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맘과 육아맘이 주인공이 되어 즐기는 '디어맘 페스티벌'이 지난 10월 3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오서울시가 임산부를 지원하고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마련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내년부터 만 1살 미만 아동의 의료비를 사실상 ‘제로’(0)로 만드는 데 이어 2025년까지 초등학교 입학 전의 모든 아동에게 ‘무상의료’나 다름없이 의료비를 전액 지원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아동수당 지급 대상과 금액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7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3차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때 마련된 3차 기본계획을 뒤엎어 새롭게 그린 ‘지도’에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출산 장려’가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들어갔다.
■ 아이 병원비 걱정 없도록 ■ 우선 ‘아동 무상의료’에 해당하는 의료비 지원 정책이 시행된다. 지금까지 만 1살 미만 아동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때,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은 평균 16만5천원 선이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이를 평균 5만6천원 수준으로 줄여주고, 임산부에게 지급되는 국민행복카드 지원금액을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높여 의료비로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영아 의료비는 거의 없어진다.
나아가 아동 의료비 지원 대상을 ‘초등학교 입학 전 아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을 줄여서 보장성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단체가 본인부담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에서는 20살까지, 일본 도쿄시에서는 초등학교 아동까지 의료비가 무료다. 이창준 저출산위 기획조정관은 “출산장려금 등 난립한 지방자치단체의 현금성 지원을 의료비 지원 등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저출산위는 아동수당, 양육수당, 지자체의 출산장려금 등 별개로 지원되는 각종 양육지원정책을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내년에 내놓을 예정이다. 여기서 아동수당 지원 대상과 금액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 내년 1월부터 아동수당 월 10만원은 만 6살 미만 모든 아동에게 지급된다.
아울러 다자녀 혜택의 기준이 2021년 이후 ‘3자녀 이상’에서 ‘2자녀 이상’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다자녀 가구는 어린이집 우선 입소, 주택특별공급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 육아휴직 편하도록 ■ 육아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 요구가 ‘당연한 권리’가 되도록 하는 대책들도 시행된다. 당장 내년부터 배우자 출산휴가가 유급 3일에서 10일로 확대되고,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기간도 최대 1년에서 최대 2년까지 쓸 수 있도록 한다. 육아휴직기간 건강보험료 부담도 최소화한다. 장기적으로는 육아·돌봄·학업 등 각자 여건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절하는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이 도입될 예정이다.
현재 13%에 그치는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율을 20%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계획도 내놨다. 저출산위는 육아휴직급여의 소득대체율을 초반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 선까지 크게 높였다가 계단식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남성이 무조건 육아휴직을 2개월 이상 쓰도록 하는 이른바 ‘파파쿼터제’나 노사가 함께 기금을 만들어 육아휴직 비용을 대는 ‘부모보험’ 등 새로운 제도들은 검토되다가 최종안에서는 빠졌다. ‘저출산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선언에 걸맞은 ‘혁명적인 변화’는 없는 셈이다.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 직장어린이집 확충에도 속도를 낸다. 공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 비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시점을 2022년에서 2021년까지로 앞당겼다. 이를 위해 앞으로 500가구 이상 아파트를 건설할 때 국공립 보육시설을 반드시 지어야 하고, 300명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 차별 없도록 ■ 직장 내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 현재 500인 이상으로 되어 있는 ‘직종·직급별 남녀 임금현황 의무 제출 기업’ 대상을 자산 5조원 이상이면서 직원 300명 이상인 기업으로 확대한다. 작은 사업장에서는 고용평등 이행을 추진하기 위해 ‘고용평등 전담 조직’을 두는 방안을 검토한다. 내년부터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육아휴직 이후 복귀하는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 세액공제(1년간 중소기업 10%, 중견기업 5%) 혜택을 줄 예정이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12개 여성노동단체는 논평을 내어 “정부가 강력한 법·제도를 만들어 기업을 강제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이나 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캠페인 이상의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비혼가정을 차별하는 각종 법과 제도가 달라진다. ‘계모, 계부, 배우자의 자녀’ 등 주민등록 등·초본의 표기, 민법의 ‘혼외자’ 구별 등을 없애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출생 등록이 누락되는 아동이 없도록 의료기관이 출생사실을 알려주는 ‘출생통보제’와 실명 출생신고가 어려운 아동의 경우 익명 신고를 허용하는 ‘(가칭) 보호출산제’ 도입도 추진한다.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김상희 부위원장(오른쪽 세번째)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저출산위 본위원회에 참석한 민간위원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라는 대체적인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초등학교 돌봄의 문제나 공공 사회서비스 인프라 확충, 성평등 대책 등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김상희 저출산위 부위원장은 “지역의 인구정책 패러다임을 ‘출산 장려’에서 ‘삶의 기반 확충’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범부처 협의체를 구성하는 한편, 양육지원체계와 육아휴직제도 개편, 노인 연령기준과 관련한 제도 보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내년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황예랑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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