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한 전 대법관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양승태 대법원의 세 번째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던 고영한 전 대법관이 사법농단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에 출석했다.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에 이어 피의자 신분인 세 번째 전직 대법관이다. 박 전 대법관과 마찬가지로 공개 소환돼 포토라인에 섰다.
고 전 대법관은 23일 오전 9시10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포토라인에 서서 “법원행정처의 행위로 인해서 사법부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하고 누구보다도 지금 이 순간에도 옳은 판결, 바른 재판을 위해서 애쓰시는 후배 법관을 포함한 법원 구성원에게 정말 송구스럽다. 사법부가 하루 빨리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법농단이 ‘후배 법관과 법원행정처장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크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사 시에 성실히 답변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수사 기밀 유출·재판 거래가 행정처장의 정당한 직무라고 생각하는지, 법관 탄핵 요구가 나오는 데 책임감을 느끼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변호사 2명이 고 전 대법관 뒤를 따랐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이 박 전 대법관처럼 양승태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 사이에서 사법농단을 지휘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임 전 법원행정처장 공소장에는 공모자로 18회가 언급된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다.
검찰이 주목하는 고 전 대법관의 혐의는 여러 건이다. △헌법재판소 내부 사건 정보 수집 △헌법재판소장 비난하는 내용의 법률신문 기사 대필 게재 등 헌법재판소 상대로 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한 부적절한 행위가 있다. △부산 비위 판사 관련 재판 개입
△정운호 게이트 수사 상황 입수와 수사 대응 방안 마련 지시 △집행관사무소 사무원 비리 수사 확대 저지 위한 수사정보 수집 지시
△영장청구서 사본유출 지시 등 법원 관련 수사나 재판에 개입해 법원의 비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했다는 의혹도 있다.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 개입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항소심 재판 개입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상고심 관련,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등 통진당 관련 소송에도 개입한 혐의도 있다. △국제인권법 연구회 인사모(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와해를 위한 대응 방안 검토지시
△차성안·박노수 판사 사찰 지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선출 개입
△영장 재판 가이드라인 전달 지시 등 양승태 대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에 대한 부당한 지시가 있었는지도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맡았다. 올해 8월 대법원장 임기 6년을 모두 채우고 퇴임했다. 검찰은 고 전 대법관 조사를 마친 뒤 사법농단 의혹의 총괄 격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소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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