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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린 엄마·미혼부 기댈 곳, ‘무허가 위탁모’의 거짓말뿐이었다

등록 2018-11-12 05:00수정 2018-11-12 08:15

[사건속으로] 강서 위탁모 아동학대 사건
생계·육아 허덕이던 20대 한부모
까다로운 ‘요보호아동’ 요건에 좌절
기댈 곳은 ‘무허가 위탁모’ 뿐

차마 입양 선택할 수 없었던 미혼부
아마 맡긴 뒤 사망…엄마 친권 포기

“단순 경제적 어려움은 대상 아냐”
가정위탁·시설입소 등 지원제도 있지만
지자체 ‘자의적 기준’에 사각지대 내몰려
민간 베이비시터 등록제 필요성도
한겨레 자료 사진.
한겨레 자료 사진.
생후 6개월 된 아이의 입을 막고 목욕물에 머리를 푹 담가 숨을 쉬지 못하게 하는 등 아동학대를 한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던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아무개(38)씨가 지난 8일 구속됐다. 김씨가 돌보던 생후 15개월의 또 다른 아이도 질식이 의심되는 증세로 혼수상태에 있다. 김씨가 자신의 집에서 돌본 영아는 생후 6개월에서 17개월까지 모두 4명이었다. 인터넷 맘카페와 베이비시터 구인·구직 사이트 등을 통해 김씨에게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수개월 동안 아이를 보러 오지 않았다. <한겨레> 취재 결과,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씨의 아동학대 뒤엔 아이 양육을 포기한 20대 초반 부모들과 그들을 지원해주지 못하는 양육지원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있었다.

#20대 초반 한부모 가정 정주은씨

20대 초반인 정주은(가명)씨는 지난 4월께 아이를 낳았다. 이혼한 뒤에야 임신 사실을 알았다. 전남편과 친정 부모의 반대에도 정씨는 차마 아이를 지울 수 없었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계비를 벌었지만, 출산 뒤에는 그마저 힘들어졌다.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문의했지만 생후 12개월 미만 아이는 가정위탁이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역주민센터에 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다며 ‘요보호아동’ 신청을 했지만, 담당자는 지원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친정 부모의 자산이 발목을 잡았다. 기초생활수급 자격도 얻을 수 없었다. 마지막 선택지는 해외입양이었지만 ‘아이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24시간 사랑으로 돌봐드립니다’라고 적은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씨의 인터넷 카페 글을 본 건 그때였다. 김씨는 아이를 주중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주말에 온종일 돌봐주는 조건으로 월 50만~80만원을 요구했다. 김씨가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지난 6월 태어난 지 두달 된 아이를 맡겼다. 정씨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벌었고, 매달 꼬박 돈을 보냈다.

#20대 미혼부 박규혁씨

20대 박규혁(가명)씨의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 여자친구는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없다고 했다. 박씨는 ‘아이가 태어나면 입양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여자친구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양육권을 포기했다. 박씨는 태어난 아이를 보고 차마 입양을 선택할 수 없었다. 보육원에 보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결국 박씨의 최종 선택도 정주은씨처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씨였다.

박씨는 지난해 7월 갓 태어난 아이를 김씨에게 맡기고 매달 양육비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박씨는 올해 초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돈을 받을 수 없게 된 베이비시터 김씨는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해 양육비를 요구했다. 박씨가 아이를 입양 보낸 줄 알았던 아이 엄마는 새출발을 준비 중이었다. 김씨의 요구를 받고 몇달 동안 양육비를 보내던 아이 엄마는 친권을 포기했다. 아이는 이달로 생후 16개월이 됐다.

서울 강서경찰서 수사 결과,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씨의 휴대전화에선 김씨가 아이를 학대한 사진이 여러장 발견됐다. 김씨는 경찰에서 “부모가 위탁비를 보내지 않아 홧김에 그랬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6개월 아이에 대한 학대만을 인정했지만, 경찰은 나머지 3명의 아이 역시 학대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의심한다.

김씨의 아동학대 사건을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또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양육지원 시스템 사각지대다. 아동복지법 15조는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그 관할 구역에서 보호 대상 아동을 발견하거나 보호자의 의뢰를 받은 때에는 보호조치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호가 필요한 아동이 발견되면 지자체는 아동심의위원회를 열어 요보호아동으로 승인할지를 판단한다. 요보호아동이 되면 가정위탁 돌봄을 받거나 보육원, 그룹홈 등 장기 시설에 입소할 수 있다.

문제는 1차적으로 요보호아동인지를 판단하는 구청의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이다. 서울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아동학대나 수감 등 부모의 부재가 명확한 경우가 아니면 요보호아동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게 쉽지 않다”며 “구청 담당 직원의 열의·역량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친부모의 사정으로 친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동에게 다른 가정을 제공해 보호하는 제도의 운용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가정위탁지원센터도 사정이 비슷하다. 센터 관계자는 “아동학대 위험이 있거나 보호자가 사망, 수감 중인 경우 위탁이 가능하다”며 “단순한 경제적 어려움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설명한 한부모 가정 정씨가 가정위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다.

까다로운 지원 기준 때문에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어린 부모들은 결국 인터넷 등을 통해 ‘무허가 베이비시터’를 찾을 수밖에 없다.

최태진(가명)씨도 그런 경우다. 최씨의 아내는 출산 뒤 우울증이 왔고, 최씨 부모는 건강 때문에 아이를 돌볼 수 없었다. 처가의 장모도 올 초 수술을 받을 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최씨는 빚이 많아 돈을 벌어야 했다. 결국 ‘넉달만 맡겼다가 찾아오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7월 아이를 ‘무허가 베이비시터’ 김씨에게 맡겼다. 최씨는 뇌사 상태에 빠진 아이가 학대를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 대 개인’으로 계약을 맺는 민간 베이비시터 서비스에 공공 영역에 준하는 인력관리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간 베이비시터 등록제를 통해 경찰청에서 발급하는 범죄경력조회서 등을 제출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두는 방안 등이 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20대 국회에서 ‘아이돌봄 지원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고,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검증되지 않은 사이트에서 개인 대 개인으로 보육을 의뢰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 돌봄의 자격 기준 등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윤경 황춘화 이유진 기자 yg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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