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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은 “울지 않으려고 시를 써, 나를 지키려고”

등록 2018-10-13 15:07수정 2018-11-10 15:58

[토요판] 요조·오은의 요즘은
요조가 본 시인 오은

다른 사람이 궁금해, 나와 다르니까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깨달은 건
나는 안정이 필요한 사람이란 것
매달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 ㅎㅎ

내가 좋아하는 사람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게 마음을 참 편하게 해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은 투병 중인
아버지와 함께 매일 산책하는 것

편집자주: ‘요즘은’은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다. 격주에 한번 실리며, 가수 요조(37)와 시인 오은(36)이 번갈아 진행할 예정이다. 그 첫번째 순서로 요조와 오은이 서로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인터뷰를 싣는다. 여러 활동을 통해 서로를 알고 있던 사이라 인터뷰는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는 지난 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했다.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 ‘요즘은’을 맡은 오은 시인.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 ‘요즘은’을 맡은 오은 시인.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오은은 뭐랄까, 만인의 단짝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연장자에게도 허물없이 반말을 하고 형, 누나라고 부른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 오은의 일부다. ‘버릇없는 시인’이라는 오해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그동안 오은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나이도 어린 녀석이 이토록 말을 버릇없이 하다니’ 하고 얼굴을 붉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오은이 있는 곳에서는 젊은 사람들 속에서 괜히 분위기 파악 못 할까봐 눈치를 보는 어르신도, 어른들 틈에서 자꾸 위축되는 어린 사람도 없었다. 위도 아래도 없이 모두를 친구로 만드는 일에 이토록 열심인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는 나의 첫번째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새삼스럽게 ‘오은’이라는 글자를 포털에 적고 그의 지난 행적을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첫번째 질문을 정했다.

―이참에 하고 있는 일을 빠짐없이 전부 말해봐. 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아?

“일단은 시를 쓰지. 시인이니까. 일간지 4주에 한번씩 칼럼을 쓰고, 틈틈이 잡지에 외고를 쓰고. 그리고 강연. 내 주수입원이야. 강연을 할 때마다 내 힘을 다 주고 사람들의 힘을 다시 듬뿍 얻어오는 것 같아. 내가 뭐라고, 내가 하는 일이 뭐라고 그렇게 귀를 기울여주지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 달에는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강연을 했어. ‘극장에서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그리고 책 관련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하고 있고. 아, 또 한남동에 박준우 셰프랑 최근에 기획한 ‘온다빌레’라고 하는 공간도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는 것. 항암치료 때문에 서울에 와 계시거든. 매일 하려고 해.”

―을지로에 ‘유에서 유’라는 식당이 있던데. 그게 2016년에 나왔던 너의 시집 제목이었지?

“아는 누나가 차린 음식점이야. 내 시집 타이틀을 써줘서 나도 자주 가는 곳이지만 내 지분이 있거나 그렇진 않아. 근데 사람들이 다 내 건 줄 알더라고.”(웃음)

―‘응컴퍼니’는 본인이 만든 거지?

“작은 이벤트 회사야. 보통은 국가사업을 많이 해. 행사가 있으면 기획, 섭외, 세팅, 이것저것 다 하는 거지. 근데 사업을 해보니까 나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 사무실 공간 임대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서 응컴퍼니는 정리할까 해. 회사를 그만둔 뒤에 작지만 내 사업도 운영해보고 하면서 느낀 게 있어. 내가 굉장히 자유분방하고 모험심과 개척심이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안정이 필요한 사람이었던 거야.(웃음) 매달 들어오는 월급 때문에.”

―내가 그래서 팟캐스트 일에 목을 매고 있나봐. 고정 수입이 주는 안정이 좋아서.

“그런 거지. 천성적으로는 게으르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딴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직장에서 매달 돈을 받으면서 잉여 시간에 글 쓰고 전시 보고 궁리하는 게 나에게는 더 맞겠다 발견하고 있어. 원래 잘하는 거 중 하나가 사람 챙기는 거였는데 그거를 통 못 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내 마음을 참 편하게 해. 생각해보면 내가 내 만족을 위해서 남들을 챙기는 것 같아.”

―그 전에 다녔던 회사는 정보통신(IT) 관련 회사였지?

“응, 거기서 빅데이터를 다뤘지. 거기서는 최저시급 줄 테니 다시 와서 알바하라고 농담처럼 얘기하시는데, 좀 더 새롭고 다른 일을 찾아보고 싶어.”

오은은 얼마 전 새 시집을 두권이나 발표했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아침달)와 <왼손은 마음이 아파>(현대문학)가 그것이다. 이전에도 2009년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을 시작으로 2013년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6년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 등을 펴냈다. 분주하고 촘촘하게 삶을 쪼개는 와중에 시는 어떻게 이토록 많이 썼을까. 직장에 다니던 시절 그는 일요일마다 시를 썼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일요일엔 아직도 최대한 약속을 잡지 않아. 시를 쓰는 시간도 정하고. 칼럼은 아무 때나 쓸 수 있지만 시는 그렇지 않아. <왼손은 마음이 아파>에서 맨 마지막 ‘생의 리듬’이라는 산문의 첫 문장이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야. 아버지도 아프시고, 존경하던 분들의 죽음과 발병 소식도 들리고 그러니까 미치겠더라고. 하소연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까. 어렸을 때는 울면 해결되는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울면 안 되는 일들이 많아졌으니까.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글을 쓴 거야. 이 책에는 긴 시들이 많잖아. 그런 긴 호흡으로 시를 쓰고 나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기진맥진한 기분인데 그게 그렇게 좋아. 날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줘. 그저 마음 다잡기 위해서, 울지 않으려고 썼던 것 같아. 나를 지키려고.”

―울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구나.

“깨달은 거지. 내 나이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하는 시기구나. 그 전까지 막내라고 사랑받고 귀여움 받는 시기가 길었는데,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버지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그래서 <나는 이름이 있었다>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에 그런 말을 썼구나.(‘엄마 아빠, 건강하세요. 저는 이제야 겨우 아들이 되었습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보통 수상소감 같은 거 보면 어머니 아버지에게 감사하고… 이런 기본적 패턴이 있잖아. 난 그런 게 좀 진부했거든. 난 절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에 쓴 거지.”

―아냐, 가슴이 찡했어.

“나는 그것도 믿어. 책의 운명은 저자가 바꿀 수 없다는 것. 안 팔릴 책은 안 팔리고, 될 책은 또 되더라고. 떠나는 순간 얘는 얘의 운명이 또 있더라. 사실 책이라는 게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그 책이 읽힐 사람들한테는 읽히는 것일 테고, 어떤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는 있지만 그래서 뭐가 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책은 그 책의 운명대로 가는 것 같아.”

―등단이 드라마틱했잖아. 네가 연습장에 적어놓은 글을 가져다가 형이 몰래 응모했는데 당선이 된 거지. 너의 형도 궁금해. 형은 어떤 사람이었어?

“형은 나랑 연년생이야. 내가 진짜 욕심이 많았거든. 근데 형은 항상 양보했어. 자기표현을 할 기회를 나 때문에 많이 못 얻었던 것 같다 싶어. 형에게는 그게 두고두고 미안해. 그 시라고도 할 수 없는 글들은 내가 재수할 때 쓴 거였는데 형이 볼 때는 시 같았나봐. 형은 아직도 그때 시가 지금보다 더 좋대.”

―형이 원래 시를 좋아해?

“아니! 전형적인 공대생이야. 지금은 연구원으로 일해.”

―혹시 무슨 시였는지 기억나?

“제목이 ‘디오니폴론’이라고, 디오니소스랑 아폴론이랑 섞어 만들어봤지. 뭔가 갇혀 있다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썼던 시는 ‘은둔하는 말에 대하여’였어. 얼결에 시인이 되어버려서 처음에는 시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없었지. 그런데 나중에 그 기분을 너무 느껴보고 싶은 거야. 내 손으로 투고를 하고 기다리는 느낌. 그래서 소설을 써서 <창작과 비평>에 응모해봤어.”

―잠깐만, 또 당선된 거 아냐?

“아쉽게도 본심에는 올랐는데 당선되지는 못했어. 심사평도 있었는데, 보통 심사평은 ‘이러이러한 점이 좋았으나 무슨무슨 점은 아쉬웠다’ 이렇잖아. 내 소설에 대한 심사평은 ‘도대체 이런 글이 어떻게 본심에 올라왔냐’ 이런 내용이더라고.(웃음) 그래서 난 소설은 안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래도 내 손으로 원고를 출력해서 봉투를 사서 우체국에서 소인 찍어 보내봤다는 게 참 좋은 경험이었어.”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 ‘요즘은’을 맡은 가수 요조(왼쪽)과 시인 오은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 ‘요즘은’을 맡은 가수 요조(왼쪽)과 시인 오은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대학 생활은 어땠어?

“사회학을 전공했는데 집회를 많이 다녔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케이티엑스(KTX) 여성 승무원 복직을 위한 집회 등 거의 매일 일정이 있던 것으로 기억해.”

―학생운동을 했구나!

“학생운동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것은 못 돼. 그저 사회과학대학 특성상, 사회의 여러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였던 거지. 한 2년 정도 열심히 참여했는데 어느 날 돌이켜보니 하나도 변한 게 없더라. 참 맥빠지던 때이기도 했어.”

―그런데 졸업 뒤에 문화기술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뭐야? 의외의 느낌이야.

“내가 원래 우유부단해서 저녁 메뉴도 못 정하는 앤데, 큰 결정은 금방 내려. 우연히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인재를 육성한다’는 말에 혹해서 바로 지원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커녕 프로그래밍 수업 듣다가 좌절하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사회학 전공 덕분에 사회를 들여다보는 눈을, 문화기술 전공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귀를 얻을 수 있었던 듯싶어.”

―어떤 인터뷰에서는 너보고 이제 중견 시인이라더라.

“어우, 싫다.”(웃음)

―‘중견 시인’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해?

“등단한 지 17년째이긴 해. 그런데 아직까지도 중견의 마음가짐이 하나도 없어. 데뷔할 때 20살이었고 주위에는 항상 형이나 누나였잖아. 내가 20대 후반부터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데뷔했는데, 내가 뭘 해줘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한동안은 첫째가 동생 태어나면 동생 미워하는 것처럼 괜히 밉더라고. 그치만 지금은 나한테 자극을 많이 주는 게 동생들의 시야. 너무 좋아.”

―바로 그게 중견의 마음 아니야?

“아, 아냐, 너무 많이 좋아하지는 않고!”(웃음)

―오은은 왜 사람을 좋아해?

“나는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내심 좋아해. 나와 달라서 좋아.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내가 갖지 못한 속성을 찾아내는 게 그렇게 즐거워. 사람은 신기해. 사람이니까 나쁜 일을 저지르고 또 그걸 수습하는 것도 사람이야. 지하철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가다가 한 사람이 넘어졌어. 근데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 사람이라 사람을 외면하는 거야. 근데 누가 도와줘. 사람이라 사람을 도와주는 거야. 비합리적이고 즉흥적이고 좋고 나빠. 난 사람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 같다고 할게. 좋아한다고 하려니 왠지 책임이 느껴진다.”

―인터뷰어 제안 왜 수락했는지 궁금해.

“나보다 잘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거절하는 편이야. 근데 용기를 내봤어. 나보다 잘할 사람이야 얼마든지 많을 테지만 그래도 오은만이 끌어낼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또 내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궁금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게다가 나 말고 한명이 더 있으니까!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이 같이 하니까 든든하기도 해. 요조 누나와 같이 잘해보고 싶어.”

나는 최근 발표한 오은의 두 시집을 읽으면서 유독 ‘오은’이 뚜렷하게 돌출되어 있는 시 두편을 발견했다. ‘주황소년’과 ‘O와 o’가 그것이다. 그 시들에는 비슷한 구절이 있었다.

―‘주황소년’에 보면 “빨강과 노랑 사이에 있었어”라는 구절이 있고, ‘O와 o’에는 “나는 O와 o 사이에 있어”라는 구절이 있더라. 너는 언제나 ‘사이’에 있구나.

“응.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

시인의 대답 속에서 보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돼 있는 ‘인터뷰어’를 말이다. 요조

▶요조: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 그리고 책방 주인이다. 제주 서귀포 성산리에 나의 책방, 책방 무사가 있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네이버 오디오클립 ‘세상에 이런 책이’를 진행한다. <오늘도, 무사>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등 몇권의 책을 썼다. 더 좋은 책을 쓰고 싶다. 오은과 함께 번갈아 누군가의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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