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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프랑스, 가사·특수고용 노동자도 산재보험… 한국은 ‘본인 부담’

등록 2018-12-04 20:44수정 2018-12-05 15:47

[보이지 않는 죽음, 산업재해] ④ 안전, 새로운 안보
프랑스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노동자의 모습.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선 음식배달 앱 ‘우버이츠’ ‘딜리버루’ 배달원들이 최저임금 보장과 위험에 노출된 노동조건 개선 등을 촉구하며 파업을 했다. 근로계약 바깥에서 일하는 ‘모호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이나 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파리/AP 연합뉴스
프랑스에서 음식을 배달하는 노동자의 모습. 지난 7월 프랑스 파리에선 음식배달 앱 ‘우버이츠’ ‘딜리버루’ 배달원들이 최저임금 보장과 위험에 노출된 노동조건 개선 등을 촉구하며 파업을 했다. 근로계약 바깥에서 일하는 ‘모호한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이나 사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파리/AP 연합뉴스
“좋은 노동환경은 결근과 업무 중단으로 발생하는 재정적 손실을 줄인다. 직원들이 업무를 지속하게 하는 건, 돌봄 대상자들에 대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의미한다. 아동 돌봄 해결책이 부족하고 고령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직원 건강 유지는 더욱더 중요하다.”

지난 10월31일 찾아간 프랑스 파리 산업안전보건연구원(INRS) 건물 1층 로비에 비치된 ‘돌봄 및 가정서비스 제공자의 의무’ 안내서의 일부다. 프랑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질병·출산·장애·사망뿐 아니라 산업재해 및 직업병 관리를 담당하는 의료보험중앙공단이 설립한 기관으로 1947년 업무상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연구와 산재예방을 위해 만들어졌다. 안내서에는 노동자가 심신 건강을 해치는 위험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용자는 산재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건설현장에 추락사 같은 보이지 않는 죽음이 있다면, 가사노동자의 산업재해같이 보이지 않는 통계도 있다. 국내에선 가정을 방문하거나 입주해 살림, 산후관리, 육아나 간병 등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공식적인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니, 산업재해보상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도 적용되지 않고 산재 예방정책에서도 소외돼 있다. 이런 현실을 바꾸려고 ‘가사노동자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00년대 이후 급속히 늘어난 택배기사, 보험설계사 등 9개 직종 특수고용노동자(사용자에게 종속돼 있지만 노동제공 방법이나 시간 등은 스스로 결정하는 형태)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아니지만 특례 형식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료 50%를 노동자가 부담하고, ‘적용을 원하지 않으면 제외 신청을 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까지 있어 실제 가입률은 10%대에 그친다. 현행 산재 통계는, 업무와 관련해 숨지거나 4일 이상 요양이 필요한 정도로 다치고 질병에 걸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요양이 승인된’ 재해만 집계한다. 결국 특수고용노동자, 가사노동자뿐 아니라 일하다 아픈 이들 상당수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산업의학과)는 “연간 산업재해가 약 9만건인데 실제 산재의 20~30%밖에 인정받지 못한다고 본다. 감춰진 산재를 찾아내, 아픈 개인이 홀로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도록 두지 않고 사회가 책임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산재 대응
가사노동 외 특고·구직자까지
산재 대상 직업군 계속 넓혀
최근엔 디지털 플랫폼 기반
우버 기사 포함할지 논의중

한국의 산재 대응은
육아·간병 등 돌봄서비스
가사노동자로 인정 못 받아
다치면 개인이 치료비 부담
산재 인정 20~30% 현실 바꿔야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 11월1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가사노동자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산업재해를 입어도 보호받지 못한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지난 11월13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사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가사노동자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 산업재해를 입어도 보호받지 못한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프랑스에선 변화한 노동현실을 반영해 산재 범위를 정한다. 임시직, 특수고용노동자, 직업훈련을 받는 학생, 구직자까지 보험 적용 범위가 넓다. 노동권 보장 강화를 통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산재 발생 건수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한다. 지역의료보험공단은 그 지역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산재 정보를 수집하고, 예방조처 이행 여부에 따라 보험료를 추가로 부과하거나 돌려주기도 한다. 스테판 팽베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은 “프랑스에선 아직도 1년에 약 600명이 업무로 인해 숨지고 60만건 넘는 산재가 발생한다”며 “건설현장 추락, 유해 화학물질 노출, 병원·가정 내 사고, 근골격계 질환 연구와 예방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지난해 미래 산업안전에 영향을 끼칠 요인을 분석한 보고서 ‘2040년 프랑스의 생산방식 및 방법: 산업안전보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발간했다. 보고서를 보면, 지속된 고령화 등으로 돌봄·활동보조 분야 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는데, 서비스 대상자를 들어 옮기는 과정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할 확률이 전체 노동자에 견줘 3배에 이르렀다. 보고서는 홀로 일하는 노동자가 많아지고 자영업이나 단기 고용계약, 하청이 늘어나면서 안전관리가 어려워질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프랑스도 우버 운전기사처럼 디지털 플랫폼 기반 노동자들의 안전관리를 고민 중이다. 우버 기사가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는 명확히 결론나지 않았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아도 일하던 사람이 다치거나 아프면 의료보험에서 제공하는 상병수당(치료를 받는 동안 상실되는 소득이나 임금을 현금으로 보전해주는 급여)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 의료보험 보장률(전체 의료비 가운데 의료보험이 책임지는 비중)은 약 80%로 60%대인 한국보다 높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유럽은 노사협력으로 산재에 대처해왔으나, 점차 일터 이동성이 강해지고 사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다 보니 산재를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문제, 공공안전 이슈로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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