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환자의 흉기에 의해 숨진 사건과 관련해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료진 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서달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두고 “정신건강의학 전문가가 환자의 폭력에 희생양이 된 사건”이라면서도 “이번 사건이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선 안 된다”고 우려했다.
의협은 1일 저녁 ‘서울 모 병원 의사 피살사건 관련 대한의사협회 입장’이란 이름의 보도자료를 내어 이런 의견을 밝혔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예고된 비극”이라고 규정하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들은 “국회에서 응급의료 종사자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상황에서 참변이 벌어졌다”며 “이번 사건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의료기관 내 어디에서든 의료진을 향한 강력범죄가 일어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이들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폭행을 경험했다고 한다. 대한응급의학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서, 응급의료 종사자의 62.6%가 폭행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의료 방해를 한 사람의 98.1%는 환자나 보호자라는 통계도 나왔다. 이에 따라 지난달 5일 응급의료법이 개정돼 응급의료 종사자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게 됐으나, 의협은 입장문에서 법 개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이 의료진에 대한 폭력 사건에 대하여 그 심각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이들은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의 폭행을 희화화해 방영하는 것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8일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는 의료사고 피해자가 병원에 찾아와 의사를 칼로 위협했던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의협은 보도자료에서 “피의자가 이 방송을 보고 모방한 것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보는 사람에게 의료진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진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폭력을 써서 항의해도 된다는 식의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갈등과 폭력을 흥미 위주로 각색하거나 희화화해 의료기관 내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송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의협은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강화되어선 안 된다는 의견을 함께 냈다. 의협은 “적절하게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의 공격성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냐는 식의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피의자의 정신질환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아직 전혀 밝혀진 바가 없다”며 “오히려 섣부른 언론의 추측성 보도나 소셜미디어상의 잘못된 정보의 무분별한 공유가 대중의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길 것을 경계한다. 수사당국의 피의자 범행 동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정밀한 정신건강의학적 감정을 함께 요구한다”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