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회의실 들머리에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가 붙어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동료들의 성희롱 발언으로 인해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라도, 손해배상 책임은 성희롱 피해에만 국한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재판장 황병하)는 서울시 소속 공무원 ㄱ씨의 유족이 성희롱 가해자 3명과 서울특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시와 가해자 등이 모두 307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서울시 산하 연구원에서 막내로 일하던 ㄱ씨는 2013~14년 가해자들로부터 성희롱성 발언을 들어야 했다. 이들은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ㄱ씨에게 “모텔 가자”라고 말하거나, 다른 여성 연구원으로부터 1박2일 일정을 전해듣자 해당 연구원에게 “나랑 같이 자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가해자 중 한 명은 한 연예인의 누드 사진 유출 기사를 본 뒤 ㄱ씨에게 “이거 원본 있는데 보내줄까”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ㄱ씨는 결국 2014년 5월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유족은 서울시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유족은 ㄱ씨가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조직개편 전까지 가해자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폭언을 듣는 등 보복성 처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또한 성희롱 예방을 위해 사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사건 발생 후에도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이 근무하게 했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동료의 성희롱과 폭언, 서울시의 방임이 ㄱ씨를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먼저 가해자들의 성희롱성 발언은 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발언은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 행위로, ㄱ씨가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를 예방해야 할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하지만 성희롱성 발언과 ㄱ씨 사망은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봤다. “가해자의 발언으로 인해 ㄱ씨가 자살에 이를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었다거나, 각 발언이 통상적으로 자살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ㄱ씨가 성희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희롱성 발언을 듣기 전부터 우울감을 호소하며 병원 진료를 받은 점 등을 재판부는 고려했다.
재판부는 “지자체가 성차별적 근무환경을 방치했다”는 유족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지자체의 근무환경이 ㄱ씨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성차별적이고 권위적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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