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15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변호인이 재판에서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벌어진 ‘사법 농단’ 관련자 중 처음으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는 19일 임 전 차장의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검찰과 변호인의 의견을 들어다. 공판준비기일에 피고인은 출석할 의무가 없어 임 전 차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인 황정근 변호사는 “직권남용은 법령에 근거한 공무원의 직무를 정한 다음 일반적 직무 범위에 속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행위는 행정처 차장, 기획조정실장의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행정처의 업무는 사법행정사항으로 일선 재판부와 달리 행정처 소속 심의관들은 국장 등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행정처 소속이 아닌) 법관이 부탁을 수락해 자발적으로 보고서를 쓴 것은 의사 결정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 의무 없는 일이 아니다”라고 황 변호사는 강조했다. “직무 범위에 속하더라도 직무 집행을 보조하는 사실 행위를 하게 했다면 의무 없는 일을 한 게 아니다”라고도 덧붙였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성립된다. 변호인은 먼저 임 전 차장이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를 사찰한 것이 차장의 ‘직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상급자가 시켜서 한 일’이기 때문에 심의관들이 의무 없는 일을 한 게 아니라는 취지다. 사법 농단의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죄가 인정되면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검찰도 반론에 나섰다. 검찰은 “관련 법령, 법원·대법원 사무규칙을 보면 기조실장은 심의관에게 지휘권이 있고 실국 조정권한이 있기 때문에 관련 ‘직무 권한’이 있다”며 “피고인의 위법부당한 명령에 따라 심의관들이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의관은 중견 법관이고 업무 분장이 법령에 규정돼 있다. 10년 이상의 법관 전문 경험 지식이 바탕이 돼야 하는 일이라서 직무 보조자의 보좌 행위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검찰은 반박했다.
변호인들은 지난 10일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지적한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도 재차 지적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재판부에 사건에 대한 선입견을 주지 않기 위해 공소장에 범죄 혐의와 관련 없는 내용은 쓰지 말라는 형사 재판의 원칙이다.
황 변호사는 “공소장을 읽으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일탈 남용을 회고하는 백서를 보는 느낌을 받는다. 공소장을 읽어보면 유죄로 보일 정도로 검찰의 상세한 의견과 부정적인 평가가 들어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재판은 선입견 없이 사건을 파악하고 여론보다 법리에 따라 불평 부당하게 이뤄져야 공정한 재판이다. 그런데 공소장은 출발부터가 불공정하게 만들어졌다. 영화 <변호인> 명대사가 “재판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피고인을 이미 죄인으로 취급하는 그 어떤 관행도 인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황 변호사는 말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5년 동안 여러 동기, 목적에 의해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범행이 이뤄졌다.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 구체적인 사정을 적시할 필요가 있고, 심판 대상이 명확해야 피고인도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변호인의 주장을 배척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소제기에 위법이 있는지는 최종적으로 재판부가 판단할 사항”이라고 밝혔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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