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김명수 대법원장은 7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이번 사법농단 사건 검찰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 대한) 수사협조는 지금도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믿는다”고 했다. 지난 6월 ‘검찰 수사 불가’에 뜻을 모았던 전국 법원장들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재차 구한 것이다.

대법원장의 수사협조 발언이 무색하게, 이보다 9시간 전인 이날 새벽 0시37분 서울중앙지법의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검찰이 청구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 등 기각 사유에 사실상 무죄 예단을 강하게 드러냈다.

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애초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이 아니었다. 기존 이언학·박범석·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사건 압수수색영장 ‘기각률 90%’를 찍자, 정치권 등에서 특별재판부 구성 요구가 빗발쳤고, 이를 의식한 법원이 지난 9~10월 추가로 투입한 판사들이었다. 두 사람 모두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었고 주요 피의자와 근무연 등이 겹치지 않았다. 명재권 부장판사는 애초 검사였다는 점도 추가 투입 배경의 하나로 꼽혔다. 코너에 몰린 법원이 이른바 ‘패전처리용’으로 이들을 투입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 이유였다.

실제 지난 10월27일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투입 20여일 만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을 ‘시원하게’ 발부했다.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소명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영장에 공범으로 적시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앞날도 위태로워 보였다. 지난 3일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법원 안팎에선 “결국 임민성 또는 명재권에게 사건이 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법원은 이튿날 두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배당했다. 애초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 한 명에게 모두 배당됐지만 ‘불공정’ 논란을 우려한 이 부장판사가 재배당을 요구하자, 이를 두 사람에게 나눠 재배당한 것이다.

지난 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따로 열렸지만, 자정을 넘긴 시간 영장 기각은 함께 발표됐다. 두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몇 줄 되지 않은 기각 사유는 표현이나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애초부터 두 사람이 패전처리용이 아닌 ‘게임’을 뒤집기 위한 ‘철벽 불펜 구원투수’로 투입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임민성 부장판사는 ‘기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던 박 전 대법관의 영장을 ‘그어버리’며 “가족관계”까지 언급했다. 전날 박 전 대법관과 변호인은 “93살 노모”를 언급하며 “집에 돌아갈 수 있는지 판사님께 달렸다. 구속을 면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당장 검찰과 법원 일부에선 “일반 형사범은 가족이 없어서 구속했느냐”는 말이 나왔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28일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심판에 대한 존중이 무너지면 ‘게임’이 종결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게 끝나는 게임은 ‘벤치클리어링’을 부르기 마련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