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겨레> 자료사진
‘사법 농단’ 사건 재판의 공정성 의심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이 형사 합의부를 3개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원이 새 재판부 구성기준을 비공개하고 배당은 기존 방식을 따르겠다고 밝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은 9일 “법원 관련 사건에서 연고 관계 등에 따른 회피 또는 재배당의 경우를 대비하여 형사 합의부 재판장들의 의견을 듣고, 판사회의 운영위원회와 사무분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형사합의재판부 3개 부를 증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구속 수사 기한인 오는 15일까지 재판에 넘겨야 한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의 사건을 맡게 될 기존 형사 합의부 재판장 13명 중 6명(46%)이 사법 농단 관련자들과 함께 일했거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피해자인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재판 공정성 문제가 제기됐고 ‘특별재판부’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대법원은 특별재판부 설치에 공식적으로 반대했고, 안철상 행정처장(대법관)도 공정성 논란에 대해 8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제척·기피·회피 사유가 된다”며 기존 절차를 그대로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 특별재판부 주장도 거부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만한 자체 안도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 속에 서울중앙지법이 직접 나선 모양새다. 이 결정으로 서울중앙지법 형사 합의부는 16개로 늘었다. 34부(재판장 송인권, 배석판사 김택성·신동호)와 35부(재판장 김도현, 배석판사 심판·김신영)는 경제사건을, 36부(재판장 윤종섭, 배석판사 임상은·송인석)는 뇌물 등 부패사건을 전담할 예정이다.
다만 서울중앙지법이 내놓은 ‘고육지책’도 실효성은 의심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기존의 공정성 시비 관련해 외부에서 문제 삼는 인적 관계, 근무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재판부 구성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사법 농단 사건도 기존과 동일한 기준으로 배당하겠다고 해 “제척·기피·회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과 큰 차이도 없다.
한 판사는 “제척·기피·회피나 재배당 사유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공개해야 제대로 된 검증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법원이 알아서 할 테니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고 지적했다. 오지원 변호사도 “어디까지를 사법 농단 관련자로 보는지 투명하고 명확하게 밝혀야 했다. 3개 부를 늘려도 배당을 똑같이 하면 여전히 사법 농단 관련자들이 재판할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은 법관이 피해자인 때, 피고인의 친족일 때 등은 해당 재판에서 제외(제척)하도록 하고 있다. 또 검사와 피고인은 법관의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을 때 기피를 신청할 수 있고, 해당 법관도 재판을 회피할 수 있다. 기피와 회피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7년까지 5년 동안 제척·기피·회피 791건 중 2건만 인용됐다. 법관이 스스로 할 수 있는 회피는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 활용 가능성이 낮다. 다만 연고 관계가 있는 변호사 선임으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오해의 우려가 있는 경우 등에는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서울중앙지법원장이 사법 농단 사건을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선정하면 형사부 재판당 협의를 거쳐 재배당할 수 있다.
박주민 의원은 “법원이 자체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영한다. 그러나 형사 합의부를 16개로 늘린다 해도 기존 배당 절차대로 한다면 공정성 확보는 여전히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신설된 재판부는 기피나 회피될 가능성이 낮은 판사들로 구성됐다. 다른 재판부에 배당되더라도 재배당을 요청할 수 있고, 법원장도 적시처리 사건으로 정해 재배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