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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삼청교육대 만든 1980년 ‘계엄포고 13호’, 첫 ‘위헌·무효’ 결정

등록 2018-12-28 17:02수정 2018-12-28 21:47

대법원, ‘삼청교육대 이탈’ 사건 38년 만에 재심 결정
“기본권 침해, 죄형법정주의·영장주의 위배로 위헌·무효”
“군사상 필요 등 요건 없이 발령 절차상으로도 무효”
70·80년대 계엄포고·긴급조치에 잇따라 위헌·무효 선언
삼청교육대 희생자 가족들이 2006년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회 희생자 추념식에서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삼청교육대 사망자들이 민주화 관련자로 인정돼 명예를 회복하고 합당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삼청교육대 희생자 가족들이 2006년 9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회 희생자 추념식에서 헌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들은 삼청교육대 사망자들이 민주화 관련자로 인정돼 명예를 회복하고 합당한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1980년 5공 전두환 정권에서 저질러진 삼청교육대의 설치·운영 근거가 됐던 계엄포고 13호가 발령 절차와 내용에서 모두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대법원 결정이 나왔다. 삼청교육대 설치의 근거가 된 계엄포고 13호에 대한 대법원의 첫 법적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8일 삼청교육대에서 탈출하다 잡혀 계엄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아무개(60)씨가 청구한 재심 사건에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1심의 재심기각 결정을 취소한 원심 결정이 정당하다며,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1980년 8월4일 계엄사령관이 발령한 계엄포고 13호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다. 그 내용도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며,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영장주의에 위배되는 것이어서 위헌·위법해 무효”라며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 결정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 결정으로 삼청교육대 사건과 관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재심 청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계엄포고 13호에 의해 ‘불량배’로 검거돼 삼청교육대에서 근로봉사대원으로 폐자재를 운반하는 노역을 하던 중 탈출했다가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1981년 2월 형이 확정됐다.

당시 전두환 정권이 발령한 계엄포고 13호는 “폭력·공갈·사기·사회풍토 문란 사범을 검거해 일정 기준에 따라 분류·수용하고 순화교육과 근로봉사 등으로 사회에 복귀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삼청교육대’ 설치의 근거를 만드는 한편, 삼청교육대에서 무단 이탈하거나 난동·소요를 벌이면 영장 없이 체포·구금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국방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의 조사 결과를 보면, 1980년 8월1일부터 이듬해 1월25일까지 6만755명이 영장도 없이 검거됐으며 이 가운데 3만9742명이 ‘순화교육 뒤 근로봉사’ 대상으로 분류돼 일선 군부대가 운영하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삼청교육대에서 구타 등 가혹행위로 숨진 사람이 모두 54명에 이르는 등 인권침해도 극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량배 소탕이라는 핑계와 달리 삼청교육대에 검거된 사람의 35.9%는 전과가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삼청교육대는 5공의 대표적 인권유린 사건으로 꼽힌다.

이씨는 2015년 12월 말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나, 1심 재판부는 필요한 서류가 첨부되지 않는 등 법률상 형식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각 결정을 했다.

항고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 합의4부(재판장 신안재)는 “계엄포고 13호가 옛 계엄법이 정한 발령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다. 영장주의를 전면 배제하고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으로 무효여서, 형사소송법이 재심사유로 정한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며 1심의 기각 결정을 취소하고 사건을 1심 법원인 부산지법 단독판사에게 돌려보냈다. 검사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계엄포고 13호는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이후 동요 우려가 있는 시민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고, 발령 당시의 정치·사회 상황이 계엄법에서 발령 요건으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계엄포고의 내용도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포고 내용 중 ‘난동·소요 등 불법행동을 일절 금한다’는 부분은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데,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할 뿐 아니라 적용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고 위법한 것으로, 무효”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형벌에 관한 법령이 처음부터 헌법에 위반돼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면 ‘무죄를 인정할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해, 재심사유가 된다”며 원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여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앞서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과 결정으로 유신 정권의 긴급조치 1호·4호·9호의 위헌·무효를 선언한 데 이어, 최근 부마민중항쟁과 관련한 1979년 계엄포고 1호와 유신 선포 당시인 1972년 계엄포고 1호에 대해서도 각각 판결로 위헌·무효를 선언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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