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 미투’에 대한 1차 조사 구실을 해야 하는 교육청의 특별장학이 부실하게 이뤄질 때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서울 ㄱ고등학교의 보건교사 김지원(가명)씨는 2017년 4월부터 1년 가까이 선배 교사 박민철(가명)씨로부터 성추행·성희롱을 당했다. 박씨는 종종 보건실로 내려와 김씨의 팔과 가슴, 허리, 발목 근처를 만지고 “이게 필요할 것 같아 준다”며 콘돔을 건넸다.
김씨는 박씨의 성추행 사실을 학교에 알리며 징계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학교는 두 사람의 합의를 권했고, 박씨가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이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박씨의 성추행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월 그가 다시 2차 가해를 시도하자, 결국 피해자 김씨는 서울시교육청에 이를 신고했다.
교육청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관할 교육지원청은 금요일인 8월10일 ㄱ고교로 특별장학을 나갔다. 특별장학 결과는 사흘 뒤 월요일(8월13일)에 곧바로 나왔다. ㄱ고교의 최초 사건 처리가 성폭력 매뉴얼에 따라 처리된 만큼, 2차 가해에 대해서도 ‘학교 성희롱심의위원회’를 통해 해결하라는 게 교육지원청의 결론이었다.
특히 지원청은 피해자 김씨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학교 관계자와 가해자 박씨만 면담하고 특별장학을 마친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의 사건 처리 절차에 문제가 있어 외부 조사를 받고 싶다’는 피해자의 바람은 특별장학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이에 김씨는 특별장학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된 문제 등을 지적하며 서울시교육청 감사실에 다시 제보를 했고, 서울시교육청은 정식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부실 장학 논란에 대해 해당 교육지원청은 “현재 그 사건에 대한 교육청 감사가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가 나오면 그때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선후배 교사 간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자, 서울 ㄱ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 복도에 선전물을 붙여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ㄱ고교 사례처럼 학교 현장에서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면, 교육청이나 교육지원청은 초중등교육법(7조)을 근거로 특별장학을 실시한다. 정식 감사에 착수하기에 앞서 사안의 심각성 등을 파악하기 위한 조처다. 2~3명의 장학사가 조사 결과를 보고하면, 교육청은 이를 바탕으로 감사 착수 여부를 결정한다.
문제는 ‘1차 조사’ 구실을 해야 하는 특별장학이 부실하게 이뤄질 때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최근 <한겨레>가 보도한 서울 ㄴ사립초 직원의 성폭력 사건 처리 과정도 비슷했다(
▶초등생 성폭행범, 그후로 20년 더 학교직원으로 일했다-<한겨레> 9월27일치 11면). 20여년 전 이 학교에 다닌 학생이 직원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특별장학을 실시한 관할 교육지원청은 추가 피해자 확인을 위한 적극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반면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연루 교사 18명을 밝혀낸 용화여고에서는 졸업생 96명이 자체 설문조사를 벌여 성폭력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를 직접 마련했다. 피해자가 직접 나서야 비로소 교육청이 움직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 관계자는 “(교육청) 조사를 촉구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직접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범죄를 다루는 조사자의 전문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아동·청소년 보호단체인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성폭력 사안을 조사할 때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면 조사자가 그 의견에 따라 미온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며 “조사자에 대한 성인권 감수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폭력피해자집중지원팀은 “성폭력 신고 사안의 경우 실체 파악을 위해 성폭력 전문가를 조사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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