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와 <백남기 농민 투쟁백서> 출판기념회에서 사진작가 윤성희씨(왼쪽 셋째)와 저자 정은정씨(맨 왼쪽)가 백씨의 큰딸 도라지씨가 인사말을 하는 동안 백씨의 부인 박경숙씨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꼭 3년 전인 2015년 11월14일, ‘농민생존권’을 요구하며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한 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아스팔트 위에 쓰러졌다. 그가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나는 동안, 그리고 그 뒤에도, 국가 권력은 오로지 사건의 진상을 덮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에 분노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백남기다” 외치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등 국가 권력에 함께 맞섰다.
3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이 ‘백남기 투쟁’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백남기농민 기념사업회 추진위원회’(위원회)가 발행한 <백남기 농민 투쟁 백서>(이하 백서)는 사건과 투쟁의 전모를 담은 대표 기록물이다. 백서와 함께 나온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따비)는 농성장과 장례식장 등을 지키며 연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백남기 투쟁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사회학자 정은정이 글을 쓰고 사진작가 윤성희의 사진을 담았다.
백남기 투쟁 기록을 담은 책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다’(따비)
1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 두 책의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책이 강조하고 있듯, 천생 ‘농민’이었던 백남기가 자신이 쓰러진 아스팔트 위에 뿌린 소중한 씨앗은 바로 생명과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연대’였다.
세월호 참사 유족 등 국가의 외면과 탄압으로 인한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그런 연대의 최전선에 있었다. 세월호 유족들과 백남기 대책위는 2016년 8월 진상 규명, 특별법 등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을 함께 하는 등 서로에게 힘이 되어줬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세월호 희생자 오준영 학생의 어머니 임영애씨는 “국가의 외면 속에 좌절하지 않고 버텨냈던 것은 연대의 힘이었다. 백남기 농민이 뿌리신 희망을 이제 우리가 거둬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열악한 방송노동 현실을 죽음으로 고발한 고 이한빛 피디의 유족도 마찬가지다. 백남기 농민과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서 장례를 치른 이한빛 피디의 유족은 당시 장례물품을 백남기 농민 유족에게 기증했던 바 있다. 이젠 방송노동자들의 노동인권을 위한 센터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이날 행사에서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비폭력 저항인 촛불혁명을 발원시킨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으로 항거할 때만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온 현실을 이제는 우리가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백남기 투쟁을 함께 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아스팔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2015년 11월 상경하기 이틀 전, 백남기 농민은 부인과 함께 자신의 밭에 우리밀을 파종했다. 그리고 그 밀은 이듬해 6월 부인과 그의 동료들이 거두었다. “밀 씨앗이 긴 겨울을 견디는 동안 백남기 농민 자신이 씨앗이 되어 싹을 틔웠다. 그러고는 끝내 우리에게 밀알들을 쥐여주고 떠났다. 이제 밀알을 다시 뿌릴 시간이 왔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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