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9월 2일 중앙학도호국단 발단식 후 거리 행진하는 학도호국단.
지난 5월 단국대 동아리 ‘평화나비’는 동아리방과 지원금을 받기 위해 학교에 중앙동아리 승인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동아리가 정치색이 짙고 사회적으로 예민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이유였다. 평화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 세우기 서명운동 등을 벌이는 전국 대학 연합동아리로 40여개 대학에 지부를 두고 있다.
단국대는 평화나비의 성격이 동아리 설립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진리탐구와 사회봉사 및 친목도모를 위해 동아리를 설립’할 수 있는데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 참석도 문제 삼았다. 단국대 평화나비 김수현(22) 회장은 “‘동아리가 학교의 허가 없이 행사·집회에 참석할 경우 동아리 등록을 취소할 수 있다’는 학칙을 언급하며 수요시위 참가를 문제 삼았다”며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대학이 유신 시절 학칙으로 학생들의 자치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4년제 대학 184곳의 학칙을 전수조사한 결과 70% 남짓의 대학이 학칙으로 헌법을 옥죄고 있었다.
24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국 국·공·사립 4년제 대학 학칙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대부분 대학이 위헌적 학칙을 유지하고 있다. 68.5%(126곳)의 대학이 집회를 사전 승인 받도록 했고, 대자보 등 게시물을 붙일 때 학교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곳도 72.3%(133곳)에 이르렀다. 71.7%(132곳)의 대학이 간행물을 낼 때 총장 등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동아리 등 학생단체를 만들 때 76%(141곳)가 학교의 심의를 받아야 했다. 학생의 정당 가입을 금지한 대학도 27.7%(51곳)였다(그래프 참고).
“총학생회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있어서 그 활동이 정지되며, 학도호국단으로 전환된다”(강릉원주대) 등과 같이 시대와 동떨어진 학칙도 있다. ‘선정적인 느낌의 옷’(광주여대)과 ‘과도한 노출’(한국성서대) 등 복장 제한도 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학칙도 눈에 띄었다. 건양대는 ‘정치적인 사항은 간행물에 게재할 수 없다’고 규정했고, 한려대는 ‘허가 없이 방송에 출연한 자는 근신에 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독소조항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5년 영구집권을 목표로 유신을 선포한 박정희 정권은 유신 철폐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대학에 학도호국단을 만들었다. 학도호국단 학칙에는 ‘교내외 10명 이상의 집회, 교내외 광고·인쇄물의 부착 또는 배부 등의 행위를 할 때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학생은 학내외를 막론하고 정당 또는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에 가입할 수 없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대학들은 학칙을 근거로 학생들을 억압했고, 1985년 학도호국단이 사라진 뒤에도 상당수의 대학은 유사 조항을 학칙에 넣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들 조항이 폐지되지 않고 유지되면서 대학의 필요에 따라 부활해 대학의 민주적 운영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학칙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총장에게 있으며,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이 학칙 개정을 제안할 수 없다는 점이다. 총장 외에 대학 구성원에게 학칙개정 제안권을 부여한 대학은 25곳(13.6%)으로, 학생의 참여를 명확히 밝힌 곳은 상지대와 한신대 2곳에 불과했다. 박경미 의원은 “대학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헌법에 위배되는 학칙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며 “학칙 개정 절차에 대학 구성원의 발의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