대혼란이 일어나거든.”

이제 막 홀로의 생활을 시작한 20대도, 그 즐거움이 무르익어가는 30대도, 어렴풋이 그게 뭔지 알 것 같은 40대도 그 순간 말을 잊었다.

우리 모두 더 훌륭한 홀로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만 고민해왔다. 더 즐거운 홀로, 더 알찬 홀로, 더 안전한 홀로가 되는 일들에 집중했다. 홀로의 가장 마지막 고민인 “아무도 없는데 내가 사라지고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사실 한번도 떠올려보지 않았다.

“지금은 부모가 있고 형제자매가 있으니 그나마 나을 테지만, 더 나이가 들어 곁에 아무도 없다면, 뒷일은 누구도 제대로 수습할 수 없는 거니까.”

남자1의 얘기에 여자1의 얘기가 더해지자 비장해졌다.

“홀로이니까, 필요한 거야.”

홀로가 아니어도 잘 사는 것만큼, 잘 떠나는 게 중요한 세상이 됐다. 잘 떠나는 것은 사실 홀로들에게 더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실전 싱글기’의 완성은 잘 떠나는 준비를 해두는 것일까.

잘 떠나자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까, 사실 많이 고민했다. 정색하고 파고들면 무거울까봐, 대화들로 구성했다. 마지막까지 홀로의 완성을 위한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고 자부하며, 나 역시 잘 떠나려고 한다. 마지막 ‘실전 싱글기’다. 고맙습니다. <끝>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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