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를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다수의견, 반대의견,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별개의견….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 또는 신념을 이유로 한 병역거부에 첫 ‘무죄 확정’을 선고하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추상적인 헌법 해석의 특성상 재판관 개인의 가치와 철학이 강하게 투영되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견줘, 사실관계와 법리를 중심으로 건조하게 쓰이는 대법원 판결문은 온데간데없었다. ‘법률 해석 권한’을 갖는 대법관 13명은 병역법의 처벌조항 해석을 두고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였고, 그 결과는 70여년 만의 첫 무죄 확정이었다.
지난 30일 일제 징용 노동자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전원합의체 선고 때와 달리 이날 대법관들은 각자 자신이 쓴 보충의견을 직접 읽었다. 징용 사건 선고 때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다른 대법관의 개별의견 등을 대신 읽었다. 그만큼 이번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선 대법관 개개인의 판단이 한치도 양보할 수 없이 맞붙었고, ‘역사적 선고’에서 자신의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반대의견을 낸 대법관 4명의 주장은 14년 전인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처벌 정당’ 판단을 떠받치던 전제와 동일하다. 형사재판 등 사법심사를 통해서는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진정한 것인지 판단하거나 인정할 방법과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희대 대법관은 “역사와 헌법의 관점에서 살펴보겠다”며 앞서 내놓은 유죄의견에 보태 박상옥 대법관과 함께 쓴 보충의견을 따로 내면서,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의병을 거론했다.
“우리는 침략전쟁을 한 적 없고 외세침략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수많은 백성이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들이 일어났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해야 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6·25 전쟁을 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참혹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 헌법은 국방의무를 기본 의무로 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포함해 국방의무 일체의 예외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른 국가적 차원에서의 무장해제까지 주장하고 있다. 국군 사기 악영향 등 국가질서에 큰 혼란과 폐해가 있다.”
판사 출신인 조 대법관은 지난 8월30일 공개변론에서도 “무죄 선고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특정 종교에 대한 우대가 된다”고 했다. 그는 병역거부에 대한 하급심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던 지난해 6월에도 관련 사건 주심 대법관을 맡아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하지 말라는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의 권고안은 법률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검사 출신인 박상옥 대법관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엄중한 안보상황”을 이유로 유죄를 주장했다. 박 대법관은 “양심의 내면적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호되지만 외부로 양심을 실현하는 자유는 다른 헌법적 가치에 의해 제한될 수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엄중한 안보 상황, 병역의무 형평성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요청을 고려하면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죄를 주장한 대법관 4명은 함께 쓴 반대의견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국가안보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불살생’이라는 종교적 계율에서 한 발 물러나 의병이나 승병으로 외적에 맞서 투쟁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국민들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보국헌신 자세가 보다 친근하고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가 처한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우발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처한 정도의 급박한 안보현실에 직면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거듭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남북이 맺은 9·19 군사합의에 따라 이날부터 군사분계선 일대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적대행위가 모두 중단됐다. 남북은 9·19 군사합의서에서 △군사분계선 일대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중지 △기종별 비행금지구역 설정 및 운용 △동·서해 완충 구역 내 포사격 및 해상기동훈련 중지를 명시한 바 있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복무제 도입 등을 통해 해결할 국가정책의 문제다.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띤 현행 병역법 조항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를 포함하는 국회의 개선 입법을 기다려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