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설씨가 목숨을 끊기 1시간 전인 1991년 5월8일 오전 7시.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 서동권 국가안전기획부장 등이 참석한 치안관계장회의가 열렸다.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분신 정국‘ 대응책이 논의됐고, 회의 결과는 곧바로 검찰에 전달됐다. 이날 오전 정구영 검찰총장은 “최근 분신자살 사건에 조직적 배후세력이 개입했는지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공안부 검사로 꾸려진 대규모 수사팀은 수사도 하기 전에 ‘유서대필’로 수사 방향을 정했다. 검찰은 몇 사람을 김기설씨 ‘유서대필 후보자’로 정했지만 용의자로 삼기 마땅치 않았다. 사건 발생 닷새 뒤 김씨에게 여자친구를 소개해줬다는 강기훈씨의 이름이 조사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 강씨는 그렇게 유서대필 자살방조자가 됐다.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강신욱, 주임검사는 신상규였다. 1심부터 검찰의 필적감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노원욱 정일성 이영대), 2심(임대화 윤석종 부구욱), 대법원(김상원 박우동 윤영철 박만호)은 강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 변호사)는 21일 이 사건을 재조사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조사결과를 심의한 뒤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사건 발생 직후 정권의 부당한 압력이 검찰총장의 지시사항으로 전달됐고, 그에 따라 초동수사 방향이 정해지면서 무고한 사람을 유서 대필 범으로 조작했다”며 “현 검찰총장은 강씨에게 직접 검찰의 과오를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조사단은 당시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전 고검장은 이번 조사 과정에서 “당시 업무일지 감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시인했다고 전했다.
조사단은 또 “수사기관의 위법행위 때문에 재심하게 된 사건의 경우 기계적으로 불복하는 관행은 중단돼야 한다”며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2009년 9월 서울고법이 이 사건 재심 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즉시항고했다. 항고 이유서는 146쪽에 달했다. 대법원은 3년이나 지난 2012년 10월에야 강씨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당시 양창수·고영한·박병대·김창석 대법관은 사건의 핵심인 필적감정 논란은 검찰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 ‘무시’하고, 문서감정인 허위 증언 정도만 문제 삼아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불과 20년 전 대법원이 내렸던 유죄 판단을 마지못해 뒤집은 셈이다. 강씨는 2015년 5월 재심 무죄가 확정됐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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