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세공노동자들의 손. ㄱ씨(왼쪽)는 귀금속 표면을 갈아 광택을 내는 ‘그라인더’에 장갑이 빨려 들어가 가운뎃손가락 한 마디가 잘렸다. ㄴ씨(오른쪽) ‘그라인더’ 사고로 새끼손가락이 휜 채로 굳었다. ‘주얼리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준)’ 제공
1970년, 청계천 봉제 노동자 전태일이 몸에 불을 붙인 이후 48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서울 창신동 ’봉제거리’ 등 서울 곳곳에 조성된 ‘특화거리’ 노동자들이다.
정부와 자치단체 등은 침체한 전통 산업의 거점을 되살리려고 ‘특화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특화거리에서 전통 산업은 부활을 꿈꾼다. 노동자들은 좀처럼 즐거운 꿈을 꾸기 어렵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1970년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구호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4대 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연차 지급’, ‘연장수당 지급’, ‘안전장비 지급 보장’… 1970년대 본격적으로 귀금속 거리가 조성된 뒤 지금껏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다. <한겨레>는 ‘귀금속 거리’를 시작으로 ‘특화거리’의 그늘진 노동 현장을 찾아 연속으로 보도한다.
굳은살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오른쪽 집게손가락 위로 하얀 흉터가 선명했다. 8년 전 손가락이 부러진 흔적이다. “2010년에 다친 건데 아직도 흉이 남아있어요.” 박관형(가명·46·이하 모두 가명)씨가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는 종로 귀금속 거리에서 22년 동안 ‘광 처리’를 전문적으로 한 베테랑이다. 귀금속 세공의 최종 공정인 광 처리는 귀금속이 반짝이도록 그라인더로 갈고 다듬는 작업을 말한다. “아무래도 모터가 돌아가니까 손가락을 다칠 위험이 크죠. 아예 절단된 사람도 있고요.” 8년 전 그는 장갑이 모터에 말려들어 가면서 손가락이 잘릴 뻔했다. 손가락이 부러지는 정도에 그친 사고에 대해 그는 “운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치료비 상당액은 회사가 아닌 박씨가 부담했다. 당시 일하던 사업장에서 5년이나 일했지만,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되지 않은 탓이었다. “치료비가 100만원쯤 나왔는데, 회사에서 20만원 정도만 줬고 나머지는 자비로 부담해야 했어요. 산재 신청은 꿈도 못 꿨고요. 다칠 위험이 늘 있는 업종이니 4대 보험은 꼭 있었으면 하는데 그때도 지금도 저는 4대 보험 가입자가 아니네요.” 박씨가 말끝을 흐렸다.
그의 일터는 종로5가 귀금속 거리의 들머리에 있다. 종로3가까지 약 800m에 걸쳐 귀금속 상점과 작업장 수백개가 같은 건물의 위아래, 앞과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데, 박씨의 직장 옆에는 120여개의 귀금속 점포가 영업 중인 ‘귀금속 백화점’이 있다. 박씨와 20여명의 작업장 동료들이 대여섯개의 긴 책상에 나란히 앉아 갈고 다듬고 세척한 귀금속들은 이 백화점의 쇼윈도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다.
‘귀금속의 화려함 뒤에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인 어두운 종로가 있습니다’. 세공노동자들은 수십년 만에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에서 종로5가 사이에는 약 500개의 귀금속 가공 사업장이 있다. 이곳에서만 한국 귀금속 생산의 25%를 담당한다. 세공노동자만 수천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게 세공노동자들의 설명이다. 그래서 이들의 요구도 70년대 공장 노동자와 비슷하다. “4대 보험 가입, 퇴직금 지급, 연차 지급, 연장수당 지급, 안전장비 지급 보장하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근로계약서·4대보험도 없이…독성물질 만지고 들이마신다
귀금속이 빛나는 이유는 청산가리와 과산화수소를 섞어 세척하거나(왼쪽) 황산을 끓여 때를 벗기는 작업(오른쪽)을 하기 때문이다. 안전장비 없이 유독성 물질을 다루는 세공노동자들은 이때 발생하는 증기를 그대로 흡입한다. ‘주얼리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준)’ 제공
■ 26명 일하지만 4대보험 가입자는 ‘5명’뿐 세공노동자들이 가장 크게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업계에 만연한 4대 보험 미가입이다. 한 사업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은 수십명인데, 이 가운데 일부만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4대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선 앞선 가입자가 그만두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종로 귀금속 거리를 지배하는 관행이 이렇다 보니 이 지역에서 수십년을 세공노동자로 살았어도 4대 보험엔 한 번도 가입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20년간 종로에서 광 처리 업무를 해온 이진수(38)씨가 그런 경우다. “이 업계에서 20년을 일했어도 4대 보험은 한 번도 가입해본 적이 없어요.” 이씨가 지금 다니는 사업장에는 26명의 세공노동자가 일하고 있지만, 4대 보험에 가입된 사람은 5명뿐이다. 가입을 요구하면 ‘앞에 (가입을 원하는) 대기자가 있으니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 사업장에선 5명만 가입할 수 있으니까 그중 한 명이 관두면 그때 가입할 수 있다’는 식인데, 그나마도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줄을 서 있다는 뜻이다. “똑같은 노동자인데 4대 보험 가입 티오(TO·정원)가 있고,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요.” 이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운 좋게 자리가 나서 4대 보험 가입자가 된다고 해도 월급 삭감 등의 불이익이 뒤따른다. 화학약품을 사용해 귀금속의 노폐물 등을 제거하는 일을 20년 넘게 한 정성호(39)씨는 4대 보험에 가입한 ‘운 좋은’ 경우다. 정씨는 지금 다니는 사업장에 ‘4대 보험에 들고 싶다’고 말한 뒤 1년 반을 기다려서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그의 월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사업주가 ‘4대 보험에 가입하면 그만큼 임금은 줄어든다’고 미리 말했어요. 그래도 좋으니 4대 보험에 들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월급날이 되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네요.” 정씨가 말했다.
■ 30년 경력 베테랑도 퇴직금 못 받아 이들처럼 수십년째 업계에 몸담은 베테랑들이 세공업계에 많지만 이들의 월급 명세서는 대체로 단순하다. 사업장들이 대개 포괄임금제를 택하고 있는데,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니 명세서에는 기본급과 고정급처럼 찍혀나오는 연장수당이 전부다. 그나마 연장수당을 챙겨주는 곳이 일부고 사업주 재량에 따라 ‘시간당 최저시급’, ‘시간당 1만원’ 같은 식으로 지급하는 곳이 대다수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30년 경력의 세공노동자 김영훈(49)씨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지만 수당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다. 김씨는 “30년 일하면서 하루에 8시간 일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했다. 10곳이 넘는 사업장에 다니는 동안 김씨는 보통 아침 9시에 출근해 이르면 저녁 7시까지, 늦을 때는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을 일상적으로 했다. 이전 직장에서도 밤 10시까지 야근을 밥 먹듯 했는데, 야근수당이 거의 없어서 그만뒀다. “전에 있던 회사는 야근이 많아서 1년도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어요. 거의 주5일 내내 밤 10~11시까지 야근을 해야 했죠. 야근 수당은 시간당 6500원을 받은 적도 있고 못 받은 적도 있어요.” 김씨는 2년 넘게 일했던 한 사업장에서 임금과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서울고용노동청에 진정을 넣은 상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 모두 경력 높은 기술자고 어찌 보면 전문직인데, 업계는 퇴직금도 수당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요. 세공일에 관심 보이면서 어떠냐고 묻는 친척들이 있는데 절대 하지 말라고 해요.” 김씨가 말했다.
지난 28일 찾은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 세공수리업소 책상 위에 각종 작업 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귀금속 깎는 화학물질, 사람 속은 안 깎을까요?” 세공노동자들의 건강은 어떨까. 이들은 조그만 귀금속이 더욱 빛나도록 모터장비로 세공을 하고, 위험한 화학물질도 일상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별다른 안전장비는 없다고 했다.
김영훈씨는 인터뷰 내내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김씨는 말을 하지 않아도 늘 목이 아프고, 비염과 알레르기에도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30년간 매일 청산가리와 과산화수소를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다뤄왔다. “반지를 바가지에 담고 청산가리와 과산화수소를 8대2 비율로 넣으면 하얗게 거품이 일어요. 그러면 귀금속이 한꺼풀 벗겨지면서 더 빛나게 되죠. 그런데 반지가 깎이면 사람 속도 깎일 수 있다는 거잖아요. 둘을 섞으면 연기가 나는데 안전장비 없이 들이마시며 일해요.”
김씨와 비슷한 업무를 하는 정성호씨의 목소리도 쉬어 있었다. 정씨는 귀금속의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매일 알코올램프로 황산을 끓이는데, 그때 나오는 증기를 그대로 마신다. 환풍기도 없어서 늘 황산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도 기관지가 나쁘고 비염을 앓고 있다. 정씨는 “청산가리를 사용하는 업체의 노동자 한 분이 쓰러져서 죽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다들 안전불감증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모터 앞에서 일하는 이진수씨는 다행히 크게 다친 적은 없지만, 동료 두 명이 다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둘 다 장갑이 기계에 말려 절단 사고가 났는데, 4대 보험이 되지 않아 산재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수술을 받고 일을 그만뒀다. 이씨는 “20년간 일했으니 어디가 고장 나도 났을 것 같아 건강검진이라도 한번 받아보고 싶은데 여태껏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귀금속을 가공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청산가리, 황산 등 화공 약품들을 사용하려면 보호 장비와 환기 장치를 제대로 갖추고 노동자에게도 위험성을 고지해야 하는데, 이곳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세공노동자들은 이 독성 물질이 자신들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 등에서 일하는 세공노동자들이 4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제공.
■ 종로 귀금속 거리가 ‘이탈리아 비첸자’가 되려면… 종로 귀금속 거리를 브랜드화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역점사업이다. 그러나 세공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권리가 지켜지는 것이 산업 육성을 첫발”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은 서울시와 손잡고 “소공인의 경쟁력을 높이면 고급 수공예의 도시로 이름난 이탈리아 비첸자 같은 사례를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종로 귀금속 소공인에게 3년간 55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6·14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통 산업이 몰려있는 을지로 인쇄타운, 종로 귀금속 상가, 청계천 의류단지 등을 복합제조 및 유통단지로 정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세공노동자들의 기대는 크지 않아 보인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생산성을 개선하고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도입하며 해외 판로를 지원한다는 계획 말고 이곳에서 직접 귀금속에 빛을 내는 세공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는 없다”며 “수공예 산업의 발전은 그 수공예를 직접 맡는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노동환경 보장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일부 세공노동자들은 지난 5월 금속노조 산하에 ‘종로 세공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을 만들어 귀금속 거리의 노동환경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종로 귀금속 거리를 대표하는 노동조합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서울고용노동청앞에서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고 ‘악질 사업주를 처벌해달라’고 외치기도 했다. 세공노동자들은 “70년대 청계천에 전태일이 있다면, 2018년 종로에는 세공노동자들이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전태일의 외침을 2018년에도 똑같이 외친다”고 말했다.
이런 세공노동자들의 움직임에 세공업계는 “강성 금속노조의 개입으로 노사 간의 대립과 투쟁을 가져와 산업 자체가 도태될까 염려스럽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최현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정부의 지원은 지원대로 받고 노동자들에게는 착취 수준의 노동환경을 강요한 쪽이 세공업계 사업주들”이라며 “인간답게 살아보겠다고 노조 만들려는 이들에게 이젠 사업체가 망한다고 협박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