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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카풀반대’ 택시기사 유서…“간신히 밥 벌어먹는 우리를 죽여”

등록 2019-01-10 16:47수정 2019-01-10 20:24

한 달 새 2명 분신… 잇따른 극단적 선택
비대위, 기자회견서 유언파일 공개
“60대 기사들은 또 어디로 가란 말이냐”
법조항 안 없애면 택시 총집결 예고

정치권·노사 대화는 진척 없어
전문가 “카풀-택시문제 함께 해결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설치된 택시기사들의 농성장 앞에서 한 택시기사가 ‘카카오택시 앱 불매운동’이라고 써넣은 택시를 몰고 나타났다. 김민제 기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 설치된 택시기사들의 농성장 앞에서 한 택시기사가 ‘카카오택시 앱 불매운동’이라고 써넣은 택시를 몰고 나타났다. 김민제 기자
카풀 서비스 반대를 주장하는 택시기사가 또 분신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0일 서울 종로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임아무개(65)씨가 이날 새벽 5시50분께 숨졌다. 수원에서 개인택시를 운영해 온 임씨는 전날 오후 6시께 서울 광화문광장 인근 도로에서 분신으로 추정되는 택시 화재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택시 안에서 녹아서 납작해진 기름통과 기름통 뚜껑이 발견됐다. 또 불에 그을린 2019년 다이어리가 한 권 나왔는데, 가족에게 남긴 짧은 글이 발견됐다”며 “1차 유증 반응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다. 분신으로 추정하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택시기사가 카풀 서비스 반대를 주장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택시기사 최아무개(57)씨가 카카오 카풀 서비스 시행에 반대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해 숨졌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4개 단체로 구성된 ‘카카오 카풀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씨의 유언이 녹취된 파일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이 공개한 유언을 보면 “60대 주축으로 이뤄진 택시기사들은 또 어디로 가란 말이냐. 우리 죽고 나면 대리기사들마저 죽을 것”이라며 “택시와 상생하자는 카카오톡, 지금에 와서는 콜비도 받아 챙기고 심지어 카드까지. 대리기사들 건당 요금에 20%까지 챙겨가며 간신히 밥 벌어 먹고사는 택시기사들마저 죽이려고 하는”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또 문재인 정부를 두고 “국민들은 다 죽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나는 더 이상 당신들 밑에서 살기 싫다. 저 멀리서 지켜보겠다”고 비판하는 내용도 나온다. 녹취는 “택시기사들이여, 다 일어나라. 교통을 마비시키자”라는 내용으로 끝났다.

동료 택시기사들은 임씨의 죽음을 애도했다. 서울개인택시사업조합 이사 백철기(68)씨는 “서울에서 35년 택시 운전을 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어려운 고난은 처음”이라며 “지금 두번째 죽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박살이 나면 2회, 3회, 4회 계속 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개인택시사업조합 소속 택시기사 정동명(71)씨는 “지금 개인택시 기사들은 나 하나가 희생돼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뭐라도 하겠다는 마음”이라며 “개인택시 운전을 30년 넘게 했는데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다. 자기 생명을 끊을 정도면 어떤 마음이겠나. 이런 일이 또 반복될까 봐 다들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8년째 택시기사로 일하고 있는 ㄱ(67)씨는 “전에 여의도 집회도 갔었고 앞으로도 집회를 하면 갈 테지만 죽음이라는 선택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며 “카풀을 몸으로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고 말했다.

누리꾼들도 임씨의 사망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임씨의 사망 소식이 담긴 기사에는 한 누리꾼(hcwc****)은 “1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해도 한 달에 200만원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택시기사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대책은 세워주지 않고 카풀 앱까지 허용하니 그들의 가족과 생계는 누가 책임질까요. 공유경제 실현이란 미명아래 대기업의 편만 드는 정부의 문제점, 그리고 카카오라는 대기업에서 정치인에게 얼마나 로비를 했으면 대책도 세우지 않고 허가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썼다. “당사자의 고통을 누가 알겠습니까? 다만 내일의 두려움 때문에 지금 목숨을 버리지는 말았으면 한다”는 댓글(ccml****)도 있었다.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4개 단체로 구성된 ‘카카오 카풀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민제 기자.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4개 단체로 구성된 ‘카카오 카풀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민제 기자.
비대위는 이날 회견에서 “정부와 여당이 요구하는 사회적 대타협기구에 대해 우리는 카카오 카풀의 운행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에 나올 것을 요구했으나 카카오 쪽은 불법 카풀 영업을 계속하며 이를 거부하고 있어 현재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카풀 영업의 빌미가 되고 있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81조 제1항 제1호를 삭제하라”라며 “이러한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100만 택시 가족과 25만 택시가 광화문과 청와대를 향해 총집결하는 제4차 택시 생존권 쟁취 결의대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대위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개인택시 5대와 오케이(OK)택시 5대 등 택시 10대를 타고 줄지어 이동했다.

정치권과 택시업계 사이의 대화는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당 카풀 태스크포스(TF) 전현희 위원장과 김정렬 국토교통부 2차관, 택시노사 4개 단체장이 만났지만 이들은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택시 노사단체는 정부가 카풀서비스 중단을 먼저 약속해야 사회적 대타협기구 안에서 논의한다는 견해지만 티에프 쪽은 카풀 규제와 택시 산업 발전방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견해로 의견차를 보였다. 전 위원장 의원실 관계자는 “돌아가신 택시 기사분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며 “택시업계와 앞으로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택시노조 등 택시 4개 단체가 지난달 20일 국회 앞에서 연 '카카오 카풀 반대 3차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카풀 퇴출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국택시노조 등 택시 4개 단체가 지난달 20일 국회 앞에서 연 '카카오 카풀 반대 3차 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카풀 퇴출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전문가들은 우선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공유경제는 피할 수 없는 변화이지만 여기에는 속도 조절이 핵심”이라며 “고위직에 있는 정부 당국자가 물밑으로든지 어떤 방식으로든 택시업계와 꾸준하게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풀 문제만을 적대로 삼기보다 택시업계 내부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택시업계 내부에서는 사납금 등 택시기사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관련된 고질적 문제들이 지속해서 있었는데 카풀이라는 신사업이 등장하면서 카풀이 마치 최대의 적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며 “택시업계와 정치권이 카풀 문제 외에도 택시업계 내부의 전반적인 문제를 함께 논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제 오연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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