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낮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참석 판사들이 쉬는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회의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 촉구 결의안'등 안건을 논의한다. 고양/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이 ‘탄핵소추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데 뜻을 모은 지난 19일 전국법관 대표회의 논의 과정이 공개됐다. 105명의 법관 대표들 사이에선 약 3시간 동안 양쪽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끝에 과반은 ‘삼권분립 침해’라는 반대 의견 대신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찬성 의견을 최종 선택했다. 당시 회의에 참여했던 한 법관 대표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지한 논의가 오갔다”고 말했다.
법관회의는 법관회의 커뮤니티에 지난 19일 의결한 ‘재판독립침해 등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의견’ 관련 논의 내용이 담긴 익명의 ‘정기회의 회의록’을 27일 게시했다. 당시 오전 법관회의가 시작하자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국회 탄핵 논의의 필요성’을 논의해달라는 대구지법 안동지원 소속 판사 6명의 요청에 따라 관련 안건이 현장에서 발의됐다. 발의 뒤 “국민적 관심사이고 내부에서도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는데 이미 제출된 안건 때문에 마지막에 한다는 것은 논의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는 의견이 “시급을 다투는 의안이 아니다”는 반대보다 앞서 기존 논의 순서를 조정해 오후 회의에서 첫 번째로 논의하기로 했다.
■ 삼권분립 침해 vs 법관 인식 밝혀야
“탄핵소추는 입법부의 권한임에도 국회에 대해 간접적으로나마 의견제시 형태로 강요하거나 사법부 의견을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것은 부적절하여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의견3).”
“삼권분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촉구를 하는 것이고, 국회나 헌재가 각자 사실관계를 확정하고 그에 따라 결론을 내리면 되는 것이다. 각자 권한을 행사하는 쪽에서 사실확정을 하면 될 것 같고, 적어도 그런 행위에 대해서 법관들의 인식은 무엇이냐를 밝혀야 한다(의견13).”
이날 나온 가장 많은 반대 의견 중 하나는 탄핵 언급이 ‘국회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해야 될 일을 법원에서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탄핵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없는 우리가 권한을 가진 국회에 이것을 요구할 수 있나” 등의 의견도 나왔다. ‘정치적 논쟁 관여’, ‘국회에 던지는 백지수표’ 같은 용어처럼 국회의 권한인 탄핵소추 언급이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는 비난도 있었다.
하지만 국회는 더욱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고, 판사들은 이번 사태의 ‘주체’로서 자기선언을 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삼권분립과 관련하여 우선 이야기하면, 국회의 탄핵소추와 재판은 다르다. 재판에 있어서는 재판의 결론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헌법기관의 어떠한 집단적 의사표시라든지 요청이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다만 국회가 어떠한 의견도 들으면 안 되거나 어떠한 촉구도 있으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의견15)”는 의견이 있었다. “삼권분립과 관련하여 이 의안은 사안의 주체로서, 행위자로서의 자기선언이라고 본다. 즉 우리가 현재 여론이 탄핵에 이르렀다면 그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또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법부가 재건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길을 택하겠다는 그런 자기선언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의견16)”는 입장도 나왔다.
■ 사실관계 미확정 vs 형사와 헌법 절차 달라
“가장 중요한 것이 사법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 사안에 관해 언론에 보도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규범적 표명을 집단적으로 하는 것은 법관들의 본분에 맞지 않을 수 있다(의견 10)”
“반대 논리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아직 사실관계 확정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과 비교하면, 태블릿 PC 보도로부터 탄핵안 가결까지 불과 50일이 걸렸고, 탄핵 결정까지는 5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우리는 내부진상조사를 3차에 걸쳐서 1년 6개월 동안 했고, 6개월에 걸쳐 검찰 조사를 했다. 거의 2년 가까이 조사와 수사를 하여 임종헌 전 차장이 기소되었고 그 공소장에 의해 공식적으로 검찰에 의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었다. 일반 국민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사실을 확인해야지만 의사 결정할 수 있냐고 물을 것이다(의견19).”
사법농단의 형사재판이 확정되지 않아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의견도 많았다. 한 판사는 “국회의 법관 탄핵은 헌법수호관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질 정도로 시급하고 중요할 때 해야 하는 것인데 아직까지 밝혀진 것만으로는 이런 부분을 판단하기에 조금 부족하다(의견7)”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이미 법원의 여러 차례 자체조사와 검찰 수사의 존재뿐 아니라 형사재판과 헌법재판이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사실관계가 다 확정되었냐는 말씀들을 많이 하시는데 형사 절차와 헌법 절차는 다르다. 사실확정은 이 정도 사안이면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확정하면 된다. 탄핵 전에 꼭 형사재판이 다 끝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의견13).” “사실관계 확정과 관련하여 탄핵은 당연히 헌재가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것이고, 형사재판에서 사실인정을 기다려야만 탄핵을 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의견15).”
■ 내분만 보여주는 낙인효과 vs 사법부 신뢰 호소 마지막 기회
“국민들의 신뢰 회복보다는 법관들이 스스로 이런 부분들을 섣불리 단정 지어 낙인효과만 주는 것 아니냐, 향후 수사 절차나 사법부 상대로 한 여러 조치들이 취해질 때 이게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적인 의견들이 다수였다(의견3).”
“이 의안이 부결될 경우 국민들은 법관 전체 사회가 이 사태에 대해 묵비 내지 동조하고 있고,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인식할 것이고, 이런 사태가 재발하더라도 우리는 그냥 침묵할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탄핵 촉구를 함으로써 이것의 심각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만한 자질이 있으니 법관사회를 신뢰해 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본다(의견22).”
‘사법농단 판사의 탄핵소추 검토’의 의미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뉘었다. “사법부의 내분을 보여줄 뿐이지 국민신뢰회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의견1)”이라는 소속 법원의 의견을 전달한 판사도 있었다. “국민들은 우리가 탄핵을 요청한다고 결의하면 판사들이 정치적 행위를 한다고 여길 것이다”, “국민을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어떤 국민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국민, 여론은 법관이 신경 쓸 것이 아니다”라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의결에 찬성하는 판사들은 ‘국민에게 어떤 사법부의 모습을 보여줄지’를 생각했다. 한 판사(의견13)는 “안건으로 상정이 안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많이 했다”면서도 “만약 이 의안이 부결이 되면 국민들은 ‘같은 법관에 대해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마저도 탄핵에 대해 반대하더라’라고 할 것이다.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의결을 해야 하고, 우리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토론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는 늘 신중론을 이야기해 왔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와 현실은 우리의 인식을 앞서갔다고 본다. 때문에 지금 사안에 대해서도 지나온 과정들을 반성하고 검토한 후 결론 내려야 한다(의견16)”는 의견도 있었다.
■ 핵심 관련자 법원에 없어 vs 시켜서 했다고 책임 못 면해
“이 의안의 요점은 탄핵으로써 특정 공직자를 공직에서 배제하고자 하는 것인데, 사실 핵심 관련자들은 이미 법원에 없고 남아 계신 분들은 관여 정도가 낮은 분들이다(의견14).”
“지금 임기 마치고 나간 분들이나 자진으로 퇴직하신 분 이외에 중대한 사태에 대해 현재 징계받은 사람이 1명밖에 없다. 중요한 분들이 전부 퇴직한 상태이기는 하나, 위에서 시켜서 했다는 것만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의견20).
사법농단의 주역인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대법관, 임종헌 행정처 차장이 모두 퇴임한 상태에서 실제 탄핵 가능한 대상은 ‘시킨 대로 한 피해자’에 그친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장 윗분들은 이미 나가서 탄핵 대상이 될 수 없고 어쩌면 직권남용의 객체일 수도 있는 심의관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법원 반대) 의견도 있었다(의견1)”고 밝혔다. “아랫사람들만 남아있는데 우리가 다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걸 필요하다고 하여 의결하는 것은 너무나 정치적이고 비겁한 행동(의견23)”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시켜서 했다’는 게 면죄부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탄핵소추 대상은 국회가 정할 일이기 때문에 법원이 따질 필요가 없다는 반론도 거셌다. “뒷북이나 치면 국민들이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주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개혁, 자정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고 전혀 생각해 주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소추할 것인지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원론적으로 우리의 자정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의견17)”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나간 분들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현재 있는 분들에 대한 판단을 통해 나간 분들의 행위에 대해서도 헌법적 판단을 받아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의견22)”는 의견도 덧붙여졌다.
■ 반대 의견도 “탄핵사유 아닌 건 아니다”
대부분의 판사는 행정처 관계자의 ‘특정재판에 관해 정부 관계자와 재판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자문한 행위’와 ‘일선 재판부에 연락해 특정한 내용·방향의 판결을 요구하고 재판 절차 진행에 의견을 제시한 행위’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는 데는 동의했다.
“공소장을 보더라도 삼권분립을 지켜야 하는 최고법원이 얼마나 청와대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알 수 있다.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청와대의 요구에 의해서 모든 사안들을 검토했고, 그 과정에 심의관과 연구관들이 개입되어 있다. 또 하급심에 대해 특정 주문을 강요하기도 했고, 특정 이유 기재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는 탄핵에 이른다고 해도 불만이 있을 수 없고 그 결과를 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다(의견16).”
“신영철 전 대법관의 재판독립침해 사태 때 정확한 헌법적, 법률적 판단과 정확한 책임조치를 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다고 본다. 저는 3차에 걸친 조사 결과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고 기소가 되면서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이 사안에 대해 중대한 헌법 위반인지 확신할 수 없다거나 이것이 범죄가 될지도 알 수 없으므로 탄핵사유가 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 자체가 솔직히 좀 두렵다. 우리 법원 내부에서 이 사안에 대한 정확한 공권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을 경우, 우리 법원이 앞으로 10, 20년 후에 이 사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지도 좀 두렵다. 그런 면에서 관여자들에 대한 책임추궁 이전에 이 사안에 대한 헌법적인, 헌재의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의견16).”
이런 입장은 의안에 반대하는 소속 법원 의견을 전달한 판사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저희 법원은 의견수렴결과 반대 의견이 많았다”면서도 “국회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지 사법부가 요청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지, 그 행위 자체가 헌법 위반이 아니라거나 좀 더 사실관계를 따져 봐야 한다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의견8)”며 법원에서 수렴된 의견을 설명한 판사도 있었다. 또 다른 판사도 “언론 보도 중 5%만 사실이어도 헌법 위반이고 탄핵소추 대상이라는 것에 이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법원 내부) 설문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많다는 것은 이게 헌법 위반이 아니라거나 사소한 잘못이라는 취지가 아니라 그동안의 경험칙상 법원 내부 일에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그다지 좋은 결과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의견27)”이라고 설명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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